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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의 동상 책을 읽고 있는 다산의 모습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정약용은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평생에 500권이 넘는 방대한 저서를 집필했다.
▲ 다산 정약용의 동상 책을 읽고 있는 다산의 모습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정약용은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평생에 500권이 넘는 방대한 저서를 집필했다.
ⓒ 박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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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 벽파 중에는 자기네가 집권하여 세도정치로 국정을 오로지 하고 있으면서도 정약용 등 개혁주의자들에 대한 증오심은 변하지 않았다. 그들로 인해 자신들이 한때 '찬밥신세'가 되었고, 언제 다시 재기하여 보복할 지 모른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고래로 아둔한 권력집단은 '희생양 메카니즘'에 빠져든다.

"〈희생양 메카니즘〉이란 하나의 희생물로써 모든 가능한 희생물들을 대신하는 것으로, 동물로써 인간을 대신하는 경제적 기능 뿐 아니라 작은 폭력으로 나쁜 폭력을 막는 종교적 기능도 수행한다. 그것은 복수의 길이 막힌 희생물이며 격렬한 반응을 보임으로써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폭력이다." (주석 18)

고대사회의 제물인 '희생양'은 동물이었는데, 역으로 인지가 발달하면서부터 사람으로 바뀌었다. 나치 독일의 유태인, 미국 백인들의 흑인학대, 일제의 조선인 학살이 그렇다. 조선왕조 후기의 희생양은 천주교인과 동학도,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 이승만은 평화통일론자, 박정희는 혁신계와 민주화운동가, 전두환은 광주 시민들로 이어진다.
  
 다산초당 안에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다산초당 안에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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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 5년 대왕대비가 죽고 순조의 장인 김조순(金祖淳)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되고 '희생양' 만들기는 더욱 심화되었다. 당연히 민심을 도외시한 세도정치는 민란으로 나타났다. 1808년(순조 8) 1월 함경도 북청과 단청의 민란을 시작으로 1811년 2월 곡산, 12월 평안도에서 홍경래가 지도하는 대규모적인 민란이, 이어서 1813년 11월 제주, 1814년 5월 서울에서 각각 민란이 일어났다.

1809년 이래 흉년이 계속되자 서울에서도 식량이 크게 모자라고 큰 규모의 민란이 발생하였다. 정약용이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조정에서는 탕평책 대신 여전히 적대세력을 만들고 포용을 거부하였다. 정약용은 그동안 몇 차례 해배의 계기가 있었으나 그때마다 노론 수구파에 밀려 좌절되었다. 1810년 가을에 아들 학연이 순조의 능행 길에 어가 앞에서 바라를 두들겨 부친의 억울함을 호소하여 형조판서 김계략이 그 사실을 임금에게 알려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라는 어명이 있었다.  

그러나 병조판서 홍명주가 불가를 상소하고, 같은 남인 출신이면서 노론 벽파에 빌붙어 정약용 등을 몰락하게 했던 장본인 이기경(李基慶)이 이번에도 참소하여 석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또 있었다. 「자찬묘지명」에 나온다.

갑술년(53세, 1814) 여름에 사헌부 장령 조장한이 정계(停啓)를 하고 의금부에서 해배 명령서를 보내려 하는 때에 장준흠(전 사간)이 상소하여 독살스러운 소리를 해놓으니 판의금 이집두(전 예조판서)가 두려워서 감히 해배 공문을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정치적 '희생양'이 된 정약용은 오직 '100년 후의 역사'를 의식하면서 저술과 제자들의 교육에 열중한다. 그리고 자식들이 이기경 등 세도가들을 찾아다니며 석방운동을 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결코 비루한 짓을 하지 말도록 단호하게 타이른다. 그는 끝까지 조선 선비의 올곧은 모습을 보인다.
  
 다산 정약용 어록비
 다산 정약용 어록비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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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 6월 4일 「두 아들에게 답하노라(5)」의 주요 부문을 소개한다.

옛날부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는 예는 부모상을 당했을 때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리고 형과 동생 중에 한 사람은 출타했을지라도 한 사람은 집에 있었으면서도 상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곡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고, 망령된 말로 이 아비를 위협하려 달려들고 권세가들 집에 나보고 고개를 숙이라고 졸라대고 있으니, 너희들은 어째서 이다지도 한 점의 양심도 없는지? 인간이 귀중하다는 것은 오로지 한 점의 양심이 있어 그것 때문에 군자다운 행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저 북쪽 땅 왕침(王諶) 같은 자도 나름대로 의리를 가지고 살았는데, 조그마한 이익 때문에 앞뒤도 가리지 않고 마구 해대란 말이냐. 너희들 심중에서 사대부다운 기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구나. 다만 화려한 권력가의 집안이나 진수성찬으로 호의호식하고 사는 집안을 흠모하고 있으며, 더구나 아비를 다시는 돌봐 줄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해서 별별 위협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차마 해서는 안될 일을 요구하고 있으니 이게 도채체 어찌된 일이냐.

남들이 이 아비를 짐승처럼 여기고 있는데도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고 이런 짓을 하라고 보채며, 그들의 거짓 웃음과 쌀쌀맞은 이야기들을 내게 권하느냐? 그들 권력자들이 벌떼처럼 다시 들고 일어나 오랜 감정을 풀어보려고 나를 추자도나 흑산도로 쫓아보낸다 해도 나는 머리칼 하나 까딱 않겠다. (주석 19)


주석
18> 르네 지라드 지음, 김진석 역, 『희생양』, 뒷페이지, 민음사, 1898.
19> 박석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127~128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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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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