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은 코로나 재확산 이후 맞는 명절입니다. 겪어보지 못한 재난 앞에, 명절을 맞는 자세도 이전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추석이라면 으레 지내던 차례, 가족과의 단란한 모임...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고, 못 하거나 안 하는 게 많아진 이번 명절은 어떤 모습일까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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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와 내가 먼저 "이번 명절은 어떻게 할까?" 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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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며느리 생일이었다. 요즘 때가 때이니만큼 집에서 배달 음식을 시키고, 조촐한 생일 파티를 했다. 추석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와 내가 먼저 "이번 명절은 어떻게 할까?" 물었다. 몇 달 전부터 허리디스크가 심했다. 명절 음식을 하고 나면 분명 허리가 더 아플 테고, 애들한테 이젠 앓는 소리도 하기 싫다.
또 예전처럼 이것저것 여러 가지 음식을 하고, 싸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번 기회에 명절 문화를 조금 더 바꾸리라 생각했고, 이왕이면 모두 모였을 때 말하고 싶었다.
"며늘아, 이번 추석에는 친정부터 갔다 오렴."
"네?"
"친정부터 갔다 오라고."
"정말요? 네~."
며느리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각자 맛있는 거 싸오면 얼마나 즐겁게요?
사실 우리 집은 지난해 추석 명절 때부터 한 곳에 모여 미리 음식 준비를 하지 않고, 각자 집에서 나누어 해온 경험이 있다. 그랬기에 가족이 모두 모였지만, 주방에 가서 일하는 시간보다 거실에 모여 도란도란 얘기를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한두 번 지내보니 이 방법이 훨씬 좋다는 생각이고, 아이들 반응도 좋았다. 이날 며느리에게 '친정부터 갔다 오라'는 내 이야길 듣던 아들이 먼저 그런다.
"엄마 이번 명절엔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우리가 다 준비할게요."
듣던 중
반갑고 고마운 소리다. 사실 딸과 아들 모두 5분~10분 걸리는,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다. 며느리의 친정도 15분 정도 거리다. 멀리 살면 아예 오지 말라고 할 텐데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거리라 오지 말라고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들이 "우린 생선회, 매운탕, 불족발 준비할게요. 회 뜨고 나면 매운탕 거리도 다 준비해주니까요"라고 말하니, 딸 아이는 "그럼 우린 고기 종류를 준비 할게"라고 화답한다. "그럼 엄마는 나물 종류하고 전을 조금 부칠까?" 하니, 옆에서 남편이 "그래도 명절인데 아이들 좋아하는 갈비는 좀 해야지" 한 마디 한다.
아빠 말을 듣고 있던 애들이 입 모아 말한다. "그렇게 되면 또 이것저것 하게 되니깐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아니, 밥만 하세요" 한다. 며느리도 기분이 좋은지 "어머니 전도 사요. OO마트 가면 전도 그다지 비싸지 않아요"라고 덧붙이기에, "전은 그리 힘들지 않으니, 그 정도는 괜찮다"고 말했다.
이렇게 이번 명절은 '포틀럭 파티'(Potluck Party, 참석자들이 각자 음식을 가져와 서로 나눠 먹는 파티)처럼 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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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이번 명절은 "포트럭 파티"(Potluck Party, 참석자들이 각자 음식을 가져와 서로 나눠 먹는 파티)처럼 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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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부터 오는 딸, 이상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친정부터 갔다 오라'는 말에 며느리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오래 전 딸아이가 명절에 우리 집부터 왔던 기억이 난다. 17년 전쯤이다. 결혼해서 2~3년 후였을 것이다. 사위와 의논해서 한 번은 친정, 한 번은 시집부터 번갈아 먼저 가기로 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그런 문화가 익숙지 않을 때라, 우리 집부터 온 아이들이 반가우면서도 혹시 사돈이 섭섭해 하지나 않을까? 딸아이가 괜찮을까? 싶어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어머나 세상에 이런 일도 있네. 너희들이 우리 집 먼저 오니까 이상하다"고 말하면서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아직 그런 문화가 낯설고 어색했던지라, 남편이 "마음은 고맙지만 다음부터는 하던 대로 해라"라고 말하기에 그 한 번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 기분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지난해 명절부터 분담해서 음식을 해보니 나도 편하고 한가로웠다. 젊은 사람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되었다. 예전처럼 명절을 보내려면 음식 장만을 위해 시장과 마트에 여러 번 다녀와야 하고, 오랜 시간 주방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명절이 끝나고 난 후에는 몸살 기운이 있어 2~3일은 누워 있는 것이 연례 행사이기도 했다. 가족끼리 일을 조금씩 분담을 하고부터는 몸살이 사라졌다. 특별히 차례를 지내지도 않으니, 앞으로도 가족끼리 부담 없이 만나고 즐겁고 편안한 명절을 보낼 생각이다.
나이 든 부모가 먼저 한발 양보하고 젊은 자식들의 의견을 물으니 좋은 의견이 나오고, 우리가 접하지 못한 명절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명절은 어느 한두 사람의 인내심으로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 모두 의논해서 결정하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듯하다. 대화 말미에 며느리에게 한 마디 더 보탰다.
"참 며늘아, 친정에 가서 자고 오고 싶으면 자고 와."
"가깝잖아요. 안 자고 와도 괜찮아요."
"그건 네가 알아서 하렴."
이래저래 며느리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