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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30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실 책상에 학습지가 올려져 있다.
  3월 30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실 책상에 학습지가 올려져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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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어느 날의 수업시간이었다. 때마침 김소월 시인의 시가 나왔다. <먼 후일>이었다. 김소월의 시 어느 것이 나와도 그의 대표작을 줄줄이 소환해서 작품 세계를 말한다. 더구나 고등학교 문학시간이었다. 시인에 대한 이력을 이야기하며 교실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교실 앞문에 시인과의 친분을 나타내는 어느 학생의 이력이 소개되어 있었다.

그 학생의 이름을 부르며 진위를 물으니 김소월이 자신과 친척이라고 말했고 그 학급의 아이들까지 마치 자신이 시인의 친척이라도 되는 냥 자부심 가득한 표정들을 일시에 지어 보였다. 짐짓 부러운 마음을 표현하며 대단한 시인 김소월의 친척이라는 그 학생을 향해 시인을 소개해 달라고 이야기했다.

짧지만 조상에 대한 자부심이 뚝뚝 떨어지게 그 학생은 시인 김소월을 이야기했다. 듣는 학생들은 자신이 마치 그 학생이라도 되는 양 '우와!', '와우!'를 연발하며 그 학생을 응원하고 있었다. 마치 나와 '김소월 겨루기'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 학생의 소개를 들으며 나는 먼 조상을 향한 자부심을 확인했다. 그리고 조상의 이름값에 부응하려는 노력도 볼 수 있었다. 유창하진 않아도 한마디 한마디에서 당당함이 배어 나왔다.

안다는 것은 그런 모습 이리라. 말을 하는 내내 피어나는 미소, 학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움츠리지 않으려는 다부진 몸짓과 떨림 없는 목소리. 언어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그 학생은 자신의 앎을 얘기하고 있었고, 그런 행동으로 인해 학생들 모두는 그 학생의 앎의 범위를 넘어서서 시인에 관한 한 그의 말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대다수 사람들은 대화할 때 자신만의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편이다. 대화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상대방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것은 곧 그들의 마음속에 담긴 생각, 그들이 언어적으로 편안하게 느끼는 것을 흉내 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순식간에 상대방과 동조 상태에 이르게 된다. -  <우리는 어떻게 설득당하는가>

그 학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비언어의 커뮤니케이션을 적용한 말하기 방법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설득당하는가>(조 내버로, 토니 시아라 포인터)에서 말하는, '유창한 말솜씨를 뛰어넘어 한 차원 높은 방식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고 원하는 바를 성취하는 실질적인 방법'을 그 학생은 은근히 보여주었다.

그 학생이 한 이야기는 대학의 전공 수업에서 들은 것보다 훨씬 기초적인 정보였다. 하지만 아주 사소한 기억을 할아버지와 친척들의 전언을 덧붙여 말했고, 자신의 말이 사실이라는 자기 확신에 가득 찬 태도와 그의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는 학급 아이들의 응원과 지지가 있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 또한 완전히 설득당했다.

내가 김소월 시인을 안 것은 중학교 때다. 초등학교에서는 시인의 이름을 들었던 기억도 없다. 중학교를 다녔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랬듯이 나도 운율이 어떻고 한국적 정서가 어떻고 하며 배웠고 외웠다. 그렇게 공부를 했고 시험을 치렀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다시 시인의 작품을 만났을 때도 중학교 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내가 받은 수업에서의 특별한 인상은 없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근현대 문학을 공부하며 비로소 김소월 시인의 존재에 대해 특별한 감흥을 갖게 되었다.

전공 수업에서 만난 소월은 이전에 시로 만난 것과 다른 사람이었다. 안타까운 가정사를 가진 천재적인 시인, 불우한 환경에서도 가장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다 좌절한 시인, 그렇게 시를 잘 쓰면서도 시에 갈증을 느끼며 살았고 짧은 생애 동안 뛰어난 작품을 많이 남긴 타고난 시인이었다. 그의 죽음이 국문학사의 큰 손실이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었고, 천재의 명운이 그러하다면 그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운명론까지 거론할 만큼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훑고 지나가도록 만들었던 시인이었다.

김소월의 시는 그리움의 미학이다. 몸서리쳐지는 그의 그리움이 마음속으로 진하게 와 닿았다. 운명과 닿지 못했던, 어긋난 운명이 만들어 놓은 시인의 파행은 안타까웠다. 누이의 사연이, 시대의 아픔이, 아버지의 비극적 죽음과 마침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시인의 인생에 대해 가족의 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뒤늦게 애도했던 기억이 있다.

성장기에 불우한 시간을 거쳤지만, 문단의 거장을 스승으로 벗으로 만날 수 있었던 화려한 학맥과 인연은 부러웠다. 김소월에게 문학은, 잡고자 하면 잡을 수 있는 가까이 있는 것이고, 곁에 늘 따라와 저절로 작품이 되는 삶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 부러운 상황을 막연히 가슴 벅차게 생각했다.

그러나 시인에게 문학은 잡으면 잡히는 것이 아니었다. 생존을 위한 투쟁 속에서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 늦은 시간 그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뜨거운 열정으로 시를 써 내려갔고 고단한 삶의 돌파구를 문학에서 찾으려고 노력하며 치열하게 문학을 부여잡았다. 소월에 대한 나의 앎도 그렇겠지만,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대부분 본질을 살피지 않은 피상적인 앎이다. 그렇기에 더욱 시인의 작품에 대한 감동과 팬심은 가시지 않았다.

시인과 작품에 자신이 있었던 나였지만 그 학생의 발표를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수업에서 부족한 것을 떠올렸다. 내가 가진 감동을 전달하기 위해 작품에 대해, 교수법에 대해 확신은 있었는지 점검했다. 전문적 깊이가 부족해도 아주 사소한 것, 아이들에게 닿을 만한 일상의 경험이나 체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점검하게 되었다. 

그날의 수업은 나의 지난 수업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고 내겐 멀기만 했던 시인의 가족을 그렇게라도 만날 수 있었던 행복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그런 기회가 아니면 시인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간 나의 앎이, 수업에 대한 성찰이 가능하기나 했을까 싶다. 나의 앎을 좀 더 잘 전달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하게 만들었던 만남이었다.

시인 김소월을 향한 나의 맹목적인 팬심은 시인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는 자부심에서 나온 것이었을까. 시인의 먼 친척이었던 그 학생을 만나고 난 후 나의 팬심은 진정되었던 것 같다. 조상의 시를 마음으로 이해하려 노력했던 그 아이를 만나고, 내가 만나는 어떤 학생이라도 지식이 아닌 마음으로 시를 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시는 배경이나 이론을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고 학생들과 시의 마음을 나누려고 노력하는 계기가 되었다.

태그:#학교의 아이들, #김소월, #시를 가르친다는 것,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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