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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의 단면을 파내려가자 위층과 중간층, 아래층에서 유해가 각각 출토됐다. 총살 후 시신을 배추포기처럼 쌓은 뒤 매장한 것이다.
 흙의 단면을 파내려가자 위층과 중간층, 아래층에서 유해가 각각 출토됐다. 총살 후 시신을 배추포기처럼 쌓은 뒤 매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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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해가 돌덩이 위에 얹혀 있는 채로 발굴됐다.
 유해가 돌덩이 위에 얹혀 있는 채로 발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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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 정지! 멈춰요! 멈춰!"

대전 산내 골령골 유해발굴 작업을 총괄 진행하고 있는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이 급하게 굴삭기 기사에게 수신호를 보내며 외쳤다. 누런 겉흙을 걷어내자 검은 흙이 속살을 드러났다. 검은 흙을 조심스럽게 걷어내자 불과 30cm 아래에 유해 일부가 모습을 보였다. [관련 기사: 대전 산내 골령골 희생자 유해 본격 발굴한다 http://omn.kr/1p09z]

동구청과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아래 공동조사단)은 22일 대전 골령골(동구 낭월동 13번지)에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을 시작했다.  대전 골령골은 한국전쟁 전후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이 군경에 의해 최소 3000명에서 최대 7000명이 학살당한 후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유해발굴 둘째 날인 24일. 발굴팀원들이 호미와 붓을 들고 분주히 흙을 파낸다. 한나절이 지나자 유해의 윤곽이 뚜렷해졌다. 두개골과 정강이뼈가 어지럽게 엉겨 붙어 있다. 가지런히 치아가 박힌 턱뼈, 부서진 두개골도 드러났다.

박선주 발굴단장은 "치아 상태로 볼 때 20대로 보인다"며 "나머지 뼈들은 여러 명의 유해가 섞여 있다"고 말했다. 주변에서는 흰색 단추와 탄피가 나왔다. 탄피는 소총과 권총 탄피다. 희생자가 민간인이고 가해자가 군경임을 말해주는 증거다.
 
 사람의 뼈가 삭아 부서진 채로 드러났다.
 사람의 뼈가 삭아 부서진 채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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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국장이 권총 탄피를 가리키며 "민간인 희생지 중 골령골에서만 권총 탄피가 나온다"며 "당시 헌병 중위가 총살에 직접 가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계단식으로 흙의 단면을 파 내려가자 위층과 중간층, 아래층에서 유해가 각각 출토됐다. 2015년 발굴 때처럼 켜켜이 묻혀 있음을 보여준다. 총살 후 시신을 배추포기처럼 쌓은 뒤 매장한 것이다. 유해는 좌우로 뻗어 있어 구덩이 길이를 아직은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다.

박 단장은 "유해가 층층이 겹쳐 있는 데다 좌우로 길게 연결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예상했던 것보다 발굴에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는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3차례에 걸쳐 국민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을 대상으로 대량 학살(1차 : 6월 28~30일, 1400명 / 2차 : 7월 3~5일, 1800명 / 3차 : 7월 6일~17일, 1700~3700명)이 벌어졌다. 당시 가해자들은 충남지구 CIC,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이었고, 그들에 의해 법적 절차 없이 집단 살해가 자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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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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