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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나 'SKY'만 조명하는 우리 사회에서 한 켠에 밀려나 조명받지 못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지난 8월부터 학력으로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청년들을 마주했습니다. '전문대 출신 기자는 처음이시겠죠'는 전문대 간호학과 출신인 제가, <대학알리>에서 활동하며 저와 닮은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가감 없이 전하는 인터뷰 기획입니다. [기자말]
나는 언론인을 꿈꿉니다.
 나는 언론인을 꿈꿉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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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꿈에 솔직하지 못했던 스스로에게 고백합니다. '나는 이제 언론인을 꿈꿉니다.'

"전문대 간호학과랑 일반대 간호학과랑 같니? 급이 다르지."

언젠가 동갑내기였던 한 친구는 '너와 나'를 급이 다른 인간으로 치부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지닌 우월감으로 우리를 짓밟아야만 당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었나 봅니다.

"웬만해선 전문대 학생보다 일반대 학생 뽑고 싶지. 걔네가 더 똑똑하니까. 하은씨는 그나마 간호학과잖아."

휴학 후, 외국에서 살아보겠노라 결심한 뒤 정착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약국이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도 나는 좌절스러웠습니다.

며칠 전 일을 그만둔 아르바이트생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새로운 인력을 찾으시던 약사님께서는 전문대와 일반대 학생을 지적 수준의 차이로 평가하셨습니다. 왜 나에게는 '그나마 간호학과'라는 수식이 붙는 걸까요. 더 큰 사회로 나아가면 얼마나 더 좌절스러울까요.

한번은 학교로 향하기 위해 택시를 탔습니다. 목적지를 말하자, 택시 기사님이 내뱉은 말입니다.

"OO교대 말고 OO여대? 전문대잖아. 그거 날라리 같은 애들만 모여 있는 곳 아니야. 꼴통들이지 꼴통들."

숨통이 턱턱 막혔습니다. 어쩌면 이런 무시를 당하고 싶지 않아서 대학 입학 이후로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그래서 학점을 챙겼고 그래서 청춘을 즐기지 못했고 책상 앞에 앉아 밤을 새웠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벽 같은 게 존재하는 걸까요. 전문대생의 노력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존재하긴 할까요. 그날 택시 기사님의 시선은 비단, 그분에게만 한정된 것일까요. 
   
우리의 스무 살은 왜 아파야만 했을까요

우리는 전문대 출신, 고졸 출신이라는 이유로 때로는 아팠고 때로는 차별과 무시를 인정하고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알리> 취재팀으로 활동하는 저는, 지난 8월부터 그간 '명문대'나 'SKY'만 조명하는 우리 사회에서 한 켠에 밀려나 조명 받지 못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이들은 자기계발서에 등장하는 '전문대 출신', '고졸 출신' 성공 비화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그저 대한민국의 청년으로 묵묵히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만난 청년들은 배우를, 기자를, 웨딩플래너를 꿈꾸며 아팠습니다. 하지만, 어린아이 떼쓰듯 제 자리에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당신이 우리의 어두운 고샅길에도 불빛을 비춰주길 기다리며 지금 그 자리에서 차이를, 다름을 묵묵히 극복하는 중입니다. 어두워 보이지 않는 수많은 벽에 부딪혀 더 아플 예정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출신 대학을 물어 올 때면 가슴이 아렸고, 그저 "인천 쪽이요"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축복받아야 할 스무 살의 청춘은 수치스러웠습니다. 고작 전문대 간호학과에 입학한 스스로가 부끄러워 그들에게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 글. 전문대에 대한 인식을 묻고 있다.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 글. 전문대에 대한 인식을 묻고 있다.
ⓒ 네이트판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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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전문대생과 고졸을 바라보는 그들과 우리 사회의 시선을 비판하려 합니다. 같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열정도, 성공하고 싶은 욕심도, 사람도, 모두 같습니다. 분명 우리에겐 차이가 존재하지만 차이는 차별이 될 수 없으며, 다름은 틀림이 될 수 없습니다. 그간 사회의 시선이 두려워 차마 전문대생이 언론인을 꿈꾼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제게 편입을 권유하며, 누군가는 대학원 진학을 권유합니다. 과연 나의 스무 살 청춘과 전적 대학을 지워버리는 학벌 세탁만이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해법일까요.

면허증이 필요한 의사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약사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기자질을 본업으로 삼을 수 있는 기자가 되고 싶은 겁니다. 기자질에도 '면허증'이 필요하던가요? 학과는 중요하지 않지만 학교 이름은 왜 중요하던가요?

대학이라는 입시 관문에서의 첫 패배를 인정합니다. 누군가는 쉴 새 없이 달려 소위 말하는 '명문' 대학에 입학했겠지요. 어쩌면 제 노력이 부족했던 건 아닐까 반성하는 날도 있습니다. 수능 날 정답만을 콕콕 골라 찍지 못했던 제 자신을 원망하는 날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5100만여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고, 5100만여 개의 이야기가 존재해야 합니다. 그중 단 하나라도 소중하지 못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전문대 혹은 고졸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 사회는 선을 긋습니다. 명문대를 졸업해야만 마이크를 손에 쥘 수 있으며 그렇게 그들의 목소리만이 조명되는 현실입니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사실, '전문대 출신'이라는 제목을 걸고 기사를 쓰는 게 어려웠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기사를 작성하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누군가는 '더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 가지 그랬냐'며 비판할까 또다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전문대생이라는 제 사회적 위치를 다시 한번 직면하는 일이라 더 아픈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조명받지 못했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도전을 하고 싶었습니다. 다양한 소셜미디어 속에서는 항상 'SKY 대학 가는 법', '서울권 대학 가는 법', 'S대생 공부법' 등이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합니다. 하지만, 전문대생과 고졸의 이야기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꿈을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 그들이지만 명문 대학을 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들의 노력은 허상이 되어버립니다. 이렇게 제 기사로나마 그들의 노력이 허상이 되지 않길 바랍니다.

누군가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손에 쥐었을 금수저도, 명석함을 형용해 줄 학벌도 없지만 막연하게 언론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알리>에서 수습기자라는 직함을 달고 기사를 씁니다. 기자질이 즐거워서요. 제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몇 글자 끄적이는 이 일이 전부입니다.

과연, 전문대생, 고졸의 당사자성에서 바라보았을 때 당신의 '성공신화'가 정답일까요. 때로는 노력만으로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있습니다. '성공신화'는 제게 희망 고문일 뿐입니다. 저널리스트가 주목해야 할 것은 누군가의 성공신화가 아닌 당사자성을 지닌 이들의 목소리입니다.

이 인터뷰 기획을 통해, 지금부터 제가 보고 들은 그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당신의 목소리에 주목하겠습니다.

[전문대 출신 기자는 처음이시겠죠] 
① "학원 보조교사 알바를 구할 때도 '4년제'를 원해요"

덧붙이는 글 | '대학생이, 대학생을, 대학생에게 알리다.‘ <대학알리>는 학교에 소속된 학보사라는 한계를 넘어 대학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집권을 가지고 언론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창간되었으며, 보다 자주적이고 건강한 대학 공동체를 위해 대학생의 알 권리와 목소리를 보장하는 비영리독립언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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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전문대, #전문대생, #고졸, #대학생, #명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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