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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지 않니? 내가 결혼을 하든 말든, 남의 인생에 자기들이 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 이젠 내 난자를 얼리느니 마느니 소리까지 나와."

자신의 난자 거처를 함부로 입에 오르내린 사람 때문에 어이없어진 이웃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문득, 추석 명절에 잔뜩 만든 동그랑땡을 냉동고에 얼려 놓았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장면이 떠올랐다. 배가 고파지는 바람에 공원 벤치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가 방송하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가족과 함께 시청하며 웃고 떠들었다. "쟤 아직 결혼 못 했지?" 박세리가 나오자 엄마가 반가운 듯 그녀의 안부를 내게 묻는다. 나는 자동반사적으로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거지"라고 대답했다.

미혼과 비혼의 차이

"못 한 거나, 안 한 거나 매한가지지. 뭐가 달라~?"
"전혀 다르지. 미혼(未婚)의 미(未)는 아직 못 했다는 뜻이야. 그 말은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렸어. 그러니까 결혼 못 했다는 말은 그 사람이 어딘가 부족해서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했다는 의미처럼 들려. 반면, 비혼(非婚)의 비(非)는 안 했다는 뜻이야. 결혼은 선택 사항이기에 어디가 못나서 못한 게 아니라, 스스로 안 하는 것을 선택한 결과라는 뜻이지. 언어는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기 때문에 요즘은 미혼이 아닌 비혼이라는 표현을 써."


혹시나 부모님이 어디 가서 남의 난자를 참견하는 무례한 꼰대가 될까 싶어 열심히 설명했다. 다행히 엄마는 듣고 보니 그렇다며, 앞으로는 조심하겠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셨다.
 
 시대가 변하면서 다양한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인정하는 문화가 생겼고, 혼인을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됐다. 이에 따라 비혼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다양한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인정하는 문화가 생겼고, 혼인을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됐다. 이에 따라 비혼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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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건 이미 다양한 연구 결과로 증명됐다. 혼인을 당연시하던 시대에는 결혼 전과 후인 미혼과 기혼이란 단어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혼 적령기라는 말과 함께 미혼인 사람에게 혼인을 다그치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다양한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인정하는 문화가 생겼고, 혼인을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됐다. 이에 따라 비혼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지난 2019년 국회에서는 표현의 차이에 대한 관심을 두고, 미혼은 비혼으로 유모차는 유아차/아기차로 바꿔 부르자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황주홍 민주평화당 의원은 입법의 취지에 관해 "미혼은 혼인에 대한 특정 가치관이 포함된 용어다. 유모차는 '수유(乳)와 어머니(母)'를 뜻하는 한자어로 평등 육아를 지향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율이 2045년에는 36.3%까지 늘어나 국민 3명 중 1명 이상이 혼자 살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비혼의 가장 큰 이유로 여성은 '가부장제 및 양성 불평등 문화' 때문이라고 답했고, 남성은 '집, 재정 등 현실적인 결혼 조건인 경제 능력의 어려움' 때문이라고 답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꿔 줄 정부 정책에 대한 인식 또한 여성은 양성평등, 남성은 주거 지원의 실현을 꼽았다.

늘어나는 비혼족, 결혼은 의무가 아닌 선택

언젠가 지인이 왜 결혼하지 않냐는 질문을 하면서, 결혼하지 않는 사람은 어딘가 다 문제가 있어서 못 하는 것이라고 했다(가정폭력 범죄 대부분이 기혼자라는 사실을 아는지). 본인도 비혼인 것은 마찬가지였는데, 고해성사를 나한테 하는 건가 싶어서 신부님 대신 용서하며 축복을 빌어주었다(웃음).

사실 왜 결혼하지 않냐는 말은 30대 초반부터 듣던 말이다. 누군가는 혹시 한 번 갔다 온 거 아니냐, 남자와 동거하고 있는 거는 아니냐며 의심의 눈길을 보내곤 한다. 너처럼 괜찮은 애가(왠지 이 부분을 강조하고 싶다) 왜 아직도 결혼을 못 하고 있냐는 말과 함께. 욕인지 칭찬인지 애매모호한 상대방의 사고방식이 담긴 말을 들을 때마다 '결혼에 대한 관념이 이토록 다를 수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결혼과 출산은 곧 국력으로 연결된다. 그 때문에 오래전부터 언론은 국가의 경제 계획에 따라 결혼과 출산에 대한 보수의 이념과 사고를 암묵적으로 국민에게 전달했다. 근거 없는 불안감을 서로에게 심어준 탓인지, 남녀 불문하고 단순히 나이에 떠밀려 결혼을 조급해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았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을 하지 않는 사람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고울 리 없기에, 결혼 적령기라는 말로 서로를 등 떠미는 문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사회적 기준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은 어딘가 문제 있는 사람, 낙오자로 생각하는 분위기 때문에 자기 기준 없이 인륜지대사를 해치우는 촌극이 21세기에도 벌어진다.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삶만큼 주체적이며 높은 자존감을 선물하는 일도 없다.

비혼과 독신주의자의 차이
 
 비혼은 결혼을 선택의 문제로, 독신주의는 끝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삶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비혼은 결혼을 선택의 문제로, 독신주의는 끝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삶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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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부터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왕자와 공주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끝나는 동화책을 미완성으로 보는 아이였다. 동시에 현모양처(賢母良妻)를 꿈꿨다. 설렘 가득한 연애 소설이나 환상적인 동화책을 들여다보는 대신, 기혼자들을 인터뷰하며 삶을 관찰하는데 주로 시간을 보낸 결과였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이혼 가정은 5년간 꾸준히 늘어 지난해 11만 1천여 건이 이혼했다. 20년 이상 산 부부의 비율이 38.4%로 신혼부부인 4년 이하 부부의 이혼율보다 15.1% 포인트 높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한민국 이혼율은 OECD 국가 중 9위, 아시아에서는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다.

결혼은 지독한 현실이다. 어질고 지혜로운 엄마와 아내. 어질고 지혜로운 아빠와 남편. 그러니까 '현모양처(賢母良妻), 현부양부(賢父良夫)'가 되지 않으면, 말 그대로 헬게이트가 될 수도 있는 게 결혼이다. 그러나 요즘은 현모양처라는 단어를 꺼내면 '집에서 남편 돈으로 놀고먹고 싶어요'라는 말로 해석한다는 게 놀랍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집안의 사람과 선을 보고 프러포즈 받은 경험이 있다. 그런데도 당시 결혼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싶은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상대방 조건이 좋으면 결혼 잘 한다며 부러워하지만, 결혼을 잘 하는지 못 하는지는 결혼식이 끝나고부터가 진짜라는 게 나의 지론이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며 잘 살기 위해서는 함께 시련을 지혜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 그 때문에 결혼을 위한 결혼이 아닌, 가족이 되어 함께 살고 싶은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싶다.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결혼할 이유 또한 없다고 생각한다. 프리드리히 니체도 이렇게 말하지 않던가. 
 
결혼하고 싶다면 이렇게 자문하라.
"나는 이 사람과 늙어서도 대화를 즐길 수 있는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결혼을 늘 꿈꾸지만, 가족이 되고 싶은 인연을 만나지 못해 결혼하지 않았다. 이처럼 비혼은 혼자 사는 삶을 추구하는 독신주의와는 또 다른 의미다. 공원 산책을 다녀온 엄마가 들어오시더니 웃으며 말씀하신다.

"글쎄 벤치에 앉아 있는데 아까 그 할머니가 말을 걸면서 너에 대해 호구조사를 하시는 거야. 그러면서 왜 딸 시집 안 보내냐고 하기에, 결혼은 본인이 알아서 잘 할 거라고 했더니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시더라. 그러더니 더 나이 먹으면 애를 못 낳지 않냐고 하시더라고. 일찍 결혼한다고 애를 잘 낳아서 잘 키우는 것도 아니고, 늦게 결혼한다고 애를 못 낳아 못 키우는 것도 아닌 것 같다고. 팔자에 애가 있으면 낳는 거고, 아니면 그냥 사는 거죠라고 대답했더니 또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시더라고. 그 할머니가 보시기엔 내가 이상한 엄마처럼 생각됐나 봐."

우리 엄마가 이상한 엄마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알랭 드 보통은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눈에 정상적으로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우리가 아직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일 뿐이다. 사랑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다. - 236p

덧붙이는 글 | 이은영 기자 브런치에도 함께 올라갈 예정입니다. https://brunch.co.kr/@yoconis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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