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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자기 소개를 하라면 어쩔 줄을 몰랐다. 취업을 위해 써야 했던 입사지원서는 이른바 '자소설'로 얼렁뚱땅 해결하긴 했지만 사람들을 만나서까지 소설을 쓸 수는 없으니, 그렇게 난처할 수 없었다. 특징이라고 할 만한 것이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내 자신이 답답하기도 했다. 

지금의 나는 용기를 끌어 모아 읽고 쓰는 사람으로 나를 소개하고 싶다. 관련 분야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예나 지금이나 그와 관련한 이력은 한 줄도 없지만 내 정체성에 가장 가까운 소개는 그것뿐이다. 생업과 생존을 위한 기초적인 활동을 제외하고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활동은 읽고 쓰는 것이 분명하니까. 

겨우 이 정도 글이나 쓰면서 이런 말을 하기가 부끄럽기 이루 말할 데 없지만, 사람마다 그릇은 다른 법이다. 나는 그저 나 하나를 치유하겠다는 실용적인 목적에 충실하고 있고 매순간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으니 이것으로 만족할 따름이다. 

처음에는 읽는 것이 그저 좋았다.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 읽은 것을 기록할 필요를 느꼈다. 그렇게 단순한 이유로 시작한 읽기와 쓰기는 늘 나를 놀래킨다. 어쩌면 그 놀람이 좋아 계속해 읽고 쓰는지도 모른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 자신을 포함해 현실 속 누군가를 이해하게 될 때의 쾌감이 가장 크다. 

혼자 읽고, 혼자 쓰지만, 늘 사람을 느낀다. 좋은 글을 빚어낸 작가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무엇보다 내 자신을 느낀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조금씩 덜 아픈 사람이 되어간다. 내 모자람이 남과 나를 해하지 않도록 더 단단해져 간다. 고민이 있다면 읽고, 쓰자. 이것이 내 스스로 찾은 처방전이다. 
 
 <마음을 치료하는 법> 책표지
 <마음을 치료하는 법> 책표지
ⓒ 코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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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료하는 법>의 저자 로리 고틀립은 심리상담사이며 이 책 역시 상담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이 글을 읽으며 내가 '읽기와 쓰기'를 떠올린 것은, 두 작업이 무척 닮아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책에 등장하는 비유를 보면 이것이 나의 느낌만은 아닌 듯하다. 
 
"내가 이야기를 편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웬델(상담사)의 일이다. 그게 모든 심리 치료사의 역할이다. 관련 없는 요소는 무엇인가? 조연들은 중요한가? 방해꾼이 있는가? 이야기에 진척이 있는가, 혹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가? 줄거리의 특정 지점에서 주제가 드러나는가?"(166)

그녀는 모든 답은 내담자가 갖고 있다고, 상담사는 그것을 찾도록 도와줄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상담사는 문제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도록 슬쩍 밀어줄 뿐이지, 그 행위를 대신 해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읽고 쓰는 작업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어떤 책도 나를 저절로 치유해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 나름의 깜냥으로 되새김질 할 때 읽고 쓰기는 치료약이 되어 주었다. 너무 뻔한 말 같지만 때론 그런 게 진실 아니던가. 

처음 이 책을 만날 때까지만 해도 <마음을 치료하는 법>이라는 제목이 못미더웠다. 개성도 없고, 시시하지 않나. 다 읽은 지금은 이것만큼 이 책을 잘 표현하는 말은 또 없다고 여긴다. 꼭 상담이 아니어도 좋다. 이 책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치료법은 필요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만날 때마다 서로를 성장하게 하는 벗이 있다면, 자신을 더 긍정적으로 나아가게 하는 취미가 있다면, 그 또한 내 마음 치료법으로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심리상담사가 보기엔 위험하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나는 책을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지독한 오독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덧붙여야겠다. 

저자는 할리우드와 방송사에서 스토리를 만드는 일을 해왔다고 한다. 그 이력 덕분인지 책은 마치 한 편의 소설을 보는 듯 기승전결마저 완벽하다. 그녀가 자신을 찾아온 내담자들을 상담하는 내용은 물론, 그녀 자신이 실연의 상처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상담사를 찾아간 내용이 동시에 전개된다.

심리 상담이 '단기 만족'이나 누군가의 맞장구를 듣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님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 자신이 못 말리는 내담자가 되어 상담사를 곤란하게 하는 장면은 웃음이 터져 나온다. 심지어 자신이 만나는 상담사의 뒷조사까지 할 지경이니 말 다했다.

이런 솔직한 고백들과 함께, 책은 그녀 자신과 내담자들의 성장을 함께 그려낸다. 그녀 또한 단순히 실연으로 인해 무너져 내린 것이 아니라는 것, 죽음과 무의미에 대한 두려움 앞에 잠식되어 가고 있었던 것을 깨닫는다.

좌충우돌 속에서도 이들은 모두 성장을 향해 간다. 누구나 아플 수 있다. 치료법이 중요할 뿐. 셀프 케어가 어려울 땐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도 훌륭한 대안일 것이다. 

리뷰를 마치려는데 행여 책에 대한 기대감을 떨어뜨릴까 불안하다. 단언컨대 그 이상을 건네는 책이다. 내게 더 좋은 언어들이 없어서 퍽 아쉽다. 더 읽고 더 써 볼 일이다. 나를 치료하기 위해, 이왕이면 더 볼 만한 글을 남기기 위해. 

마음을 치료하는 법

로리 고틀립 (지은이), 강수정 (옮긴이), 코쿤북스(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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