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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들빼기
 고들빼기
ⓒ 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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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은 누가 돌보지 않아도 때가 되면 꽃을 피운다. 학교 여기저기에 고들빼기가 피고 진다. 씨앗을 퍼뜨릴 채비를 마친 녀석도 보인다. 운이 나빠서 작은 틈새로 겨우 뿌리를 내린 녀석도 꽃을 피웠다. 다음 세대는 부디 흙이 많은 곳에 뿌리를 내리길 바란다. 

운동장 옆에 선 벚나무는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하늘은 맑고 높고 푸르다. 운동하기 딱 좋은 날인데 올해는 코로나로 체육대회가 열리지 않는다. 복도에 거리두기를 위해 붙여 놓은 발자국 스티거가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다. 학교 화단을 걷다가 교실에서 수업하는 소리를 듣는다. 목소리가 큰 여러 선생님 목소리가 섞여서 들린다. 이럴 때마다 떠오르는 옛날 기억이 있다.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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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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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나는 중학교 다닐 때 '온실 당번'을 했다. '온실 당번'은 근로장학생 비슷한 것으로, 학교 온실과 화단에 화초를 기르는 일을 했다. 온실에 있는 화초는 점심시간과 수업을 마친 시간에 물을 주면 되기에 일이 힘들지 않았지만 화단은 좀 일이 많았다.

지금도 많이 심는 페튜니아, 칸나, 다알리아를 심는 날은 수업에 들어가지 못하고 화단을 일궈야 했다. 한 일주일 정도는 소사 아저씨와 함께 정원사가 되는 셈이었다. 지루한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니 좋기도 했지만 유리창 너머로 나를 측은하게 쳐다보는 시선을 견디어야만 했다. 지금도 쓸모 있는 화초 공부를 했으니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하지만 중학생 마음엔 작은 상처가 되는 일이었다.

아주 오래된 영화 <선생 김봉두>가 있다. 영화 속에 아버지가 학교 소사인 선생 김봉두가 수업 시간에 공부 안 하면 소사 아저씨처럼 산다는 말을 듣고 상처를 입는 장면이 나온다. 김봉두는 나와 나이가 비슷하다고 여겨진다. 70년대 국민학교 교실엔 번듯한 직장을 가진 부모를 둔 학생이 많지 않았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처럼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교사가 참 많았다. 심한 체벌도 수시로 있었다. 어지간한 말에는 좀처럼 상처를 받지 않는 내성은 그때 생긴 듯하다.

우리나라 학교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25년 째 학교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상처 받지 않고 모두가 행복한 학교가 되었다고 자신하지 못하겠다. 그래도 70년대는 가난해도 열심히 공부만 하면 참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전히 고등학교는 학생을 성적에 따라 한줄로 세우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학생부 종합전형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보기에 따라 학종이 가정 형편에 따라 줄 세우는 효과가 더 크게 보인다.

대한민국 교실에 성적보다 인성이 먼저가 되는 날이 올까? 그날이 오면 수업 시간엔 정의란 무엇인가를 논하고 세익스피어를 읽을 것이다. 또 수업이 끝나면 삼삼오오 모여서 그림을 그리고 즐거운 노래를 부른다. 운동장은 공을 차고 농구를 하는 학생들로 가득 찬 풍경이 펼쳐진다. 문학을 꿈꾸지 않아도 시집 하나쯤은 끼고 살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https://suhak.tistory.com/1138 [수학 이야기]에도 올립니다.


태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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