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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가명)씨가 17일 실업급여 안내문을 받았다.
▲ 실업급여 안내문 최은경(가명)씨가 17일 실업급여 안내문을 받았다.
ⓒ 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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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한 지 일주일 만에 사장이 해고 이야기를 꺼냈다. '미안하게 됐다'라는 사장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매장을 찾는 사람이 하루에 10명도 채 되지 않은 게 3개월이 넘었다. 실업(구직)급여를 신청한 건 직장생활 7년 만에 처음이다.

김미나(가명, 30대)씨가 17일 오전 서울남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았다. 이날 오전, 미나씨 외에도 15여 명이 수급자격 신청을 기다리며 번호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처음 실업급여를 신청한 이들은 신분증을 챙겨 상담을 받고,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미나씨는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대로 온라인(www.work.go.kr)으로 구직신청을 하고 거주지 관할 고용센터인 남부센터를 찾았다. 취업설명회도 들어야 하는데, 코로나19로 오프라인 프로그램이 제한됐다. 미나씨는 온라인 설명회(www.ei.go.kr)를 들으며 수급자격인정신청서와 재취업활동계획서를 작성했다. 고용센터에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를 결정해 14일 이내에 연락하겠다는 설명을 들었다.

코로나19 시대, 실업급여 신규 신청자가 매달 1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지급액 역시 매달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실업급여 지급액은 코로나19 확산 조짐을 보였던 2월부터 6개월 연속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5월 지급액은 사상 처음으로 1조 원을 돌파했다.

지난 7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8월 노동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8월) 실업급여 지급총액은 1조 974억 원으로, 지난해(2019년) 같은달(7256억 원)보다 51.2%(3718억원) 늘어났다. 실업급여는 노동자가 원하지 않는 실직을 당한 뒤 구직 노력에 나서면 정부가 고용보험기금에서 지급하는 수당이다.

서울 사랑제일교회를 시작으로 8·15 광화문 집회를 거쳐 코로나19가 2차 확산됐다. 정부는 8월 말부터 수도권에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이른바 2.5단계)를 적용했고, 현재는 2단계로 완화된 상태다. 그런데도 국내에서 발생한 코로나 신규확진자는 100명대를 유지하며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늘어나는 건 코로나 확진자뿐이 아니다. 실업급여 지급액도, 실업급여 신청자도 늘어났다. 줄어든 건 채용시장 정도일까.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 코로나로 수익이 줄어든 자영업자들이 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았다. 17일 <오마이뉴스>는 서울 중구 고용복지플러스센터(아래 중구센터), 남부 고용복지플러스센터(아래 남부센터), 서부 고용복지플러스센터(아래 서부센터) 3곳을 방문했다.

"사장의 해고통보, 이해되더라"
 
코로나19 시대, 실업급여 신규 신청자가 매달 1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 수급자격 신청 코로나19 시대, 실업급여 신규 신청자가 매달 1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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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누가 해외여행을 가겠어요. 손님이 없으니 매장 직원 6명 중에서 3명이 잘렸어요."

남부센터에서 서류작성을 마무리한 미나씨는 "사장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일터인 면세점에 손님이 끊긴 지 5개월이 넘었다. 중국 관광객을 상대로 화장품을 파는 게 그의 일이었지만, 코로나시대에 관광객이 있을 리 없었다. 중국인 관광객 '유커'가 많이 찾는 서울 명동에서 장사하던 지인들도 가게를 내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획재정부가 7월 발간한 '최근경제동향(7월호)'을 보면, 방한 중국인 관광객 수는 2월부터 곤두박질쳤다. 2019년에 비해 4월 99.1%, 5월 98.8%, 6월 98.7%가 줄었다. 1년 전 중국인 관광객 100명이 한국을 찾았다면, 올해는 1~2명이 왔다는 뜻이다.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들자 미나씨의 일자리도 사라졌다.

호프집도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2019년)만 해도 일주일에 2~3일은 가게 내 25개 테이블이 가득 찼지만, 올해는 늘 빈자리가 있었다. 손님이 가장 많은 금요일에는 아르바이트생 4명까지 일해야 헀던 가게가 올해는 달랐다. 사장은 맨 처음 아르바이트생을 정리했고, 그다음은 정직원인 최은경(가명, 20대)씨 차례였다.

"올해 사장님 계획은 가게를 확장하고 리뉴얼하는 거였는데, 다 없던 일이 됐어요. 사장님도 가게를 아예 문 닫고 아르바이트해야겠다고 하더라고요."

9일 부동산 플랫폼 업체 '부동산114'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상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올해 2분기 서울지역 상가 수는 37만 321개로 1분기(39만 1499개)보다 2만 1178개 감소했다. 지난 3개월간 서울지역 내 자영업자 상가 2만여개가 문을 닫은 것이다. 가장 많이 줄어든 상가 업종은 음식점으로 1분기(13만 4041개)에서 12만 4001개로 1만 40개가 문을 닫았다.

사람을 만나는 게 좋았고 응대하는 게 재밌어 서비스직이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은경씨는 이제 일할 곳이 없다고 했다. "원래 바로 일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사람을 구하는 곳이 없더라고요"라며 은경씨는 "한동안 실업급여로 버티며 자격증을 딸 생각"이라고 말했다. "네일 자격증을 따야하나 미용을 배워볼까." 은경씨는 실업급여를 신청한 후에도 한참을 중구센터에 머물며 여러 교육 프로그램 팸플릿을 뒤적거렸다.

서부센터에서 만난 30년 차 간호조무사의 경력을 지닌 이선화(가명, 50대)씨도 2주 전 해고 통보를 받았다. 1인 가구로 수입이 끊겼을 때 타격이 크지만, 병원 사정도 알 만했다. 지난해 가을을 생각하면 해고가 당연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루에 최대 250명의 환자가 찾았던 병원은 하루에 많아야 30~40명이 전부였다. 쉬는 날 없이 365일, 매일 오후 9시까지 문을 여는 병원인데도 그랬다.

"중년인 나도 내가 벌어야만 살 수 있어요. 그런데 막상 센터를 와보니 대부분의 취업지원금, 보조금, 면접 지원금이 청년에게 맞춰진 것 같아 속상해요."

선화씨는 해직통보를 하던 원장의 말 중에 걸리는 게 있다고 했다. 원장은 새로 사람을 뽑더라도 '젊은 사람'을 뽑아야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흘렸다. 병원 사정이 나아져도 선화씨를 재고용하기 어렵다고 못박은 걸까. 선화씨는 "저도 고용위기를 겪고 있고 갈 곳 없는 상황인데, 정부 지원을 받을 기준이 안 되더라고요"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고용노동부는 18일 청년 일자리 사업 재원 확대 방안 등을 의결했다. 20대와 30대 등 청년층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고용 위기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우선 내년부터 청년(만 18~34세)을 정규직으로 추가 고용한 중소·중견기업에 인건비를 지원하는 청년추가고용장려금의 지원 인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감염병으로 인한 실업, 정부도 처음 겪는 일"
 
고용센터는 구직자 취업역량 강화프로그램 등 오프라인 강의를 대부분 온라인으로 대체했다.
▲ 특강 프로그램 중단 고용센터는 구직자 취업역량 강화프로그램 등 오프라인 강의를 대부분 온라인으로 대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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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자가 늘어나면 고용복지플러스센터도 분주해진다. 신청자 안내부터 대상자 선정, 안내까지 예년보다 늘어난 문의를 감당해야 한다.

17일 기자가 찾은 중구·남부·서부 고용복지플러스센터는 전화 문의와 방문에 대응하느라 내내 분주했다. 다만, 구직자 취업역량 강화프로그램 등 오프라인 강의는 대부분 온라인으로 대체했다. 집단상담, 취업특강, 청년지원 상담도 마찬가지다. 대면으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을 최소화하고 있다. 서부센터는 '서울지역의 코로나19 2단계 선포로 구직자 취업역량 강화프로그램을 전면 잠정중단한다'는 안내문을 붙였다.

실업자는 많지만 구직할 곳은 줄어들었다. 서부센터 실업급여팀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만나 "센터에서 실업도 관리하고 동시에 구직도 관리해야 하는데, 요즘 누가 사람을 뽑겠나"라면서 "주로 중소기업 채용을 도와야 하는데, 중소기업은 코로나 타격을 더 많이 받아 취업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라고 설명했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의무적 구직활동'을 해야 한다. 다만 이 역시 코로나19 영향을 받았다. 채용공고가 줄어 구직자들이 면접을 볼 곳이 마땅치 않은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기존에는 실업인정 1~4차에 4주에 1회, 5차 이후 4주에 2회에 맞춰 구직활동을 해야 했다. 하지만 정부는 2월부터 '코로나19 관련 실업급여 제도운영' 방식을 일시적으로 변경했다. 4주마다 1회 구직활동을 하면 되고, 실업인정을 위해 고용센터에 의무출석해야 했던 것을 인터넷으로 할 수 있게 했다.

실업급여팀 관계자는 "정부도 코로나 국면의 실업·구직을 위해 여러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이렇게나 지독한 감염병시대를 겪는 건 모두가 처음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 10일 긴급 대책으로 7조 8000억 원 규모의 4차 추경(추가경정예산) 편성 방침을 밝혔다. 1961년 이후 한 해 4차례 추경 편성이 이뤄진 건 59년 만에 처음이다. 1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전체회의에서 정부를 상대로 종합정책질의를 열고 4차 추가경정예산안 심사를 시작했다. 예결위에서 오는 21일 소위원회를 열어 세부 심사를 마치면, 다음날인 22일 본회의에서 추경안이 처리될 전망이다.

태그:#코로나, #실업급여, #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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