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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이 공식 선포된 1990년 10월 3일로부터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91년 7월, 독일에는 연대세(Solidaritaetzuschlag)라는 명칭의 세금이 신설됐다. 통일 후 동독 재건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연대세 도입의 목표였다. 당시 세금 신설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있었기 때문에 연대세는 소득세(혹은 법인세)의 7.5%를 한시적으로 부과하는 방식으로 추진됐고 정확히 1년 간 유지 후 1992년 6월에 폐지됐다.
  
 독일 통일 후 새로운 체제의 세금제도에 대해 배우고 있는 동독 주민들
 독일 통일 후 새로운 체제의 세금제도에 대해 배우고 있는 동독 주민들
ⓒ 자료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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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몇 년 지나지 않은 1995년 재도입돼 1997년까지 기존 세율(7.5%)로 유지되다가, 1998년 이후에는 5.5%로 세율이 다소 낮아진 상태로 계속 유지됐다. 재도입 당시에는 1999년까지 유지하는 것이 목표였고 당시 총리였던 콜 또한 1999년도에 연대세를 완전히 폐지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1998년 연방의회 선거에서 콜 총리가 패하고 슈뢰더 정권이 등장한 후에도 연대세는 폐지되지 않았고 통일 30년이 돼가는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다.
 
동독 재건이라는 목적 달성 후 폐지를 목표로 도입된 연대세가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통일 후 한 세대가 지난 현재까지도 동독 재건이 끝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 30년이 돼가는 독일의 동독 재건은 어떻게 되고 있을까? 통일 30년을 맞이하는 동독 주민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동독 재건을 위한 연대세... 통일 30년의 성과와 한계
 
1990년 공식 통일이 이뤄진 후 30년의 세월이 지나간 현재, 경제적 측면을 비롯한 여러 가지 면에서 동독 주민의 삶의 여건이 확연히 개선됐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소득 측면에서 2018년 동독 주민의 1인당 월 소득은 2.790 유로로 나타나 2.160유로 수준을 보였던 2005년에 비해 상당히 개선됐다. 2018년 동독 지역의 실업률 또한 6.9%로 나타나, 15%를 상회하던 2005년에 비해 괄목할만한 변화를 이뤘다.
 
사실, 통일 후 10~20년이 지나간 시점까지만 해도 동독 재건은 의도했던 수준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통일 직후인 1990년부터 동독지역의 재건을 위한 대규모 재정 이전이 이뤄졌지만, 동독 지역의 경제는 계획했던 것처럼 빠르게 성장하지는 못했다. 동독 재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실업 해소 측면에서 보면, 1990년대 중반까지 임시노동 시장에 속하면서 실업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인구까지 환산하면 동독 지역의 실업률은 거의 25%에 육박했고, 지역의 분위기는 극도로 침체돼 있었다.
  
독일 포츠담에서 개최된 독일통일 30주년 행사장의 모습 독일 포츠담에서 개최된 독일통일 30주년 행사장의 모습
▲ 독일 포츠담에서 개최된 독일통일 30주년 행사장의 모습 독일 포츠담에서 개최된 독일통일 30주년 행사장의 모습
ⓒ TV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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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후 10년 남짓 지난 2004년, 늘어나는 재정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실업자 지원을 포함한 새로운 노동시장 정책(하츠4)이 추진됐을 당시 동독의 분위기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다. 통일 전 동독의 변화를 희망하는 월요시위가 열렸던 라이프치히에서는 다시 월요시위가 시작되는 등 다수의 동독 지역에서 시위가 개최됐고 동독 주민의 불만족은 극에 달했다. '동독에서 40년을 속고 살았는데 통일 이후에는 새로운 체제가 우리를 속이고 있다'는 분노가 동독 주민 사이에서 나타났다.
 
통일 후 지속해서 이뤄진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을 통해 개인 삶은 전체적으로 나아졌지만, 실업으로 대표되는 동독 지역의 경제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이러한 분위기는 통일 20년이 지날 무렵인 2010년이 지나서까지 계속됐다.
 
독일통일 30년이 돼갈 무렵인 2010년대 후반에 이르러 동서독 격차가 많이 줄어들고, 동독의 일부 도시들이 자체적인 성장 동력을 갖추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실업률 또한 확연히 낮아졌고 소득수준도 상당히 올라갔다. 통일 후 장기간 이뤄진 재정 투입을 통해 도시개발이 지속해서 이뤄지면서 동독의 다수 도시가 현대식 도시로 변모했지만, 서독 지역에는 오랫동안 예산이 배정되지 않으면서 도시 재개발이 이뤄지지 않았다. 점점 낙후돼 가는 상황에 대한 서독 주민들에게서 불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생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 동독 지역
 

통일 30년이 돼가면서 동독의 상황이 과거보다 상당히 좋아졌다. 그러한 괄목할만한 성취에도 , 동독 상황에 대한 회의적 의견은 계속 대두되고 있다. 동서독 간에 여전히 작지 않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2018년 동독 지역의 평균 소득 수준이 2,790유로로 과거보다 상당히 향상됐지만, 서독 지역의 평균소득 3.340 유로의 84% 수준을 나타내 16% 정도 적다. 실업률도 과거보다 많이 개선됐지만, 서독지역의 4.8%보다는 여전히 2% 이상 높은 6.9% 수준을 보인다. 2000년대까지 동서독 간 차이가 거의 10%에 육박했던 것을 생각하면 큰 차이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평균 재산 수준에서도 서독 지역은 2017년 평균, 30만2500유로를 보인 반면, 동독은 11만0000 유로로 나타나 세 배가량 차이를 보였다. 적지 않은 진전을 거두었음에도 불구, 계속 남아 있는 동서독 간의 차이가 동독 주민에게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미래 상황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에 있다. 외형적 성과에도 불구, 지역 자생력을 기반으로 자력으로 운영되는 동독 지역은 얼마 되지 않지만, 상당수 지역은 여전히 외부 지원에 의존해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드레스덴, 라이프치히와 같은 일부 도시들은 재건에 성공해 인구의 이탈이 더 없고 이제는 외부로부터 인구가 지속해서 유입되는 도시가 됐다. 그렇지만 여전히 다수 지역은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채, 외부의 재정 이전에 의존해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개인의 상황이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지만, 그럼에도 자립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 채 외부 지원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미래 전망을 어둡게 하는 것이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장벽 주변에 밀집해 있는 동독주민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장벽 주변에 밀집해 있는 동독주민들
▲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장벽 주변에 밀집해 있는 동독주민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장벽 주변에 밀집해 있는 동독주민들
ⓒ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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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비어 있는 동독의 도시들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동독 지역의 상황은 일부 지역의 인구 현황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통일 초반, 대규모 산업시설의 폐쇄에 따른 대량 실업이 발생하면서 30세 이하의 미혼자를 비롯한 25~45세 사이의 인구가 –많은 경우 가족 단위로- 새로운 기회를 찾아 서독지역으로 건너갔다. 반면에 동독으로 유입되는 경우에는 대체로 남자 혼자 오는 경우가 많았고, 다시 돌아온 젊은 동독 세대들은 다수의 또래 친구들이 서독으로 떠나버린 상황을 경험했다.
 
이런 상황이 장기간 지속하면서 동독 지역 인구는 꾸준히 줄어들었다, 대량 실업과 함께 지역 전체가 충격에 빠진 후 성장 동력을 잃어버리고 '빈' 도시가 된 사례는 매우 흔하다. 구동독 지역 가운데 가장 재건 상황이 부진한 지역인 멕클렌부르그 포어포먼주의 경우, 1990년 192만4천 명 수준이었던 인구는 1995년, 182만3천 명으로 10만여 명 가량이 줄어들었고 2000년에는 177만6천 명으로 5만 명이 더 줄었다. 이후 2010년에 164만 2천 명, 2018년에는 161만여 명으로 계속 줄어들어 통일 30년이 지난 현재 통일 초기보다 30만여 명의 인구가 줄어들었다. 연령대별 인구 비율을 살펴보면 상황은 더 심각해, 20세 이하의 인구는 25만3천 명으로 전체 인구의 15%가량을 차지하는 반면 60세 이상의 고령 인구는 52만6천 명으로 전체 인구의 30%가 훨씬 넘어 도시가 이미 오래전 활기를 잃었다.
 
동독 시절, '칼 맑스의 도시'로 불렸던 브란덴부르그 켐니츠의 상황도 비슷하다. 통일 전 30만 명에 달했던 켐니츠의 인구는 통일 직후부터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해 2018년까지 247,237명으로 통일 전과 비교할 때 인구가 20% 가까이 감소했다. 인구 구성 비율도 2020년, 20세 이하의 인구는 43,480명으로 20%가 되지 않지만 59세 이상의 인구는 85,526명으로 35%가 넘는다. 자연스럽게 도시가 활기를 잃고 계속 침체돼 있다.
 
통일 30년이 지나면서 통일 후 계속되던 서독지역으로의 인구 유출은 어느 정도 진정됐다. 그럼에도, 통일 이후 지속된 젊은 인구 유출의 문제는 계속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지역에 젊고 유능한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개발을 위한 새로운 투자를 계획해도 이를 위한 인력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는 다시 젊은 세대가 기회를 찾아 서독 지역으로 유출되는 상황을 유발해, 결과적으로 악순환이 계속 반복됐다.

이런 상황은 동독지역 실업률, 특히 젊은 세대의 실업률에서 그대로 나타나, 2018년 동독 지역의 15~25세 세대의 실업률은 7.7%로, 서독의 4.1%와 비교할 때 두 배에 육박했다. 외형적으로는 서독 못지않게 발전한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의 상황은 심각한 분위기인 것이다.
 
'나는 2등 국민'이라고 인식하는 동독 주민, 전체의 30%
 
통일 후 30년이 지나면서 동서독 삶의 환경의 차이는 상당히 줄었지만, 여전히 발견되는 높은 실업률과 낮은 출산율, 소득 및 재산 수준의 차이와 특히 계속 정체된 동독 지역의 상황은 동독 주민들이 독일이 여전히 두 개의 사회로 나뉘어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즉, 양측 사이에 경제적 차이를 넘어서는 근원적 차이가 있고, 자신들은 서독과는 다른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는 통일 전 상이한 체제에서 살았던 상대방으로부터 발견하는 차이를 다름으로 이해하기보다,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서로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쳐, 통일 직후 45%가 동서독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던 반면, 10년 이상이 지난 2002년에는 그러한 태도가 63%로 더 늘어났다. 시간이 경과하는 가운데 사람들이 양측 차이를 명확히 느끼면서, '동서독이 하나의 공동체'라는 생각에 대한 부정적 반응은 더 커지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현재까지도 계속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조사에 따르면 69%의 서독 주민과 74%의 동독 주민은 동서독 사이에 여전히 큰 차이가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동독 주민의 30%가량은 자신을 '2등 국민'으로 인식하며 아직 체제에 안착하지 못했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여전히 양측이 하나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차이를 파고드는 극우 정당... 피해의식 자극해 유권자 확보
 
이런 가운데 동독 주민들이 '자신은 집단적·개인적으로 차별받고 있다'고 느끼는 정서를 놓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집단이 있다. 바로 극우 성향의 정당이다. 통일 이후 여러 극우 성향의 정당이, 통일 후에도 계속 낙후된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는 유권자가 대거 사는 동독 지역에서 큰 지지를 얻었다. 상당한 시일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미래의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 채, 자신을 변혁의 패배자라고 생각하는 동독 주민들이 극우 성향 정당의 적극 지지층이 되는 것이다.
 
특히 이런 극우 성향의 정당은 2015년경부터 독일 사회에 유입된 대규모 난민 문제로 인한 사회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이를 적극 활용했다. "독일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한 것도 없는 난민에 대해서는 정부가 엄청난 예산을 지원하면서, 이미 오랫동안 지역 주민인 우리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며 동독 주민의 피해 의식을 강하게 자극했다. 특히 동독 출신 인사를 정당의 전면에 내세우면서 동독이 2등 국민으로 차별받고 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부각시켰다.
 
이를 통해 극우 성향의 정당은, 기성 정당이 힘을 못 쓰고 있는 동독 지역에서 지역을 대변하는 집단으로 영향력을 확대했다. 사실 이런 상황은 근래에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이미 통일 초기, 통일 이후 동독 상황에 실망한 구동독 주민들은 통일 과정에서 해산된 구동독 공산당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정당(PDS)에 대한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성 정당에 대한 실망감이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정당에 대한 지지로 나타난 것이다.
 
 지난 6월 3일 주간 내각회의에 참석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지난 6월 주간 내각회의에 참석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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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30년이 돼가는 시점에서, 동독 지역에서 나타나는 통일 이후 상황에 대한 불만과 저항에 대해 서독 측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30년간 지속해서 재정 지원이 이뤄지면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삶의 조건이 많이 균등해졌음에도 1990년대 초중반부터 나오던 얘기가 아직 반복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극우 성향의 정당이 일부 동독지역에서 큰 지지를 얻고 있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동독지역에서 아직 민주주의가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서독 측에서는 "차이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어렵다, 이제는 지난 시간이 아닌 미래를 보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한다. 동독 주민은 그러나 동독 지역의 상황이 현격히 개선됐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성과를 거뒀지만 그럼에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타나고 있는 동서독 간 차이는 단순한 경제적 차이를 넘어 동독에 대한 인정, 관심의 문제라는 것이다.
 
동독 주민들은 '동독 주민의 90% 이상이 서독에 자리를 잡고 있는 서독 대기업의 물건을 소비하는 곳에 머물러 있다'고 표현하며, '이러한 상황을 도외시한 채 미래를 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회의를 표했다. 동독의 상황을 잘 모르면서 문제를 단순히 경제 문제로만 취급하고, 이를 독일 전체의 문제가 아닌 '동독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서독의 입장이 아닌 동독의 입장에서 상황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쪽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경제가 다는 아니다
 
독일 총리 메르켈은 '지난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성취했지만,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라고 독일 통일 30년을 평가했다. 통일 후 30년에 걸쳐 동서독 통합을 추진하면서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출발점이 달랐던 두 사회가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경제적 격차에서 비롯된 차이에 대한 인식이 양측의 관계를 계속 악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숙고해야 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동독 주민이 느끼는 생각과 감정은 도외시한 채 그저 그들을 끝없이 불평만 늘어놓는 집단으로 생각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서독에 대해 큰 벽을 느낄 수밖에 없다. 통일은 경제적 차이를 넘어서는 많은 과제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문제를 공감하는 가운데 함께 해결해 가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2018년 우리나라에서 시행한 통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통일이 되지 말아야 할 이유로 경제적 부담을 든 응답이 34.67%로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 남북한 통일에서 있어서 경제적인 문제를 가장 큰 부담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독과는 다른 우리의 상황에서, 경제 문제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독일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또 하나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 하나의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필요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동독인의 독일 통일 이야기' 기사 연재는 이것으로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독자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태그:#독일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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