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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준법감시기구 설치 등을 이유로 한 부영·삼성 등 재벌 봐주기 재판의 문제점'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2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준법감시기구 설치 등을 이유로 한 부영·삼성 등 재벌 봐주기 재판의 문제점"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 조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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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법감시제도는 최고경영자 등이 스스로 법규를 어긴 경우 감형이 아닌 가중 요소로 인정될 수도 있습니다."

21일 참여연대 주최로 열린  '준법감시기구 설치 등을 이유로 한 부영·삼성 등 재벌 봐주기 재판의 문제점' 좌담회에서 최종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가 한 말이다. 그는 미국 연방법원의 조직 양형 가이드라인 내용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현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부(정준영 부장판사)는 양형과 관련해 "기업범죄의 재판에서 실효적 준법감시제도의 시행 여부는 미국 연방법원이 정한 양형 사유 중 하나"라고 밝힌 바 있다. 삼성이 준법감시위원회를 설치하면 이 부회장의 양형을 줄일 수 있음을 시사한 것. 삼성은 해당 재판부의 주문에 화답하듯 지난 2월 준법감시위(위원장 김지형)를 출범했다. 

하지만 최 교수는 "(미국의) 양형 가이드라인을 보면, 준법감시제도는 기업에 적용되는 것이지 그에 속한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고위 임원의 범죄행위는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총수 사익 위한 범죄가 기업범죄?

최 교수는 또 미국 양형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진 역사를 고려하더라도 준법감시제도는 개인에 적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1960년대 미국 전기회사들의 독점범죄와 이후 방위산업체의 비리를 계기로 1991년 조직 양형 가이드라인이 채택됐고 이와 함께 준법감시제도가 해당 가이드라인에 포함됐다"며 "이 같은 역사를 보더라도 준법감시제도는 개인의 범죄와는 별로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양형 가이드라인의 제정 동기는 기업범죄를 저지른 고위 경영자들에 대해 충분한 형벌이 부과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며 "실제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에서 기업에 부과되는 벌금액이 크게 늘었다는 통계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에 나선 김종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도 "2014년 발간된 사법연수원 교재를 보면 기업구성원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 한 행위는 기업범죄에 포함될 수 없다고 돼있다"고 밝혔다. 이재용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해당 사건을 기업범죄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법부의 공식 자료에선 이와 반대되는 내용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은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주심인 정준영 부장판사가 최근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에 대해서도 유사한 잣대를 적용한 것과 무관치 않다. 이 회장은 최대주주 지위를 이용해 계열사 자금 518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 과정에서 2심 재판부는 부영그룹이 준법감시실을 만든 점을 참작해 1심에서 선고한 징역 5년을 2년6개월로 감경했고, 지난달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김 변호사는 "이재용 사건도, 이종구 회장 사건도 기업범죄로 볼 수 없다"며 "하지만 재판부에서 이를 기업범죄로 보고 준법감시제도를 이유로 양형을 깎아주는 일이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새로운 감시제도가 해결책될까

더불어 이날 좌담회에선 법원이 준법감시기구 설치를 감형 사유로 적용하는 것은 우리나라 재벌 문제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상훈 변호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는 "상법에서는 경영진의 위법 행위를 감시하기 위한 법적 감시기구로 이사회와 감사를 두도록 하고 있다"며 "여기에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사외이사 제도를 추가했고, 감사위원회 제도도 추가로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벌 총수 문제의 해결은 이 제도들을 어떻게 제대로 지키게 할 것인가에 달려있다"며 "준법감시제도를 새롭게 만든다고 해서 제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준법감시기구의 설치 시기도 문제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 변호사는 "부영그룹 사건의 기소는 2018년 2월, 1심 판결은 같은 해 11월에 이뤄졌다"며 "그런데 부영그룹에 준법감시실이 설치된 것은 기소 이후인 2018년 5월"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기업이 무리하게 준법감시기구를 설치하고 재판부는 이를 양형에 유리하게 판단단했던 것"이라며 "이재용 부회장 재판에서도 양형 사유로 감형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좌담회 사회를 맡은 이찬진 변호사(참여연대 집행위원장)도 "(부영그룹 관련 판결은) 준법감시제도를 사후에 설치했다는 이유로 양형을 감형하는 최초의 선례가 됐다"며 "이는 아무런 법적 기준 없이 재판부가 입법부의 역할을 한 것과 다름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 기준을 이재용 부회장 사건에도 적용할 경우 정당성, 적법성 등 사법적 판단에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태그:#준법감시위원회, #삼성, #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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