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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코리아부' 알아요?"

딸의 물음에 남편과 나는 반문했다. "코리아… 뭐?" 처음 듣는 단어였다. '코리아부'(Koreaboo), 한국을 너무 좋아해서 한국인처럼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란다.

"한국의 어떤 걸 좋아하는데?"
"케이팝이나 케이드라마 같은 한국 문화."
"한국인처럼 되려고 어떻게 해?"
"한국인처럼 화장하고, 한국말 하고, 행동도 따라 하고…"


호기심 어린 질문이 이어지자 딸은 몇몇 영상을 보여줬다. 유튜브 등에 'Koreaboo'로 검색하니 관련 동영상이 쏟아져나온다. 주로 2년 내에 업로드된 것들이다.

"닭발 만들 거야"라면서 먹방... 눈 주변에 풀칠까지
 
 딸에게서 '코리아부(Koreaboo)'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한국을 너무 좋아해서 한국인처럼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란다.
 딸에게서 "코리아부(Koreaboo)"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한국을 너무 좋아해서 한국인처럼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란다.
ⓒ 유튜브화면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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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속 외국인들은 '언니, 오빠, 누나' 같은 한국식 호칭은 물론, "감사합니다, 완전 대박, 너무 예뻐요, 어떡해, 진짜, 하지마" 같은 말도 어렵지 않게 사용하는 듯했다. 발음은 서투르지만 "저는 오늘 닭발 만들 거예요" 하더니 한눈에도 매워 보이는 닭발을 요리해 먹방(한국어 발음 그대로 'mukbang'이라고 자막을 넣었다)을 선보이는 노랑머리 소녀도 있었다.

여기까지는 신세계를 접한 느낌, 혹은 '외국인이 한국 문화를 좋아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나름 귀엽네' 정도였다. 하지만, 다음 영상을 눈으로 좇던 나는 처음 보는 신기한 광경에 그만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일명 '한국인처럼 보이기 위한 메이크업' 과정을 보여주겠다는 소녀가 난데없이 공작용 풀을 들고나왔다.

눈두덩이에 풀을 바르더니 잠시 후 풀이 꾸덕꾸덕 마르자 눈꺼풀을 위에서 아래로 주욱 잡아 늘여 쌍꺼풀을 덮었다. 한국인의 전형적인 외꺼풀 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나 학창시절엔 쌍꺼풀을 만들겠다며 눈에 투명테이프를 붙이고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이 외국인 아이는 외꺼풀을 만들기 위해 풀을 바르고 있었다.

그 외에도 아이라이너로 눈꼬리를 길게 늘이고, 흰색 펄 아이섀도로 눈 밑에 한국식 '애교살'(역시 'aegyosal'이라고 표기했다)을 만든 후, 립스틱까지 한국식으로 그라데이션을 넣어 바르고 나서야 더욱 한국인에 가까워진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며 영상이 마무리됐다(해당 영상은 현재는 유튜브에서 사라진 상태다). '빠르고 아주 자연스럽게 한국인 되기'나 '한국 여자 같은 얼굴 만드는 법' 등의 포스팅은 이외에도 많았다.
  
 원본 영상은 현재 유튜브에서 삭제된 상태다.
 나는 처음 보는 신기한 광경에 그만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이 영상은 그러나 현재는 유튜브에선 삭제된 상태다.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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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충격... 그런데

'코리아부'는 한국어 이름을 만들고, 생뚱맞게 한국어 단어를 섞어 말한다. "How do I make Oppa sarang me?(어떻게 하면 오빠(oppa)가 나를 사랑(sarang)하게 할 수 있을까요?)", "I'm a such a pabo!(나는 진짜 바보(pabo)야!)" 같은 식이다.

이처럼 영어와 한국어가 혼용된 국적 불명의 문장을 접하는 것은 일종의 문화충격이었다. 나아가 한국인만 보면 무조건 호감을 갖고 다가가 다짜고짜 말을 걸거나 친구가 되고 싶어 하고, 심지어는 한국인과 결혼하는 것이 목표인 이들도 있다 하니 이쯤 되면 과하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들에 대한 표현 'overly obsessed'(지나치게 빠져듦)의 근간이, 이제 서구에서도 하나의 '문화 현상'이라고 평가될 만큼 인기가 높아진 한국문화에 대한 애정임은 분명하다. 좋아하니 닮고 싶고, 닮고 싶어 따라 하던 중 정도가 과해졌을 것이다. 어찌 보면 이들은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따라 하는 행위 자체를 놀이처럼 즐기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들이 한국인이 되고 싶어 따라 하는, 한국인의 행동 패턴이라 여겨지는 것들은 한국을 정말로 잘 아는 사람들이나 한국인인 우리가 보기에는 어이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일명 '애교'라 불리는 행동을 따라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양 볼을 봉긋하게 부풀려 양손으로 감싸고, 입술을 동그랗게 쭉 내밀고, 어깨를 흔들며 콧소리를 내어 "정마알~?" 한다.

그들이 접하는 한국인이란 주로 소셜미디어나 영상 공유 플랫폼을 통해 보이는 잘 꾸며진 모습의 연예인들이다. 코리아부들이 "실제 한국 길거리에 아이돌같이 생긴 사람들이 걸어다닌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충고(?)를 듣곤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또 코리아부가 따라 하는 말투와 억양, 애교 등도 한국 연예인들이 대중을 향해 사용하곤 하는 것들이었다(생각해보라, 수많은 예능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에게 종종 '애교 시전'을 요구하지 않던가).

일부 연예인들 외모나 행동 양식이 한국적인 것이라 착각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고, 사람들이 코리아부를 향해 눈살을 찌푸리는 이유 중 하나다. 한국을 사랑한다는 이들의 행동이 오히려 한국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국을 제대로 알려는 노력 없이 단편적인 면만을 즐기고 소비하는 듯한 모습이 한국문화나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를 왜곡시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코리아부를 향한 비난

코리아부를 향한 비난의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깎아내리거나 부정하기 때문이다. 한국인 같은 외모를 갖고 싶어 한다거나 한국의 문화와 비교해 자신의 문화를 평가절하한다. 심한 경우 한국인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떤 한 문화를 좋아하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문화를 깎아내리는 것은 다른 문제다. 문화란 서로 다른 것이지 우월과 열등으로 구분 지어지는 것은 아닐 테니까.

본래 코리아부는 일본 문화에 지나치게 빠져서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일본인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단어인 '위아부'(weeaboo)에서 온 말이다. 유튜브에 업로드된 코리아부 관련 동영상의 상당수가 '민망한 코리아부 모음본'(Koreaboo Cringe Compilation)처럼 '크린지(cringe, 민망하다/오글거리다)'라는 단어와 짝꿍처럼 함께 쓰인다. 이런 정황만 봐도 그 단어의 부정적 이미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Koreaboo'로 검색하면 '케이팝을 좋아하면 코리아부가 되나요?' '코리아부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같은 질문들도 쉽게 발견된다. 여기엔 케이팝 같은 한국문화를 좋아한다고 했다가 코리아부로 몰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담겨 있다. 물론, "왜 사람들이 코리아부를 싫어하나요?"에 대한 아래의 답변에서 알 수 있듯, 대부분 사람은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을 가진 듯하다.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의 미국 웹사이트 'Quora'에 달린 댓글이다.

"왜냐하면, '코리아부'는 자신의 문화는 잊고, 대신 한국 문화에 대해서는 무례한(지나치게 빠져듦으로써)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케이팝 댄스를 배우고, 케이팝이나 케이 메이크업에 관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케이 드라마를 좋아하거나 한국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코리아부가 되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도 안 되고요. 케이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어를 말하고 한국음식을 만들고 한국 아이돌 사진을 프로필로 쓴다고 해서 코리아부가 되는 것도 아니죠. 하지만 마구잡이로 한국 사람에게 다가가서 한국인이냐고 묻고, 한국말을 하지는 마세요." (Kimi Manaka)

'한국이 너무 좋아 한국인처럼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어쨌든 한국이 그토록 좋다니 고마운 일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들에 의해 한국 이미지가 영향을 받진 않을까 우려도 됐다. 다행인 것은 코리아부가 만연한 현상이 아니며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위키피디아(Wikipedia)의 설명처럼 "한류(서구 언론에서도 'Korean Wave' 혹은 한국어 발음 그대로 'Hallyu'라 부르기도 한다)는 21세기 초반 이후 영향력 있는 세계적 현상이 됐으며 동시대 문화, 음악산업, 영화산업, 텔레비전 산업, 그리고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 양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서구사회를 휩쓸어 곳곳에서 "오빤 강남스타일~"을 외쳐댈 때만 해도, 캐나다에서 한국어로 된 노래가 들린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었다. 이곳에서 접하게 되는 한국 관련 뉴스는 주로 북한과 김정은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젠 포털사이트에 한국문화 뉴스가 넘쳐나고 라디오에서는 언제 케이팝이 나올까 기다리게 된다. 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이처럼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은 시기에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게 얼마나 고맙고 자랑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캐나다에서 구입한 한국 화장품들
 캐나다에서 구입한 한국 화장품들
ⓒ 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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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사실일지언정, 코리아부로 하여금 한국인이 되고 싶을 만큼 한국문화에 빠져들게 한 데에는 '세계적 현상'이라 불리는 한국문화 콘텐츠가 자리하고 있다. 딸 친구들의 수다에는 케이팝 이야기가 종종 등장하고, BTS(방탄소년단) 열성 팬인 한 친구는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한다고 한다. 김치를 너무 좋아해 직접 담그고 싶다며 레시피를 물어오는 친구 엄마도 있다.

이곳 마트에서도 과자나 인스턴트 식품 등의 한국음식, 마스크팩이나 기초화장품 같은 한국화장품을 살 수 있다. '한국 알리기'의 시대는 이미 지난 지 오래다. 이제 한국의 문화는 케이팝과 케이드라마를 넘어서 케이뷰티, 케이푸드 등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서구에서 한국문화를 진정으로 즐기는 이들이 더욱 늘어나기를, 코리아부가 아닌 '코리아팬'의 저변이 더욱 확대되기를, 막연한 바람이 아닌 확신에 찬 기대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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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째 손 맞잡고 함께 걷는 한 남자, 그리고 꽃같고 별같은 세 아이들과 함께 캐나다 런던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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