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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매번 외가 식구 단톡방에 내가 쓴 기사를 공유한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가족들이 내가 쓴 글을 본다는 건 왠지 발가벗은 채 명동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특히 친척들이 아는 체라도 해오면 더 그렇다. 미천한 글재주를 추켜세워 주면 그게 또 너무 낯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엄마의 기사 공유가 불러온 나비효과가 있다. 그것은 바로 친인척들 자신이 겪은 재밌는 사건과 감동 사연을 모두 나에게 제보한다는 것이다.

"영지야, 이건 어떠노? 이거 진짜 기삿감 아니가?"
"영지야. 내가 이번에 이런 일을 겪었는데 어떠노, 글 한 번 써봐라."


별 힘없는 시민기자라고 손사래를 쳐보지만, 가족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런데 또 듣다 보면 진짜 사람 사는 이야기에 푹 빠져들어 나도 어느새 같이 박장대소하고 찡한 감동에 마음이 촉촉해지기도 한다.

정말 예쁜 이야기들을 만날 땐 글 꽃으로 피워내고픈 작가적 욕망이 일렁일 때도 있다. 이번에 제보받은 외삼촌의 사연이 그랬다.

새벽 5시경, 모르는 사람에게 카톡이 왔다

외삼촌은 내년에 정년퇴직을 앞둔 평범한 회사원이다. 퇴직 이후의 삶을 계획하느라 고민이 많은 요즘, 그날도 외삼촌은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 잠이 들었다. 한참 꿀잠을 자고 있던 그때, 카톡 알람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눈을 비비며 시계를 보니, 새벽 5시였다. 메시지를 확인해보니 아파트 벤치에서 차 키를 주웠는데 경비실에 맡겨 놓겠다는 내용이었다. 낯선 번호라 잠시 의심이 됐지만 얼른 사실 확인을 위해 호주머니를 뒤져 보았다. 정말 차 키가 보이지 않았다. 대리 운전을 하고 전달받은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그 후론 기억이 나지 않았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경비실로 내려가 확인해보았다. 정말 그곳엔 누군가 맡겨둔 외삼촌의 차 키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외삼촌은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내 번호를 알고 연락했을까?'

곰곰이 생각한 끝에 찾은 결론은 이것이었다. 의문의 인물은 아파트 주차장을 전부 뒤졌다. 천 세대가 넘는 아파트에서 일일이 차 키 버튼을 눌러  '삐빅' 하는 외삼촌의 차를 찾았고 거기에 적힌 핸드폰 번호를 보고 연락을 취한 것이다. 그것도 새벽 5시경에 말이다.
 
외삼촌이 새벽에 받은 문자  요즘 세상에 이런 문자를 받게 되다니... 외삼촌은 감사한 마음에 잠을 설쳤다.
▲ 외삼촌이 새벽에 받은 문자  요즘 세상에 이런 문자를 받게 되다니... 외삼촌은 감사한 마음에 잠을 설쳤다.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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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그 시간에 전달해야만 했던 것은, 차 키 주인이 출근 시간에 난감한 상황을 겪지 않을까 상대를 걱정한 마음에서였다. 요즘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싶어 외삼촌은 그날 새벽, 진한 감동에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외삼촌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발신 번호로 작은 감사의 선물을 보냈다. 그러자 그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외삼촌을 해병 선배님이라 부르며 해병대 사진을 함께 보내왔다. '누구지? 아는 사람인가?'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봤으나 역시나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번뜩! 뭔가가 떠올랐다. 바로 차 열쇠고리! 외삼촌은 차 키에 해병대 로고가 적힌 작은 열쇠고리를 달고 다녔었다. 이제야 뭔가 또렷해졌다. 그 새벽, 수고스러움을 감행하면서까지 차 키 주인을 찾아주려 애쓴 것은 해병대 선임에 대한 의리와 충성심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으로 예상됐다.
 
외삼촌 차 키에 달린 해병대 마크 고리  이 열쇠 고리를 보고 외삼촌을 당연히 선임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 외삼촌 차 키에 달린 해병대 마크 고리  이 열쇠 고리를 보고 외삼촌을 당연히 선임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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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이라는 호칭과 해병대 사진까지 보내온 걸로 봐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귀신 잡는 해병대라더니 사람 마음까지 사로잡는 해병대였다. 진짜 사나이의 의리를  전해들은 나는 그 패기에 반해버릴 지경이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해병대 출신인 남편도 역시 후배들이라며 해병대 부심을 잔뜩 부렸다. 해병대는 그 어떤 학연·지연보다 끈끈한 유대관계를 자랑한다. 어느 동네를 가도 볼 수 있는 빨간색 조립식 컨테이너에 '해·병·대'라고 쓰인 간판을 보며 혼자 뭉클해 하던 남편을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외삼촌의 양심 고백, 기꺼이 이해해주실 거죠?

외삼촌과 남편은 친인척이기에 앞서 해병대 의리로 맺어진 선후배였단 사실도 이번에 새로 알게 됐다.

"필승! 저는 843기입니다. 선배님은 몇 기십니까?"

그러자, 외삼촌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하하, 그게 말이제... 사실 나는 해병대 아니다."
"네에???"
"육군 출신이다."
 

나와 남편은 화들짝 놀랐다.

"그럼 그 열쇠고리는 뭐예요?"
"그거는 친구가 준 거 그냥 달고 다닌 기다. 그 군인한테는 차마 입이 안 떨어지드라. 선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을낀데. 그러이 니가 기사 함 써봐라. 전국에 해병대한테 고맙다고. 해병대 정신 최고라고!"


푸핫! 마구 웃음이 났다. 그렇지! 이것이 바로 진짜 '사는 이야기'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반전이 일어나는 게 우리네 인생사 아니던가. 이후 외삼촌은 한마디를 더 남겼다.

"그라고 해병대나 육군이나 의리의 사나이인 거는 매한가지데이~!"

요즘 유튜브 예능 '가짜 사나이'가 인기다. 그곳에 출연한 한 교관이 한 말이 떠올랐다. "군인은 인성이 가장 중요하다!" 외삼촌에게 친절을 베푼 인성 갑 '진짜 사나이'! 실은 해병대가 아니었던 외삼촌의 양심 고백, 기꺼이 이해해 주실 거죠? 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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