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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화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
 이란 화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
ⓒ 화성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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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을 때나 쓰던 줌인, 줌아웃이 이젠 다른 뜻이 되었다. 줌=화상회의. 애들 학교 수업하라고 산 노트북 앞에 앉아서 높이, 각도, 조명, 배경 등을 세팅하는데 기분이 좀 묘했다. 촬영 세팅의 긴장감. 토요일이었지만, 평일 출근준비 때와 같이 세수, 화장, 옷 입고 촬영 세팅장(쿠션과 방석)에 앉았다. 짧은 화상회의는 잠깐씩 해본 적이 있었지만, 장장 이틀 동안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하는 화상토론은 난생처음이었다.

지난 8월초엔가 전화로 기본소득에 대한 조사라며 전화가 왔었고, 나는 관심이 있던터라 흔쾌히 토론회가 있으면 참여하겠다고 답했었다. 그리고 8월말에 다시 전화가 와서 '토론회가 이틀이고 시간도 하루 종일이라고 그래도 하실 의향이 있느냐'고 묻기에 하겠다고 했다. 토론비가 좀 있다고 해서라기보다 다행히 토론 날이 주말이고, 또 기본소득으로 장시간의 토론을 한다는 게 궁금하고 반갑기도 했다.

9월 21일과 25일 두 차례에 걸쳐서 온라인 점검을 위한 리허설을 하고 난 후, 드디어 9월 26일부터 27일 이틀간 장장 약 16시간의 긴 숙의토론회가 열리게 되었다.

자료를 보고서야 알게 되었던 건 경기도민 4500명(표준화된 교육을 받고 무작위로 생성한 전화번호)에 대해 1차 면접을 하고 난 후, 성, 연령, 지역 및 의제관련 태도 등을 감안해서 200명이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년에 처음 참여했던 165명의 참여단 중 20명을 선발해서 총 220명이 참석하게 되었다고 한다(실제 참여는 237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코로나19 이후로 마스크 쓰지 않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한 번에 만나게 되니 정말 좋았다. 안내책자에 '댁에서 참여하시는 만큼 마스크 착용은 하지 말아주시고'라는 문구는 빨간 줄을 쳐 놓았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말라는 말이 이렇게 눈물 나게 반가운 말일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참가자 중 한 청년이 대표로 읽은 '도민참여단의 약속'도 좋았다. 초등학교 입학생들처럼 다들 낯선 환경에 긴장한 얼굴들로 손을 들고 낭독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생각이 다르더라도 끼어들지 않고 끝까지 듣습니다' '다른 사람도 충분히 참여할 수 있도록 나의 참여 기회와 시간을 잘 지킵니다' 등 화상회의 초년생의 눈이 화면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이틀 여정의 마라톤 숙의과정

인사말이 끝나고 20분간 기본소득 개념과 쟁점(서정희 군산대학교)에 듣고 반배정(분임토의)을 받고 담임(퍼실리테이터)과 반장(모니터링요원조장)을 따라 주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각자의 생각을 질문으로 만들고 발표한 후 취합하고 대표를 선정하는 모든 과정이 자발적이고 평화롭게 이루어지는 게 놀이처럼 즐거웠다. 22개조가 모두 우리처럼 즐겁고 약간 흥분된 얼굴로(표정을 자세히 보게 되는 줌이다) 질문을 뽑아왔고, 직접 화면에 나와서 질문하고 답을 들었다.

기본소득은 모두에게(보편성), 자산조사나 근로 요건없이(무조건성), 개인단위로 지급하는(개별성), 정기적인(정기성), 현금급여(현금성)이다. 그리고 토지나 천연자원, 생태환경에서 발생한(자연적 공유부) 수익은 인류 모두의 것인 자연에서 기초한 수익이므로 모두에게 나누어져야 한다. 또 지식, 빅데이터 등에서 발생한(인공적 공유부) 수익은 공동의 노력으로 발생했음에도 누가 얼마큼 기여했는지 계산할 수 없으므로 1/n로 분배하는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다.

이런 낯선 내용이라도 잘 듣고 의견을 말하다 보니,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 유의미한 질문도 만들어내게 되었다. 11명의 조원들이 이해한 것들을 조각조각 맞추다보니 좀 더 그림이 형태를 맞춰지는 거 같은 경험이었다. '낯설게 보기'와 '경청하는 청중들'에 의해 우리의 창의력은 참여의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고 믿는다. 조원들의 한결같은 소감이 그걸 말해준다. '다른 사람들도 이걸 경험했으면 한다.' '더 널리 공론화하면 모두가 기본소득에 대해 반대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

오후 발표에 사회보장제도 확대방안(김태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제도개혁+기본소득(백승호 카톨릭대학교)을 듣고는 이제 좀 더 활발한 의견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백승호 교수님의 강의에서 인상적인 말들이 많이 나왔고, 조원들 모두가 기본소득의 필요성에 대해 수긍하는 분위기가 높아지는 듯했다. 특히 '온정주의의 역설-어려운 사람에 집중하자는 주장이 실제 갈등을 조장하고, 선별하고 집중하면 복지예산도 같이 줄어들어 두터운 지원이 불가능하다'라는 말에 대해 공감이 컸다.

공공부조의 문제점, 다양하고 복잡한 수급조건으로 수급자가 못되는 사람들도 많고(사각지대), 빈곤의 덫(소득활동으로 재산이 늘어나면 수급자가 안 될까 하여 의욕상실) 등 막연히 필요한 사람에게 지원하자라는 건 너무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일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다.

기본소득 재원 마련에 대한 다양한 의견 도출

다음날 다시 이어진 출석체크 이후 바로 발표가 바쁘게 이어졌다. 기본소득의 재원마련 방안-기본소득형 토지세(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기본소득형 탄소세(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기본소득형 소득세(강남훈 한신대학교)에 대한 발표는 짧지만 핵심을 쉽게 설명해주셨다. 분임토의 시간이 부담이 될 줄 알았는데, 훈화말씀 끝나고 교실로 돌아온 아이들처럼 서로 얼굴을 확인하고 모두 제시간에 들어와 있는 화면을 보니 반갑고 안심이 되었다.

본격적인 숙의토론이 시작됐다. 재원마련은 역시 의견이 모두 달랐다. 일단, 토지세와 소득세를 부과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모두 이해가 부족했다. 그러나 탄소세는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부분이었다. 우리가 모두 탄소배출의 주범이기 때문에 탄소세를 내고 그것을 재원으로 해서 기본소득세를 마련한다면, 일거양득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20대 청년과 30대 회사원과 워킹맘, 그리고 40대 주부, 50대 엔지니어와 워킹맘, 60대 정년퇴임한 분 등으로 모인 우리 조는 마무리하기 직전까지 최대한 진심의 말을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질문할 것을 정리해서 채팅방에 쓰고, 질문을 발표할 사람을 손을 들어 뽑고, 분임토의에 대한 느낌을 얘기하는데 참여자 모두 "토론을 통해서 처음 들어본 기본소득에 대해 알게됐다" "더 공부하고 싶어졌고, 더 많은 분들이 토론에 참여해서 경기도뿐만이 아니라 전 국민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본소득에 대한 재원마련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모하면 어떻겠냐"는 의견도 나왔다.

화상회의는 낯설었지만, 이동거리를 단축시키고 발언기회가 균등히 조절되고 발표자의 의견을 경청하게 되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만약 일방적인 강의였다면 좀 달랐을 것 같았다.

모든 22개조의 질의에 대해 전문가응답이 다 끝나고, 설문조사와 마무리말씀과 폐회선언을 했지만, 모두들 화면에 그대로 있었다. 뭔가 아쉬운 거였다. 나도 '회의에서 나가기' 버튼을 클릭하고 싶지가 않았다. 악수라도 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싶은데 화면으로만 바라봐야 하는 그 아쉬움인 것 같았다. 한참만에야 줌이 강제로 종료되고 나서야 모두들 자리를 떠났으리라.

음소거 해제하고 '안녕히 가세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란 화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입니다.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립니다.


태그:#화성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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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주변에 피는 꽃, 화성시민신문 http://www.hspublic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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