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 국립중앙박물관

관련사진보기

 
정약용의 철학과 방대한 저술에 담긴 사상을 한마디로 집약한다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초원의 만화방초를 한 줄로 요약하는 것 만큼이나 무모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를 한다면 '목민사상(牧民思想)'이 아닐까 싶다. '목민'이란 봉건적인 용어이니, 현대어로 하면 '애민사상(愛民思想)'이다. 우리 역사상 그이만큼 애민사상과 이를 위한 방략과 저서를 남긴 인물도 찾기란 쉽지 않다.

군주시대나 민주시대를 가리지 않고 '애민'을 내세우지 않는 위정자나 관리는 없었다. 우리 역사도 민을 내세우고 민본(民本)을 추켜세우면서, 민을 착취하고 억압하면서 권세를 누리는 자들로 가득찼다. 정약용이  살던 시대 역시 다르지 않았다.

『목민심서』는 유배가 끝나가던 1818년의 저작이다. 그동안 많은 저술을 통하여 학문과 지식이 온축된 시기에 씌여서, 가히 다산학의 '집약본'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만큼 내용과 주제가 알차고 풍성하다. 그는 "오래된 조선을 새롭게 혁신(新我之舊邦)"의 정신으로 이 책을 지었다.

"어느 것 하나라도 병들지 않은 것이 없어서 이를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할 것" 같은 우려에서 피로 쓴 책이다.

"『목민심서』라 한 것은 무슨 뜻인가. 백성 다스릴 뜻은 있으나 몸소 실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 지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애민사상'과 더불어 공직자의 윤리를 강조한다.
  
다산은 경학과 경세학 등 여러 방면의 학문연구에 힘을 쏟아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500여 권에 가까운 책을 지었다 다산은 경학과 경세학 등 여러 방면의 학문연구에 힘을 쏟아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500여 권에 가까운 책을 지었다
▲ 다산은 경학과 경세학 등 여러 방면의 학문연구에 힘을 쏟아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500여 권에 가까운 책을 지었다 다산은 경학과 경세학 등 여러 방면의 학문연구에 힘을 쏟아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500여 권에 가까운 책을 지었다
ⓒ 다산연구소

관련사진보기

 
이 책을 소개하는 데는 지은이의 '서문' 만한 것도 찾기 어렵겠다.

군자의 학문은 수신이 그 반이요, 반은 백성 다스리는 것이다. 성인의 시대가 이미 오래되었고 성인의 말도 없어져서 그 도(道)가 점점 어두워졌다. 지금의 지방장관들은 이익을 추구하는 데만 급급하고 어떻게 백성을 다스려야 할 것인지는 모르고 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곤궁하고 피폐하여 서로 떠돌다가 굶어죽은 시체가 구렁텅이에 가득한데도 지방장관들은 한창 좋은 옷과 맛 있는 음식으로 자기만 살찌우고 있으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주석 11)

『목민심서』는 오랫동안 교수들이 자신은 읽지 않으면서 학생들에게 '필독서'로 추천되어 오다가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고, '목민관'이 자치단체장들로 인식되면서 자친타천으로 많이 찾게 되었다. '100년 후의 재평가'가 이루어진 셈이다.

정약용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와 가족사의 배경을 밝힌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성조(聖朝)의 인정을 받아, 두 고을의 현감(연천현감ㆍ화순현감)과, 한 군의 군수(예천군수)와, 한 부의 도호부사(울산도호부사)와, 한 주의 목사(진주목사)를 지냈는데, 모두 치적이 있었다. 비록 나는 불초하지만 그때 따라다니면서 보고 배워서 다소 듣고 깨달은 바가 있었으며, 뒤에 수령이 되어 이를 시험해 보아서 효험도 있었다. 그러나 뒤에 떠도는 몸이 되어서는 이를 쓸 곳이 없게 되었다. (주석 12)
 
다산이 <목민심서>를 저술한 송풍암 다산이 <목민심서>를 저술한 송풍암
▲ 다산이 <목민심서>를 저술한 송풍암 다산이 <목민심서>를 저술한 송풍암
ⓒ 정윤섭

관련사진보기

 
『목민심서』는 그가 책상머리에 앉아서 자료를 기본으로 삼아 관념적으로 쓴 책이 아니라 아버지가 '목민관'일 때 따라다니면서 보고 듣고 깨달은, 여기에 관리시절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리고 18년 동안 유배지에서 지켜본 학정의 사례를 토대로 하여 엮은 것이다. 제도의 잘못, 공직자들의 문제점, 그리고 자신의 구상을 제시한다. 직접 실행해보고 싶은 욕망도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묶인 몸이었다.

먼 변방에서 귀양살이한 지 18년 동안 오경(五經)과 사서(四書)를 반복 연구하여 수기(修己)의 학을 공부하였으니 이미 배웠다 하나 반만 배운 것이다. 이에 중국 역사서인 23사(史)와 우리나라 역사 및 문집 등 여러 서적을 가져다가 옛날 지방장관이 백성을 다스린 사적을 골라, 세밀히 고찰하여 이를 분류한 다음, 차례로 편성하였다.

남쪽 시골은 전답의 조세(租稅)가 나오는 곳이라, 간악하고 교활한 아전들이 농간을 부려 그에 따른 여러 가지 폐단이 어지럽게 일어났는데, 내 처지가 비천하므로 들은 것이 매우 상세하였다. 이것 또한 그대로 분류하여 대강 기록하고 나의 얕은 견해를 붙였다. (주석 13)


주석
11> 김상홍 편저, 『다산의 꿈 목민심서』, 16쪽, 새문사, 2007.
12> 앞의 책, 17쪽.
13> 앞과 같음.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 비밀결사 자신회 조직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