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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에서 내려오던 화산 지형이 보목동 해안을 만나는 곳에 제지기오름을 만나고, 제주올레길은 제지기오름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제지기오름을 지나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한 효돈동의 해안을 자유롭게 걸었다. 

고도가 낮아지는 서귀포 남동해안, 기후가 따뜻한 평지에는 효돈동의 상징과 같은 감귤밭이 여기저기에 펼쳐져 있었다. 일찍부터 감귤재배가 이루어진 효돈동은 날씨가 따뜻해서 귤의 당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흑도새기 한 마리를 안고 여행객을 반긴다.
▲ 하효마을 돌하르방. 흑도새기 한 마리를 안고 여행객을 반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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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효마을 앞에 이르자 살집이 두툼한 돌하르방이 흑도새기(흑돼지) 한 마리를 안고 서 있다. 작은 석제 표지판에는 '놀멍 쉬멍 보멍 감서'라고 되어 있는데, 놀면서 쉬면서 보며 가시라는 따뜻한 마음을 담고 있다. 그 옆에는 실외 사진 전시장이 있는데, 흑백사진 속에 테우 자리잡이, 해녀, 돌하르방, 정낭 같은 하효마을의 옛 모습이 정겹게 담겨 있다.
  
태풍의 바람에도 바다가 비교적 잔잔한 곳이다.
▲ 명지미 해안. 태풍의 바람에도 바다가 비교적 잔잔한 곳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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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앞바다는 명지미 또는 맹지미라고 부른다. 이 바닷가는 북동풍이 강하게 불 때는 동쪽 게우지코지에 바람이 머무르고 서북풍이 불 때는 서쪽의 소금코지가 바람을 막아준다.

바람과 파도가 잔잔하여 명지 바다, 맹지 바다라고 불렸던 것이다. 명지미 바다 앞은 바닷물과 만나는 곳까지 긴 현무암 지대가 이어진다. 거친 현무암 바위 위로 강아지 두 마리가 주인 옆에서 행복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명지미의 서쪽은 바닷가 쪽으로 길게 뻗어 나간 곶부리이다. 이 곶의 허리 부분 편편한 바닥돌 위에는 바닷물이 들어왔다가 증발하면 소금만이 하얗게 남는다. 그래서 소금코지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한자를 쓰지 않은 제주도식 한글 이름은 참 곱기만 하다.

이 아름다운 해안로는 언덕의 오르막을 오르는데 언덕 높은 곳에 바다로 길게 뻗은 곶부리, 게우지코지가 나타났다. 게우지코지는 게의 옷을 뜻한다고도 하고, 전복내장을 닮아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이 게우지코지는 바다를 내려다보는 기가 막힌 전망을 가지고 있는데, 이 숨막히는 전망의 절정의 포인트에 빵 맛까지 유명한 한 카페가 자리하고 있다.

게우지코지에서 다시 차를 타고 하효항 쪽으로 내려갔다. 차 한 대만이 지나갈 수 있는 외길이 아슬아슬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외길의 한쪽은 바다인 데다가 반대쪽도 빠져나갈 수가 없으니, 반대쪽에서 차가 나타난다면 한쪽이 한참을 아슬아슬하게 후진할 수밖에 없다. 만약 이곳에서 드라이브 데이트 중인 남자가 연인 앞에서 차를 후진해야 한다면 자신의 운전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날 것이다. 
 
강수기 바위 너머로 아담한 등대가 자리한 하효항이 보인다.
▲ 하효항. 강수기 바위 너머로 아담한 등대가 자리한 하효항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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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우지코지에서 하효항으로 가는 길은 현무암 기암들 너머 바다 전망이 아름다운 곳이다. 철새들이 앉아 논다는 커다란 두 개의 바위인 생이돌, 태풍 파도가 심해지면 물이 솟아올라 하늘에서 물이 떨어진다는 강수기 바위, 썰물 때에 용천수가 많이 나는 해안가 아래쪽의 알수물이 이어진다.  

해안언덕을 계속 내려가자 하얀 등대, 빨간 등대가 나란히 자리한 하효항이 나오고 그 뒤로는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다. 이 하효항 바로 동쪽에는 몇 번 와 본 쇠소깍이 있어서 눈에 익은 길이 이어졌다. 
 
자연스러운 인테리어와 진한 커피 맛으로 유명한 곳이다.
▲ 테라로사. 자연스러운 인테리어와 진한 커피 맛으로 유명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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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효항 앞에는 강릉을 커피의 성지로 만든 테라로사가 들어와 있었다. 가족과 함께 오후의 여유를 찾기 위해 테라로사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 목재를 사용한 높은 천장과 바닥은 마치 서귀포의 깊은 숲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한쪽 벽면을 모두 채운 책장은 남자들의 로망인 나만의 서재 안에 들어선 것 같은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커피 맛으로 유명한 이곳은 너무나 다양한 커피 종류가 있어서 어떤 커피를 주문해야 할지 어렵게 만든다. 나는 오늘의 드립 커피이자 나의 기억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에티오피아 커피를 주문해 마셨다. 나는 포근한 분위기와 함께 커피를 마셨다.
 
창문 너머 감귤밭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 테라로사 감귤나무. 창문 너머 감귤밭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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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높이의 통유리 창문으로 인해 카페 안은 매우 감성적인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서는 제주도의 향토적인 자연, 감귤밭이 보였다. 제주도의 바다 전망은 없어도 초록색 감귤밭을 풀어놓은 풍경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알게 되었다. 

테라로사 밖에는 어둠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나는 아내가 좋아하는 쇠소깍으로 함께 산책을 하였다. 서귀포의 현무암 지하를 흐르다가 솟아오른 물이 바닷가의 효돈천(孝敦川) 하구의 절벽 사이에서 깊고도 푸른 물웅덩이로 흐르고 있었다. 자연이 만든 아름다운 절경이지만, 너무도 완벽해서 마치 대형 테마파크에서 일부러 만든 어드벤처 공간 같이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카약과 테우를 타던 손님들은 떠나고 한적한 모습이다.
▲ 쇠소깍. 카약과 테우를 타던 손님들은 떠나고 한적한 모습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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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소깍에서 카약과 테우를 타는 곳은 이제 손님들이 다 떠나고 한적했다. 나는 아내, 딸과 함께 쇠소깍 앞의 검은모래 해변으로 내려갔다. 바닷물에 다듬어진 검은 화산석이 고운 바다 모래가 되어 쌓여 있었다. 일반 모래사장 해변과는 다른 강렬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곳이다. 바다 저 멀리에서는 한치 잡이 어선들의 불빛이 아스라히 빛나고 있었다. 
  
강렬한 검은모래의 해변 너머로 한치 잡이 배들의 불빛이 보인다.
▲ 검은모래 해변. 강렬한 검은모래의 해변 너머로 한치 잡이 배들의 불빛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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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기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주의 마을, 오름, 폭포와 그 안에 깃들인 제주의 이야기들을 여행기로 게재하고자 합니다.


태그:#제주, #제주도, #제주여행, #쇠소깍, #테라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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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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