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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퀴어문화축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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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퀴어문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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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2014년 6월의 기억은 내게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마 시간이 더 지나도 그럴 것만 같다. 그해 이른 여름 나는 처음으로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했다. 사실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드러내는 이 축제의 존재를 그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내가 동성애자임을 철저히 숨기고 살았으며 아웃팅(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이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혀지는 일) 위험에 매우 민감했다.

지금은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성소수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실제로 그러한 행사라는 걸 잘 알지만, 그때는 누군가 현장에서 나를 본다면 내 성적지향을 눈치챌 것만 같았다. 이제야 생각해보면 그런다고 한들 큰일도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한국여성민우회에서 회원으로 열심히 활동 중이었고, 그 와중에 민우회가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친밀하고 함께 있으면 안정감을 주는 활동가들과 회원들이 축제에 함께 가지 않겠냐고 권유했다. 혼자서는 두려운 일도 동료가 생긴다면 달라지기 마련이다.

나는 그들의 손을 잡았고 전에 하지 못한 놀라운 일을 경험했다. 축제의 현장에서 사람들은 부담 없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상징하는 여섯 색 무지개를 흔들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드러내고도 자유로운 광경을 살면서 처음 목격했다. 그리고 그 분위기 속에 나 역시 스스럼없이 섞일 수 있었다. 우려와 불안이 환희와 후련함으로 바뀌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코로나19가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남긴 도전

이후 서울퀴어문화축제는 내가 매년 찾는 행사가 되었다. 사실 '퀴어문화축제'라고 하면 1년에 단 한 번 광장에 모여 잘 놀고 끝나는 행사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나에게 퀴어문화축제의 영향력은 축제가 열리는 기간에 한정되지 않았다. 짧은 시간 광장과 거리, 영화관에서 해방감을 맛보고 나면 이 자유를 일상에서도 누리고 싶다는 희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가 사회에서 사라져야 하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여론을 설득하거나 제도를 고쳐야만 한다. 즉 글을 쓰고, 말을 하고, 움직여야 한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축제가 만든 공간 속에서 차별 없는 사회에서 사는 감각을 느끼게 하고 이를 추구하도록 만든다. 거기에 축제에는 이런 지향을 공유하는 단체들의 부스도 있으니 바로바로 마음 맞는 곳을 찾기도 좋다.

사실 2014년은 서울퀴어문화축제에게도 큰 도전이 있었던 해였다. 그해 퍼레이드는 처음으로 신촌에서 열렸고 혐오집단의 조직적인 방해로 행진이 막히는 사태가 발생했다. 조직위의 기지로 퍼레이드는 지연만 되었을 뿐 무사히 완주를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은 해마다 계속되었다. 커진 참가자 규모를 수용하기 위해 시청 앞 서울광장으로 퍼레이드의 개최지가 변경됐고, 행진코스는 매해 길어지다 작년에는 광화문 광장까지 걷게 되는 역사적인 순간도 맞이했다.

올해 역시도 서울퀴어문화축제 앞으로 커다란 과제가 전달되었다. 차이가 있다면 이 도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아무도 환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바로 코로나19의 유행 속에서 방역수칙을 준수하면서 축제를 여는 일이었다.

오프라인 행사를 온라인으로, 모범 사례를 남긴 축제

사실 상상하기 어려웠다. 각각 광장에서 열리는 서울퀴어퍼레이드와 영화관에서 열리는 한국퀴어영화제로 구성된 서울퀴어문화축제는 무엇보다 공간이 중요한 행사가 아닌가. 사람들이 모일 수 없다면 축제의 개최가 가능할까. 이런 궁금증은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온라인으로 열린다는 공지를 확인했을 때도 쉽게 가시지 않았다. 기존에 축제가 진행했던 여러 행사들이 모두 옮겨가기는 어려울 것이고 아쉽지만 포기해야 할 것들도 있으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막상 축제가 시작되자 그런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 생겼다.
 
 퀴어부스ON
 퀴어부스ON
ⓒ 서울퀴어문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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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퀴어문화축제는 기존에 진행하던 행사를 단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모두 온라인으로 옮겨왔다. 우선 부스는 서울퀴어문화축제 홈페이지에서 '퀴어부스 ON'이라는 이름으로 개설됐다. 서울퀴어퍼레이드의 자랑인 무대행사 역시도 사전녹화를 한 후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었다. 심지어 그 불가능할 것 같은 퍼레이드도 신촌·이태원·광화문·서울광장을 무지개 깃발을 들고 걷는 활동가의 모습을 생중계하는 방식으로 구현했다.

한국퀴어영화제 역시 영화 스트리밍 플랫폼 '퍼플레이'를 통해 온라인 상영관을 마련했고 유튜브를 통해 GV 행사까지 빠짐없이 진행했다. 물론 국내에서 오프라인 행사를 온라인으로 전환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스·공연·행진·상영 등 성격이 다른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닌 축제가 완벽히 온라인으로 전환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다른 많은 행사들이 참고할 모범사례를 남긴 게 아닐까.

변화를 향한 축제는 계속된다
 
 서울퀴어문화축제 부스 메인
 서울퀴어문화축제 부스 메인
ⓒ 서울퀴어문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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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온뒤무지개재단 부스
 비온뒤무지개재단 부스
ⓒ 서울퀴어문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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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번 서울퀴어문화축제는 모두가 떨어져 각자의 공간에서 참여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모일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퍼레이드 행사가 진행되는 당일 유튜브 실시간 댓글 창에는 다수의 사람이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감상을 나누었다. 가끔 혐오발언을 하는 사람이 등장하긴 했지만 관리자가 신속하게 이를 삭제했고 사람들은 '혐오세력이 오다니 퀴어퍼레이드가 맞는 거 같다'며 여유 있게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 과정에서 들었던 생각은 2020년 서울퀴어문화축제를 통해 다채로운 개성을 지닌 성소수자와 앨라이(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온라인에 모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경험을 사소하게 말하고 넘길 수 없는 것이 커뮤니티 사이트이든,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란이든 사람들이 모이는 온라인 공간에서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배제를 피하기는 극히 어려웠기 때문이다. (개인이 섬처럼 연결된 SNS는 애초에 성격이 아주 다른 곳이라 생각한다.)

이따금 들르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성소수자 혐오 게시물이 올라와도 거기에 동조하는 댓글들을 보고 나면 반박은커녕 계속해서 침묵하길 반복했다. 그러다 발길을 끊은 커뮤니티도 많다. 하지만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를 비롯해 다양한 존재를 향한 혐오와 차별은 허용될 수 없다는 원칙이 상식으로 작동하는 온라인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건 아주 짜릿한 일이었다.

물론 '우리끼리만 계속 모여 살며 혐오청정 구역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올해 축제에서 인권존중과 평등이 원칙인 온라인 공간을 경험하고 나니 다른 곳들의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바꿔야 할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인터넷 플랫폼 또한 우리가 변화를 추구해야 할 중요한 영역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일단 온라인에서 내 정체성을 드러내고도 자유롭고 안전한 감각을 한번 느껴보면 이전으로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20년 코로나19가 퍼진 세상은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요구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역시도 그 흐름에 맞추어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이 축제가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고 추구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2020년 서울퀴어문화축제는 9월 29일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축제가 미친 영향력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다. 2014년 내가 처음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만난 후 매년 그러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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