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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딱히 할 일이 정해져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아내의 운전수행을 돕는 정도가 전부이고 그 일도 대기하는 시간이 많아서 항상 손이 비어 있다. 즉 백수(百手)다. '노니 이 잡고, 노니 염불한다'고 짬짬이 거제 경기의 부활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기 위해서 거제도에서 영업하는 곳 중 추천할 만한 곳을 찾아 소개하려고 한다. 나아가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부족하기 쉬운 '사람과의 거리, 정서적 거리'를 줄이기 위해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 사는 이야기를 전하는 목적도 있다.[기자말]
"해녀 해보는 게 어때?"

이 한마디의 제안으로 그녀의 삶은 바뀌었다.

사실, 그녀는 수영을 할 줄도 몰랐고 친구들과 바닷가에 가면 발만 담그고 오는 축에 속했다. 제대로 수영을 배워본 적이 없는 것은 물론, 신나게 물놀이를 한 번 한 적도 없던 그녀가 감히 해녀가 된 건 세 자녀의 어머니라는 절박한 현실 때문이었다.

백과사전엔 해녀가 '공기 탱크 없이 바닷속으로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성'이라고 적혀 있다. 주로 제주도와 울릉도, 일본의 일부 지역에서 활동하며 어릴 때부터 수영 등 필요한 기술을 습득한 후, 10대 후반이 되면 해녀로 독립한다. 특별한 교육과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부모나 친척, 지인의 기술을 전수받는 도제교육을 거치는 것이다.

제주도에는 해녀박물관이 있다. 2016년에는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이듬해인 2017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132호로 지정되었다. 즉 제주도가 해녀의 고향인 셈이다.

반면, 거제도는 제주도의 출향(出鄕) 해녀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나잠어업이 성행하는 곳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젊은 사람들이 나잠업(해녀)에 뛰어들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탈출구가 필요하던 시절
 
홍합 채취 장면 바위에 붙은 홍합을 채취할 때는 주로 손과 호멩이를 사용한다.
행여 바위에 있을지도 모르는 폐그물 등을 조심하지 않으면 위험에 처해질 수도 있다.
▲ 홍합 채취 장면 바위에 붙은 홍합을 채취할 때는 주로 손과 호멩이를 사용한다. 행여 바위에 있을지도 모르는 폐그물 등을 조심하지 않으면 위험에 처해질 수도 있다.
ⓒ 우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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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 봄쯤에 도의원인 아내와 함께 민원 청취 자리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해녀들의 고압산소 체임버와 휴식 공간 설치를 건의하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우정민(36)씨는 "거제도에서 활동하고 있는 130여 명의 해녀 중 나처럼 20~40대의 젊은 해녀는 10명 내외쯤 된다"고 말했다.

그녀는 최근 자주 방송을 탄 덕에 제법 얼굴이 알려진 지역 유명인이 되었다. 나도 처음에는 특이한 직업 때문에 우씨가 젊은 나이에 해녀가 된 사연이 궁금했다. 과거의 제주도처럼 주변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해녀가 될 환경도 아니고, 더구나 남편이 배를 만드는 회사(조선소)의 노동자였다. 세 자녀의 어머니가 해녀가 된 사연이 무척 의아하기도 하고 궁금했다.

"사실은 탈출구였죠."

지금은 막내도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으니 상황이 조금 나은 편이지만, 두 살과 한 살 터울의 세 자녀를 양육하는 노동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중노동에 속한다.

내가 현직일 때,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직원에게 "다시 직업 전선으로 돌아와서 힘들겠다"라고 위로하면 대부분 사람은 "나와서 근무하는 게 오히려 더 편하고 좋아요"라고 말했다. 손자에 대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심정과 비슷할 거라고 짐작했다. 흔히 우스갯소리로 '손주는 온다면 좋고 간다면 더 좋다'라고 하지 않나. 어떻게 자식이 미워서 사무실에 출근하는 게 낫다고 하겠는가. 어디 손주가 싫어서 간다고 좋아하겠는가. 그저, 그 정도로 육아의 수고가 크고 힘들다는 것을 표현하는 말일 테다.

우씨가 세 자녀를 키우며 가계에 도움을 주고 싶어서 짬뽕집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어느 날, 평소 바다 물질을 좋아하던 남편이 '해녀 아카데미'라는 교육강좌가 생겼다면서 한 번 도전해 볼 것을 권했다. 그녀는 육아 노동에서 잠시라도 해방이 된다면 무엇이든 좋다는 생각으로 흔쾌히 받아들였다. 수영할 줄도 모르는 처지는 다른 문제였다.

그러나 뜻밖에 충실하게 교육을 이수하다 보니 직업 해녀가 돼도 좋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지게 되었다고 그녀는 회상했다. 그게 벌써 6년 전 일이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 제안은 남편의 배려에서 나온 것이라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얼떨결에 찾은 적성

선배 해녀들 틈에 끼여 물질을 시작하던 5년 전 초보 해녀 시절, 의외로 타고난 체질이라는 것을 현장에서 깨달았다.

수압 차이로 인한 귀의 통증을 느껴본 적이 없으니 남들처럼 코를 막고 숨을 내쉬어 귀의 통증을 없애는 펌핑 작업도 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바다의 염분과 햇볕으로 인한 피부 트러블 때문에 자주 피부과 진료를 받지만, 다른 사람들보다는 훨씬 덜한 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1분에 불과하던 잠수 시간도 2분으로 늘었고, 잠수하여 물속에서 유영하는 기술도 향상되었다. 상대적으로 젊은 신체적 능력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어느덧 같은 배를 타고 물질을 다니는 베테랑 해녀들보다 더 많은 해산물을 채취할 정도가 되었다.

1시간에 대략 20회 정도의 잠수를 한다면 하루에 거의 100회 정도의 잠수하는 셈이다. 해녀들은 15m까지 잠수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5m 내외의 수심에서 작업한다.

체력 소모가 심한데도 불구하고 고령의 해녀들이 무난히 물질을 수행하는 것은 경험칙으로 얻은 기술과 요령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는 5년 차인 우정민씨도 아직 초보라고 자신을 낮췄다.
 
채취할 해산물을 탐색하는 장면 손에 든 기구는 호멩이라는 채취도구이다.
바위에 붙은 전복도 이 호멩이로 다 채취가 가능할 정도로 해녀들의
필수 도구이다.
▲ 채취할 해산물을 탐색하는 장면 손에 든 기구는 호멩이라는 채취도구이다. 바위에 붙은 전복도 이 호멩이로 다 채취가 가능할 정도로 해녀들의 필수 도구이다.
ⓒ 우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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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조선소 노동자의 수입 정도는 번다고 말하는 그녀는 명랑하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하루에 썰물을 기준으로 앞뒤 대략 4시간 정도, 한 달에 20~25여 일을 작업한다. 가계에 보탬이 될 뿐 아니라 해녀 문화를 전승하는 데 작은 기여라도 한다는 보람이 크단다.

망사리를 단 테왁에 몸을 얹어서 큰 숨비소리를 낸 후, 다시 기를 흠뻑 들이마실 때 자연은 더 가까이 온다고 말했다. 물속에서 솟구쳐 나와 산과 하늘을 쳐다보며 사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본다는 것 자체가 신비롭고 아름답다고도 덧붙였다. 오로지 슈트와 오리발, 허리에 찬 납덩어리와 작업 도구인 호멩이를 들고 테왁에 조금씩 해산물을 채워나가는 물질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한 몸짓으로 보였다.

해녀들과 같은 배를 타고 나가서 직접 들어보니 그녀의 숨비소리는 크고 깊었는데, 주변에서 들리는 숨비소리는 해녀마다 각각 달랐다. 휘파람 소리처럼 맑고 가는 소리도 있었고, 거인의 숨소리처럼 파장이 큰 소리, 성악가의 낮고 깊은 숨비소리도 있었다. 정민씨의 숨비소리는 굵은 성대로 발성 연습을 하는 소리처럼 탄탄하게 들렸다.

참았던 호흡을 내뱉고 다시 길고도 깊은 호흡으로 전환하는 숨비소리는 바닷속의 생명체가 전력으로 유영하기 직전처럼 싱싱하고 힘찼다.

딱, 나의 숨만큼만 보이는 풍경

그녀의 팔에는 상처 자국이 많다. 가시로 슈트를 뚫고 찌르는 성게 때문에 난 것도 있고 바위에 긁혀서 난 상처도 있는데, 이런 상처는 별 거 아니라고 말했다. 물밑에서 폐 그물이나 폐 통발에 몸이 감기는 순간이나, 폭주하는 경주용 차처럼 달리는 낚시선이 머리 위를 지나가는 때는 물속에서도 진땀이 나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고 했다.

바닷속도 사계절이 있지만, 육지의 사계절처럼 뚜렷하지는 않다. 오히려 숨비를 위해 물 위로 올라왔을 때 보이는 산과 구름으로 새로운 계절이 다가옴을 안다.

하지만 5년 전에 비해 바닷속도 백화현상(산호말로 인해 바다의 바닥이 하얗게 사막화되는 현상)이 뚜렷하고 해산물 개체수도 많이 줄었다.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을 바다 밑이라고 피할 방도는 없다. 이렇게 오염 속도가 빠르면 머지않아 내 직업도 소멸하는 게 아닐까 걱정스럽단다.

그러면서 동시에 '수압 차이에 의한 직업병과 청력 저하를 막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고압산소 챔버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 배의 최고참 해녀는 올해 84세입니다. 체력이 많이 떨어졌지만 지금도 물질을 거침없이 하십니다. 삶의 활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 매일 물밑으로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저도 선배 해녀님처럼 건강하게 오래 하고 싶습니다."
 
가장 큰 전복을 잡은 날 해산물 중에서 가장 비싼 전복은 해녀들의 인기 품목이다.
무게 500g 짜리 전복은 적어도 7~8년은 된 것들이다.
생애 가장 큰 전복을 잡은 기념 사진.
▲ 가장 큰 전복을 잡은 날 해산물 중에서 가장 비싼 전복은 해녀들의 인기 품목이다. 무게 500g 짜리 전복은 적어도 7~8년은 된 것들이다. 생애 가장 큰 전복을 잡은 기념 사진.
ⓒ 우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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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물속에서 나올 때 보이는 하늘과 산들이 너무 아름답고 예뻐서 평생 해녀로 살겠다고 말했다. 그 감동이 어떤지 알지 못하는 나는 "행글라이더와 스카이다이빙 하는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려보이는 땅의 풍경은 우주의 모습과 닮았고, 창공에서의 무소음은 천국에 온 듯 신비로운 느낌이라고 하는데 비슷한 것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바다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자신은 하늘에서 바다를 내려보는 심정을 알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대구나 연어가 고향의 흙 냄새와 물 냄새를 쫓아 귀향할 때, 그 마무리 단계에서 지친 몸으로 바다 위로 고개를 들고 고향에 다 온 것인지 쳐다보잖아요. 그들의 눈에 비친 고향의 산하와 제가 보는 풍경이 닮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도 하늘과 땅과 물밑에서 사람들은 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문어를 많이 잡는 날은 재수 좋은 날이라던 정민씨의 테왁에 내일은 전복과 문어, 군소가 가득 차기를 바란다.

거제도에서 해녀가 잡은 해산물을 먹게 된다면 어쩌면 정민씨의 사랑과 열정이 배어 있는 해삼이나 전복일 수도 있다. 찬찬히 씹다 보면 거제도 청정바다의 싱그러운 내음과 함께 힘찬 숨비소리가 들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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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월에 퇴직한 후 백수이나, 아내의 무급보좌관역을 자청하여 껌딱지처럼 붙어 다님. 가끔 밴드나 페이스북에 일상적인 글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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