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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는 <죽음의 스펙타클>에서 한국 사회의 특징으로 '끝없는 경쟁, 극단적 이기주의, 일상의 사막화, 생활 리듬의 초가속화' 4가지를 꼽았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자조적인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부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정말로 인간이 살 수 없는 지옥 같은 곳일까?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정치 민주화를 이루고, 세상이 놀라워하는 빠른 경제 성장을 거둔 대한민국의 불행은 왜 날로 커져만 갈까?

중앙대 독어 독문학과의 김누리 교수는 그의 저서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에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독일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찾아본다.

독일이라는 거울
 
김누리 지음 / 해냄 출판사
▲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지음 / 해냄 출판사
ⓒ 해냄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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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나라 중에 그가 독일을 택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독일과 한국은 현대사의 궤적이 가장 유사하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두 나라 모두 냉전과 분단체제를 겪었다. 둘째, 독일과 한국은 국가 규모가 비슷하다. 통일 이후 독일 인구는 약 8천 4백만이며 만일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면 약 7천 8백만 정도로 꽤나 유사하다. 또한 통일 이전의 서독 인구도 지금 남한의 인구와 비슷하다.

셋째,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나라' 대한민국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미국에 대한 '안티테제(antithese)'로 평가받는 독일에서 영감을 얻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 사회를 냉정한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요술거울(Zerrspiegel)로 독일을 택한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건전한 사회(The Sane Society)>에서 '정상성의 병리성(pathology of normailty)'을 말했다. '너무도 병든 사회에서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이 정상으로 사는 사람은 과연 정상인가, 비정상인가'라는 문제의식을 던져준 것이다.

사실 저자도 자신의 삶과 일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아갔던 평범한 한국사람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독일 유학생활을 통해 한국이란 나라를 새로운 관점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해 온 많은 것들이 혹시 비정상은 아닌가'라는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독일을 마치 유토피아인 것처럼 호도할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다만 그는 독일이라는 나라가 독일 내의 수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잘 해결해나가고 있는지, 그 방식에 주목하고자 했다.

독일은 독일의 많은 문제들을 '상식적'으로 해결한다. 그렇다면 독일의 상식은 무엇인가? 바로 '인간을 소중하게 여긴다'라는 것이다. 이는 독일헌법 제 1조 '인간 존엄은 불가침하다'에 잘 명시되어 있다. 이는 근대사회의 '상식'이자 유럽 헌장의 1조이기도 하다.

부끄러운 통계지만 한국은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이자 세계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 세계에서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다.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노동자의 죽음이 가장 빈번한 나라이며 세계에서 아이들이 가장 우울한 나라, 세계에서 아이들을 가장 적게 낳는 나라다.

슬프게도 어떤 젊은이는 비인간적인 노동에 내몰려 목숨을 잃고, 어떤 아이는 임대주택에 산다는 이유로 '거지'라고 놀림을 받는다. 사람들은 힘 있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솜방망이 처분을 받고 풀려나는 것을 보며 이제 더 이상 놀라지도 않는다. 한국의 인권감수성은 지위와 권력, 재산의 크기, 나이의 많고 적음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저자는 "발전은 압축적으로 할 수 있지만 성숙은 압축적으로 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한국사회는 그동안 발전에 힘을 쏟느라 여러 가지 중요한 것들을 놓쳐왔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수준 높은 인권 감수성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이제 한국은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그동안 놓쳐온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할 때다.

광장 민주주의와 일상 민주주의

86세대는 군사 독재체제 사회에서 민주주의 국가로의 엄청난 개혁을 이루어냈다. 저자는 86세대가 이루어 놓은 정치 민주화에 대해 위대한 일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그들이 이루어 낸 한국 민주화의 취약한 부분과 그 한계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광장 민주주의와 일상 민주주의 사이의 괴리이다.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목놓아 외치는 사람이 일상 속에서는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로 갑질을 일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우리나라의 뿌리 깊은 유교 사상과 일본 제국주의 식민통치, 군사독재시대가 남긴 군사주의와 집단주의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인정하기 쉽지 않지만 우리는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내면에 뿌리 내린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이고 인권을 경시하는 파시즘을 뿌리 뽑을 수 있다. 광장에서나 일상에서나 동일하게 인간을 존중하고 인권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자가 되자. 광장의 촛불이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삶 속에서도 생생하게 타오를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민주화를 이룰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 책은 김누리 교수가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한 강연의 강연록과 방송에서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엮어낸 책이다. 강의를 듣는 듯한 친근한 어투는 다소 어려울 수도 있는 세계 역사적인 사건들과 독일에 대한 지식들을 좀 더 쉽게 배우도록 만든다.

책에서 밝혔듯이 저자는 독일 유학시절을 통해 자신이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삶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독일에서 생각의 전환점을 맞이했던 것처럼 2020년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전환점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불행은 당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claire1209)에도 업로드됩니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지은이), 해냄(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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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문화예술 교육 활동가/ 『오늘이라는 계절』 저자 - 5년차 엄마사람/ 10년차 영어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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