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법행정권 남용, 재판 개입 등 '사법농단'으로 구속되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7월 22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재판부 직권보석 결정으로 석방되고 있다.
▲ 보석으로 풀려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행정권 남용, 재판 개입 등 "사법농단"으로 구속되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7월 22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재판부 직권보석 결정으로 석방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필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강행했던 '상고법원' 추진을 반대하는 글을 일간지에 기고했다가 근무 기관에서 일련의 '필화' 사태를 겪어야 했다. 이를 계기로 대한변협의 상고법원반대 TF 활동을 하게됐고, 당시 '상고법원 반대 10문 10답' 팸플릿 작성을 기초했다. 상고법원이 왜 잘못된 것인가를 대중적으로 설명한 이 팸플릿은, 당시 널리 배포돼 상고법원을 좌초시키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명수 현 대법원장이 취임한 뒤 법원행정처 폐지를 비롯한 법원개혁을 천명하기에, 사법 개혁이 마침내 실현되는 것인가 조심스럽게 기대도 해봤다(관련 기사 보기). 하지만 그 뒤 사법 개혁은 점차 용두사미 식으로 흐지부지되면서 '사법농단' 관련자들에 대해서도 "정당한 업무 수행"이라는 낯 뜨거운 이유를 붙인 무죄 판결이 이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급기야 최근에는 법원행정처 책임자(조재연 법원행정처장)가 국회에 출석하여 "유럽은 원래 2권 분립이고, 그런 유럽식 사법평의회는 우리가 지향하는 삼권 분립과 역사적 토대가 다르다"라는 '해괴한' 논리를 펼치며 "사법부 독립"을 강변했다(관련 기사: 갈길 먼 법원개혁, 이탄희 개혁안에 법원은 '철벽방어').  

[관련 기사] 
'사법농단' 첫 판결 무죄... 재판부, 검찰 수사 지적도 http://omn.kr/1mafw 
1심 무죄, 웃으며 악수 나눈 '사법농단' 의혹 판사들 http://omn.kr/1mjmi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2월13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왼쪽부터)가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2월13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왼쪽부터)가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법원행정처는 일제의 잔재다... 본 취지 벗어난 행정처

'유럽 모델'을 극구 피하려는 법원행정처는 일본 식민지 시대 잔재를 그대로 물려받은 일제 잔재의 조직이다. 즉,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일본의 전체 법원과 재판관을 지배하고 통제했던 사법성(司法省)을 그대로 모방한 제도인 것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법원행정처라는 시스템은, 일본을 제외하고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

대한민국 법원행정처는 법관의 재판을 보조한다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스스로 법관에 대한 감시, 감독기관으로 기능하면서 전체 법관과 전체 재판을 획일화시켜왔고, 이 때문에 법원행정처 폐지는 널리 국민적 공감을 받았던 사안이었다.

법원행정처는 인사관리실·기획조정실이라는 시스템으로 법원 전체를 통제해 강력한 중앙을 구축시킨다. 그래서 법관의 임용과 보직발령 등이 모두 대법원장 1인에게 집중되고,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라는 거대한 행정조직을 활용해 인사정보와 업무정보 등을 수집·확보하고 실질적인 인사 권력을 행사해왔던 것이라 본다. 이야말로 '법관 독립'을 실질적으로 가로막은 근본 요인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법부에 대한 시민의 민주적 통제는 필요하다

사법권의 독립이란 비단 '입법부, 행정부로부터 사법부의 독립', 나아가 '개별 법원의 독립'을 의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는 사법권을 직접 행사하는 기관(심판 주체)으로서의 재판부의 독립, 나아가 더 구체적으로는 재판부를 구성하면서 실제로 재판을 수행하는 법관 한 명 한 명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사법 후진국으로 불리는 일본을 제외하고는, 어느 국가도 법관을 인사하지 않는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사법부란 조직이 아니다. 한 명 한 명의 법관이 곧 심판기관이며 사법부이다. 따라서 한 명 한 명의 법관이 소신껏 재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법권 독립'이다.

나아가 사법부 독립이라는 헌법적 요청의 종국적인 목표는, 법관의 지배가 이뤄지는 체제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는 '법치의 실현'이다. 국민의 대리자로서의 사법에 의한 지배는 허용될 수 있다. 그러나 사법 엘리트에 의한 국민의 통치는 민주주의의 틀에 명백하게 위배된다. 법치란 결코 법치 그 자체가 목표가 돼서는 안 되며, 오로지 민주주의 실현의 유효한 수단으로서의 법치여야 한다.
  
참여연대는 지난 9월 10일 사법농단 이후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 사법행정 개혁 등의 과정과 현황을 점검하는 이슈리포트<사법농단 그 후, 사법개혁 어디까지 왔나>를 발표하고 법관탄핵 등 사태해결을 촉구했다. 사진제공 참여연대
▲ 사법농단개혁과제현황 참여연대는 지난 9월 10일 사법농단 이후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 사법행정 개혁 등의 과정과 현황을 점검하는 이슈리포트<사법농단 그 후, 사법개혁 어디까지 왔나>를 발표하고 법관탄핵 등 사태해결을 촉구했다. 사진제공 참여연대
ⓒ 참여연대

관련사진보기


권력 행위의 책임성(accountability)과 투명성(transparency)은 민주주의의 핵심적 요소이다. 그러한 책임성과 투명성은 치자와 피치자로 구분되는 현대 국가체제에서 각종 권력 행위가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최우선적 고려 사항이다.

민주주의란 시민들이 단순한 참여의 범주를 넘어서 자신을 지배하는 지배자를 통제, 지배할 수 있다는 것, 즉, 어떠한 권력 행위에 대하여 시민들이 감시하고 평가하며 그에 상응하는 판단과 행동을 내릴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법부에 대한 시민들의 민주적 통제는, '사법 민주화'와 '법관의 독립'이라는 향후 사법부의 개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로 인식돼야 할 것이다.

태그:#사법개혁, #사법 독립, #법원행정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지금은 이 꽃을 봐야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