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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을 보다가 슬쩍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검색해 읽었다. 천육백여 년 전에 지어져 지금껏 이어져 온다는 시골 찬양론이다. '녹봉 조금에 소인에게 절할 수 없어' 귀거래(고향으로 돌아가자)를 택한 이야기. 가오는 가상하지만, 농촌의 삶은 정말 귀거래사의 기대처럼 아름답기만 했을까?(정약용이 그린 농촌은 지옥도였다)

<월든>은 이 분야의 명작이지만, 소로우는 그저 스물일곱쯤 시작해 채 서른이 되기 전까지만 호숫가 오두막서 머물렀을 뿐이다. 그에겐 '영혼과 생활의 감시자' 옆지기도 없었고, 이웃과도 (거의) 교류하지 않았다(그는 월든 시절 이후로는 대도시서 평생을 살았다).

핫한 유튜버 김창옥은 '남자의 진짜 로망'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걸 몰라서 한참을 헤매었다고도 고백했다. 동굴 속에 박히는 꿈. 시골서 나무하고 장작을 패고, 불 지펴 밥하는 삶 말이다. '나는 자연인이다'는 그 꿈을 이룬 이들을 보여준다(그러나 그곳엔 지독히 고독한 남자들만 보인다).

시골이란 그런 귀퉁이가 전부일까? 남자(인간)의 욕망은 정말 그렇게나 단순할까? 소로우가 8년쯤 더 월든에 머물렀다면? 도연명의 리얼 전원생활의 서사는? 평범한 남자들의 진짜 욕구는? <넌 아직 서울이니?>에서 난 그 답들의 얼마를 본 것 같다. 
 
<넌 아직 서울이니?>(안영삼/빈빈책방)  지리산 자락 구례의 꽃들, 술들, 그리고 착한 사람들은 빼고 읽었다. '자본주의에서 탈출'하고자 했지만 결국은 대충 살고, 막 산 이야기들에 하하하 웃었다
▲ <넌 아직 서울이니?>(안영삼/빈빈책방)  지리산 자락 구례의 꽃들, 술들, 그리고 착한 사람들은 빼고 읽었다. "자본주의에서 탈출"하고자 했지만 결국은 대충 살고, 막 산 이야기들에 하하하 웃었다
ⓒ 빈빈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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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가 천재 같은데, 시골서 기를 겨?" 서울로 떠났던 그가 돌아왔다

시골 살던 그의 아버지가 서울로 이사를 결심한 것은 어릴 적 이웃으로부터 들었던 소리 때문이었다. "댁네 막내가 천재인 거 같은데, 여그 시골서 묵힐라고?" 그렇게 시작된 도시살이 서울생활에서 그는 '천재'를 세상에 드러냈을까? 출세를 했을까.

그는 세상과 자주자주 비껴나갔다. 야무지고, 잽싸고, 계산에 빠르고, 줄을 잘 서고, 돈 냄새를 잘 맡고, 제도권 안에 드는 일 따위들은 용케도 피해 다녔다. 이젠 아버지 나이가 된 그는 반대의 이유(천재가 아님이 판명되었기에)로 새 결심을 굳혔다.

'성공할 능력도 없고, 성공에 그다지 의지도 없어서'(이 고백이 일단 마음에 들었다. 출세가 충분히 좋았다면 내려올 까닭이 없는 거잖아) 영삼은 생각이 비슷한 선배와 구례로 내려올 결심을 했다.

그런데 첫 번째 배신. 선배는 짝을 만나곤 서울에 정착해 버렸다. 영삼은 그래도 굳세게 인연과 일과 욕망을 내려놓고, 그렇게 정리해 마련한 약간의 돈도 갖고, 2008년 광우병 시위서 만난 옆지기까지 꼬신 뒤, 2011년 겨울 구례 땅을 밟았다. 

구례라는 땅으로 내려올 때, 그가 잡고자 한 일은 농부였다. '자본으로부터의 탈출' '욕심으로부터의 해방' 같은 거창한 구호! 결국 보면 '대충 살고, 막 살고, 건성건성 살고 머 그런 지랄'이었지만, 땅과 함께 정직한 땀방울 흘리는 일은 그들을 떳떳하게 할 것 같았다. 자급자족의 삶은 그런 삶에 가까울 것 같았다.

하지만 호미 하나, 삽 한 자루 스스로 생산하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자연주의, 친환경 농법을 결심했다. 제초제니 농약은 거부했다. 풀을 매야지, 김을 매야지! 근데 할머니들처럼 꼬부려 앉아 성실히 일을 할 수가 있나? 농부들처럼 새벽에 깰 수가 있나?

그럼에도 끝내 제초제 살 생각도, 제초기 쓸 생각도 거부. 서울서 친구들이 내려오면 밤잠을 아껴가며 통음하는 기쁨을 포기할 수가 있나? 한 달 쯤 돌주돌주(돌아보면 술, 돌아보면 술) 하다 보니, 풀들의 무시무시한 번식력 앞에서 봄에 심어놓은 콩이며 과실수는 흔적도 없이 묻혔다.
 
어느 것이 풀이고, 어느 것이 작물인가? 문화기획도 해보고, 벤처도 해보고, 어느 것 하나 도시인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땅을 밟고 농사를 짓는 일만은 포기할 수가 없어
▲ 어느 것이 풀이고, 어느 것이 작물인가? 문화기획도 해보고, 벤처도 해보고, 어느 것 하나 도시인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땅을 밟고 농사를 짓는 일만은 포기할 수가 없어
ⓒ 안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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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 해도 열두 번 해도, 모두 망하고 실패했다

그래 문화사업으로 진로를 돌려보자. 서울물을 오래 먹었던 그가 나름 경쟁력을 갖는 분야이기도 했다. 문화상품을 만들었다. 전라도 사투리로, 도시인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매력적 캐릭터와 메시지를 가진 기획물들이 완성되었다.

티셔츠, 엽서, 손수건 등을 만들었다. 망했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 동네 산수유 나무로 만든 스토리 열쇠고리는 어때? 망했다. 나뭇잎에 구멍을 뚫어 만든 그림으로 지역축제에 나가고, 오일장에도 진열했지만 망했다. 당최 팔리지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들을 준비하느라 돈은 또 얼마나 썼게?

아이디어가 돈이 되는 사회다. 벤처 사업을 해보자. 강력 네이디뮴 자석이 있다. 척력을 이용하면 신발에서 떠있는 깔창을 만들 수 있을 거야. 옆지기를 졸라 십몇만 원어치 자석을 샀다. 실패. 금속탐지기를 사보자. 여기 섬진강 서시천은 가야문화권 아닌가. 청동기 보물이 묻혀 있을 거야. 찾은 건? 캔과 병뚜껑 그리고 잡철들 한 가마니.

아니다. 이럴 게 아니라 같이 해보자. 협동조합? 그게 좋겠다. 여기 구례 사람들 모두 재주덩이들 아닌가. 술도 그간 어지간히 마셔온 친구들 아닌가? 각자가 잘 하는 일, 이미 하고 있는 일들을 이어보자. 지리산 무공해 감말랭이는 어떨까? 감농사를 하는 조합원에게도 이득, 이미 상표와 박스디자인 포장을 한 경험도 있다.

어? 건조기가 필요하네? 큰 게 왜 필요해? 너네 집 건조기 있지? 쫌, 늦는다야. 어제 썰어놨던 감 곰팡이 났다. 씻을까? 말리고 있는 건데? 포장지 밀봉기 있어? 그런 게 어딨어? 다리미로 하지. 야, 쫌 늦는다. 그렇게 만든 감말랭이는 아무리 가격을 낮춰도, 사람들 사먹기엔 너무 비싸다. 망했다.
  
구례에는 아직 공동으로 집 짓는 생활이 남아있다 함께 일하고, 함께 술마시고, 함께 이런 저런 생활도 엮인다. 몸과 몸으로 만나는 이런 관계가 농촌의 삶이다
▲ 구례에는 아직 공동으로 집 짓는 생활이 남아있다 함께 일하고, 함께 술마시고, 함께 이런 저런 생활도 엮인다. 몸과 몸으로 만나는 이런 관계가 농촌의 삶이다
ⓒ 안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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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누나 목덜미 좀 봐봐! 형이 누나 빨어 먹는 빨대가 꽂혀 있잖아!"

후배는 비아냥거렸다. 어떤 남자들은 부럽다했지만, 많은 여자들은 그를 나쁜 놈이라 했다. 그도 안다. 스스로를 이제는 '구례 개 쓰레기'로 부른다. '천재' 영삼이 서울서도 실패하고, 다음엔 시골 구례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의 어머니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영삼아. 열두 가지 재주를 가진 인간이 저녁거리도 없는 벱이다. 부디 하나라도 진득허니 혀라!"

'구례 개 쓰레기'가 전해준 역설, 우린 그런대로 모두 괜찮다

영삼은 책에서 농사 이야기, 열두 가지 일 벌인 이야기, 구례의 변화 이야기, 그리고 구례에서 만난 열두 사람(물론 실제로는 더 많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렇게나 많이 시도하고, 그래서 그렇게나 많이 실패한 덕분에 나는 역설적으로 알게 되었다.

도시에서의 삶을 뿌리채 옮겨갈 만큼 '단단하고 똑똑한' 그보다 시골 할머니들의 앉은뱅이 농법이 더 우수하다는 사실을. 농약 치고 제초제 치는 외삼촌이 왜 그러는지, 나라도 그럴 것이다.

도시에 흔한 기획회사나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매출과 능력은 언제나 그보다 더 빛날 것이다. 도시인들의 남루한 삶도 나름의 생존능력임을, 그들도 치열하게 나아가고 있음을, 우리들 모두에게 우리의 진실이 있다는 것을.  

구례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집값이나 임대료 폭등에 일조를 한 것은, 아마도 영삼 같은 사람일지 모른다. 일찍이 구례의 가치를 알아버린 사람들. 더 착하고 더 영리해지고자 한 이들이 벌이는 실패들. 그들 삶의 한 자락씩을 공유하고 기록해 준 덕에 우리는 나중에 '구례 양산박'의 이야기를 조금쯤 기억도 할 것이다.

그네들의 삶 역시 우리들 서울의 삶과 그다지 다르지 않아서 다행이다. 똑같이 먹고 살아가는 걱정하는 것, 똑같이 친구들과 이웃들과의 관계에 부대끼는 삶인 줄 알아서, 나는 빙그레 웃었다. 일단 여기서부터 우린, 그도 우리도 다시 시작이다.

덧붙이기 : 그가 누린 자연, 그가 누린 술, 그가 누린 사람들 이야기는 부러 다루지 않았다. 그가 누린 그 많은 '혜택'들만큼 이 만큼의 '고생'도 있었다는 걸 짚고 싶었다. 나는 아직 서울인데, 그래서 내가 얻고있는 이 고된 노동과 불안 역시 내 '선택'이었음을 다시 확인하고자.

넌 아직 서울이니?

안영삼 (지은이), 빈빈책방(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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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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