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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중산간의 동과 서를 잇는 1119번 도로는 오름 사이를 지나면서 마음이 평온해지는 길이다. 이 아름다운 길이 서중천 계곡과 만나는 곳에서 머체왓숲길이라는 예쁜 이름의 숲길을 만나게 되었다. 

머체왓숲길이라는 이름에서 '머체'는 돌, '왓'은 밭을 뜻한다. 돌밭 위에 만들어진 숲길이라는 뜻이니, 결국은 곶자왈의 뜻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육지의 단어와 많이 다른 게 놀랍기도 하지만 오리지널 제주어인 '머체왓'의 어감은 훨씬 더 정겹기만 하다. 
 
돌밭 위에 만들어진 숲길로 들어가는 길이다.
▲ 머체왓숲길 입구. 돌밭 위에 만들어진 숲길로 들어가는 길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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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체왓숲길이라고 적힌 노란 나무 대문을 들어서니 입구부터 꽤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눈 앞에 나타난 이 초원은 말을 키우는 목장이다. 이 목장의 들판은 얼마전 한 방송국의 '바퀴 달린 집'에 나와서 제주도 들판과 숲의 평화로움을 선사한 바 있는 곳이다.

입구를 지나 걸어가다 보면 언덕 한 중앙에 운치 있는 나무 한 그루가 홀로 서 있다. 마치 언덕의 주인인 양 여행객을 반기는 이 나무 아래에는 나무의자 2개가 놓여 있어 사색의 공간을 제공한다. 나의 가족도 이 의자에 앉아 사진을 남기려고 하였으나, 먼저 온 한 가족이 사진을 한참동안 찍으며 비켜주지 않아서 우리는 우리의 갈 길을 갔다. 
 
나무 앞 의자 2개는 사색의 시간을 제공한다.
▲ 언덕 위 아름드리 나무. 나무 앞 의자 2개는 사색의 시간을 제공한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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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이 아름드리 나무가 있는 곳은 머체왓숲길로 들어서는 입구와는 비켜서 있는 곳이어서 자칫하면 숲길 입구 가는 길을 놓치기 쉽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숲길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그곳에는 제주 생태계의 다양성과 풍부한 식생을 바로 만날 수 있는 온전한 곶자왈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만든 구조물이 전혀 없는, 자연 그대로의 숲. 그 안에 구실잣밤나무, 참꽃나무, 붉가시나무, 조록나무가 서로 엉켜서 자라고 있었다. 조화를 이루며 자라고 있는 나무들이 마치 인간세상을 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머체왓숲길에는 아직까지 여행객들이 많지 않아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계속 만나게 된다. 머체왓숲길은 바닥이 고르지 못한 흙길이지만 완만한 경사의 길이어서 오르는데 그리 어렵지는 않다. 울창한 나무들이 강한 햇볕을 막아주어서 한낮에 이 산길을 걸어도 시원한 느낌을 받게 된다. 기온과 식생이 다른 이 숲길은 마치 열대나라의 숲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머리 위로는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서 성인들이 적당한 산행을 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우리는 수많은 나무들을 뚫고 구불구불 이어진 숲길을 따라 계속 걸어 나갔다. 조금씩 조금씩 숲길이 올라가고 있었다. 
 
이야기하고 떠들다가 용암에 묻혀 바위가 된 용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 소룡 이야기. 이야기하고 떠들다가 용암에 묻혀 바위가 된 용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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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걷다가 작은 계곡을 만났는데, 길다란 바위가 마치 용처럼 육중하게 계곡을 막고 있었다. 이곳에 '소룡(小龍)의 사랑'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형제 용 두 마리가 한라산 화산이 폭발한 줄도 모르고 신나게 떠들다가 용암에 뒤덮여 바위가 되어버렸는데, 지금도 바위 안에서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는 이야기. 묘하게 생긴 바위 덩어리 하나도 이렇게 스토리텔링이 더해지면 달리 보이게 된다.

한낮에도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는 야생의 숲길 바닥에는 수많은 버섯들이 자라고 있다. 제주는 바람, 여자, 돌이 많아 삼다도라 불리는데,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한다면 육지보다 훨씬 많이 내리는 '비'가 있다. 제주에는 풍부한 강우량으로 인해 습한 자연이 있고, 이러한 자연만이 이런 다양한 버섯을 성장하게 했을 것이다. 
 
제주의 습한 자연이 이토록 훌륭한 버섯들을 만들어냈다.
▲ 머체왓숲길의 버섯. 제주의 습한 자연이 이토록 훌륭한 버섯들을 만들어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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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낙엽 위에서 발견한 버섯은 인터넷 상에서 아무리 찾아보아도 이름을 알 수가 없다. 버섯의 천국인 제주에서 발견한 국내 미기록 종인가? 마치 악마의 손아귀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는 듯한 이 화려한 버섯은 너무나 황홀하게 생겼다. 

느쟁이왓 다리를 건너자 본격적인 숲길 체험이 시작된다. 제주도의 비와 따뜻한 온도가 잘 키워준 나무들이 자연스럽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주도의 숲길은 그 자연스러운 풍광에 비해서 알려지지 않은 곳이 많은 것 같다. 
 
울창한 나무 아래, 완만한 경사의 숲길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 머체왓숲길. 울창한 나무 아래, 완만한 경사의 숲길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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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은 초록색 편백나무가 우거진 편백나무숲길로 이어진다. 넓은 숲 속에 편백나무가 가지런하게 즐비하다. 편백나무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흐르고 있고 그 바람 속에 새소리들이 들려온다. 편백나무 아래에서 잠시 앉아 있으니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조용하게 들렸다. 그래서 이 숲길은 치유의 숲이라고 불린다. 

쭉쭉 뻗은 삼나무 숲길을 지나 더 걸어가자 제주도에서 세번째로 긴 하천인 12km의 서중천 계곡이 나온다. 서중천 계곡을 따라 더 울창한 원시자연의 숲이 나타난다. 계곡부 숲길 중심으로 만들어진 숲길이 그렇게 아늑해 보일 수가 없다. 

서중천 가장자리에는 물이 고여서 만들어진 물웅덩이, 올리튼물이 있다. 소(沼)의 이름이 마치 영어처럼 들리지만 '올리'는 오리를 뜻하고, '튼'은 뜨다의 제주어이다. 계곡수 풍부한 이곳에 오리들이 한가롭게 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후기, 출륙 금지령이 내려진 200여년 동안 잘 보존된 제주어 단어들이 너무나 아름답다. 
 
완만한 능선과 구름 낀 하늘이 너무나 신비스럽다.
▲ 구름 속의 한라산. 완만한 능선과 구름 낀 하늘이 너무나 신비스럽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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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 밖으로 나오자 대한민국 최고의 산, 한라산이 구름 속에서 장엄하게 모습을 가리고 있었다. 한라산 산록의 완만한 능선과 구름 낀 하늘이 신비스럽게 다가왔다. 나는 이 아름다운 숲길이 사람과 공존하면서 계속 보전되기만을 바랐다. 이 깊숙한 숲길을 다 완주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기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주의 마을, 오름, 폭포와 그 안에 깃들인 제주의 이야기들을 여행기로 게재하고자 합니다.


태그:#제주, #제주도, #제주여행, #서귀포, #머체왓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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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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