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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사진은 지난 9월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해 있는 모습.
 문재인 대통령. 사진은 지난 9월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해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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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혐오와 적대의 상황에서 협치는 '사기'다?

오늘날 트럼프 시대의 미국 정치를 표현하는 가장 흥미로운 개념 중 하나가 바로 '부족주의'(tribalism)다. 부족주의는 더 이상 근대화 이전이나 특정 미개한 지역의 인종·종교·민족을 둘러싼 원시적인 감정 대립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 미국의 헌정주의를 위협하는 적대적인 양대 진영 사이의 파괴적인 충성심을 뜻한다(Chua 2018). 부족주의가 마치 아프리카에서 서로 다른 부족을 대하듯 혐오와 적대를 드러내는 극단의 정치를 꼬집는 개념이라면, 오늘날의 한국 정치도 거기에서 크게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이 글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문재인 정부의 협치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대통령은 정부 출범 이후 일관되게 그리고 지난 총선에서의 완승을 거둔 후에도 '협치'를 강조했고, 구체적 방안으로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의 정례적 개최를 통한 제도화를 제시했다. 

그렇지만 모두 알다시피 21대 국회는 법사위원장 등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가 불거져 의정 사상 처음으로 여당이 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심기가 뒤틀려진 보수야당은 공수처 법안에 대한 처리 거부와 8월과 9월의 임시국회를 추미애 장관의 아들 문제 시비로 소진해버렸다.

2. 협치에 대한 몇 가지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6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21대 국회 첫 본회의. 회의 도중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는 모습.
 지난 6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21대 국회 첫 본회의. 회의 도중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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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도 하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야당의 대표를 지냈던 홍준표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후보를 향해 "자기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며 싸잡아 막말로 비난했고(2017.2.28), 불과 반 년 전 총선과정에서 김승동 미래통합당 후보는 "문재인 폐렴 대구시민 다 죽인다"는 시위 구호를 내걸고 선거운동을 했다(http://omn.kr/1mmkf).

그러니 대통령 입장에서는 21대 국회 개원 연설에서 "협치도 손바닥이 서로 마주쳐야 가능"하다며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공동책임"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협치에 관한 바로 잡아야 할 첫 번째 인식은 '공동책임' 이전에 '대통령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권력과 자원이 집중된 대통령제라는 권력 구조와 압도적 의석수를 갖는 여대야소의 상황 때문이다. 협치의 성공과 실패의 공과는 일차적으로는 제안자이자 설계자였던 문재인 대통령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두 번째 교정 대상은 해법과 관련된 것이다. 학계 일각에서는 협치가 가능한 구조적 조건으로 의회제와 비례선거제, 다당제와 연립정치로 구성된 서유럽의 합의제 민주주의(consensual democracy)를 제안하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올바른 지적이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개헌 성사만을 기다리는 것도 무책임한 처사다.

세 번째 인식은 협치가 적폐청산 등 개혁과제의 방기나 무산을 가져올 수 있는 한가로운 담론이라거나 현재의 정치적 양극화가 민주주의 공고화 과정에서 불가피한 과도기적 현상이라는 인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한국 정치의 발전이나 문재인 정부의 성공(성공한 정부)에 기여하기 어려운 낭만적인 생각들이다. 지금 우리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은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서도 태극기 부대와 촛불 세력, 수구 꼴통과 문빠, 조중동 대 한경오가 DMZ 없이 대치하고 있는 극단의 정치를 해소할 '한국형 협치 전략'이다.

3. 한국형 협치 전략의 단초: 상호 수렴을 통한 극단의 배제 
 
2002년 당시 국회의원 신분으로 3박 4일간 방북해 백화원 초대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단독면담한 박근혜 전 대통령.
 2002년 당시 국회의원 신분으로 3박 4일간 방북해 백화원 초대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단독면담한 박근혜 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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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업지도 공무원 피살사건으로 여실히 드러났듯이 남북한의 적대적 대립은 한국전쟁 이후 가장 중대한 문제였으며, 분단체제에서 평화체제로의 전환이 이 나라 발전의 필요충분조건임을 부정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한 방법과 속도, 주체에 대해서는 남남갈등이라 할 만큼 인식의 차가 크다. 흔히 태극기 부대 또는 극우적 반공세력 또는 '토착왜구'나 '수구꼴통'을 외치는 극단적 문재인 지지자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하나의 방법은 기존 규칙과 정치적 금도를 넘어선 조직이나 목표, 전술을 사용하는 비시민 집단(uncivil society)으로 지정해 법적 제약을 가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방법들은 상대 진영이나 경쟁 세력을 경멸적 말투와 편견으로 거세하거나 외면하는 효과만 가져올 뿐 안정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해법은 주요 정당이 상대방의 정책에 대한 합리적 수렴을 통해 극단의 노선과 세력을 배제하는 것이다.

1987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인상 깊었으면서도 아쉬운 장면 중 하나는 박근혜·김정일의 평양회담이었다. 2002년 5월 11일, 당시 박근혜 의원은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의 초청을 받아 '유럽-한국재단'의 이사 자격으로 3박 4일간 북한을 방문했다. 여기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박근혜 의원의 면담이 성사됐고, 박 의원은 김 위원장에게 국군 포로 생사 확인과 남북 대표팀 축구대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실제로 두 가지 제안은 모두 성사됐다.

남북문제가 보수 정치인 박근혜의 전향적인 대북접근으로 일거에 해결될 순 없다. 더욱이 이후 북핵 문제가 초미의 국제문제로 대두된 상황을 고려하면 말이다. 그렇지만 훗날 당 대표와 대통령을 지낸 정치인 박근혜가 남북평화의 정착과 번영을 위해 2002년에 보였던 유연하고 합리적인 자세를 일관되게 보였다면, 북한 문제를 둘러싼 소모적인 남남갈등이나 보수정당의 냉전 반공세력으로의 시대착오적 회군은 상당 부분 억제됐을 것이 분명하다. 
 
2007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와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하고 있는 모습.
 2007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와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하고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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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렴풋하지만 10여 년 전에 매우 기이한 장면이 정치 무대의 장에 펼쳐졌다. 대통령이 제안하고 추진하였던 한미FTA라는 국정 의제를 진보를 표방한 집권 여당 일부와 민주노동당, 시민단체들이 극렬하게 반대하면서 거리로 나섰다. 거꾸로 한나라당은 당론으로 지지를 결정하고, 실제 거의 전원이 국회 비준 절차에서 찬성했다.

되돌아보면, 필자를 포함해 그것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왜나하면, 굴욕적 한일회담 반대, 수출주도공업화 반대, 우루과이 라운드 반대, WTO 가입 반대, 한미FTA 반대 등 한국의 진보세력은 집권세력의 개방노선에 늘 결사항전 전략(anti-strategy)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에는 농어민을 대표로 하는 사회적 약자의 보호, 합법적 절차와 설득 과정을 거치지 않는 집권세력의 비민주적인 결정, 사회적 부담의 일방적 전가, 국가주권의 약화 등 정당한 저항의 철학과 근거들이 존재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FTA협상 타결(2007.4.2.)에 대해 "정치적 손해를 무릅쓰고 내린 결단"이라고 평가했다(노무현 "한미FTA 타결 정치적 손해 무릅쓰고 내린 결단", https://youtu.be/boRG8Gs77-4). 그것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일국적 또는 동아시아 경계 안에서 민족주의적 경향이 강했던 진보 세력에게 자기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줬음은 틀림없다. 그 이후 진보세력들은 대내외적 여건과 역량을 고려한 그리고 국민의 평균적 상식에 부합하는 진취적인(proactive) 개방 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4. 시급한 문재인-김종인 회담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사진은 지난 8월 19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를 당 관계자들과 함께 참배하고 있는 모습.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사진은 지난 8월 19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를 당 관계자들과 함께 참배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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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과 올드딜, 빅딜과 스몰딜의 핵심은 '딜'이다. 그 주체는 국가수반이자 통수권자인 대통령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복이 참 많다. 이 말은 대안과 책임 부재의 야당에 대한 조롱이 아니라, 손바닥을 마주칠 적절한 대상이 나타났다는 뜻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최대 자산 가치는 과거의 화려한 경력이나 위기 속의 제1야당의 안정적 관리인으로서의 현재가 아니다. 그의 진면목은 대권에 대한 욕심이 있든 없든 구정물의 우리 정당정치를 한 단계 상향시킬 수 있는 '정책 CEO'로서의 야심에 있다.

필자가 올해 본 한국정치의 가장 신선한 장면 중 하나는 김종인 위원장이 "5월 정신 훼손 언행에 진실한 사죄를 드린다"며 울먹이며 광주 5.18 영령 앞에 무릎 사죄를 한 대목이다(2020.08.19.).

많은 사람들이 그 실현성에 의심을 품어 그리 주목을 못 받았지만, 그가 이끄는 정당의 1번 정강정책이 '기본소득제'였다는 사실은 나름 충격이었다. 더구나 내부의 노골적인 반발 속에서도 그는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공정경제 3법'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이제, 손바닥을 마주칠지 말지, 무엇을 주고받을지를 결정할 책임은 온전히 문재인 대통령의 몫이다. 참으로 다행인 점은 임기 말이 아니어서 법사위를 비롯한 상임위원장의 배분이든, 공수처를 비롯한 검경 개혁 방향이든, 당·정·청을 통한 대통령의 설득 자원과 능력은 여전히 강력하다는 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칼럼을 쓴 정상호씨는 서원대 사회교육과 교수로 현재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문재인, #협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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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교사와 더불어 배우는 지방대학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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