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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이 퇴사했다.
 남편이 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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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여름 남편은 안정된 회사를 퇴사했다. 밤늦도록 기계처럼 일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이가 어릴 때 함께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했다. 그런 남편의 뜻을 존중하고, 동의했다. 그렇게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집에서 밥을 세 끼 먹는, 흔히 말하는 '삼식이'가 되었다.

처음에 집이라는 공간에 종일 같이 있다는 게 예상보다 의식이 되었다. 방에 따로 있어도 그의 존재가 느껴졌다.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신경 쓰면서도 밥때가 되면 서로 눈치 보며 밥을 차려서 같이 먹었다.

좋은 점도 많았다. 그간 혼자 밥 차려 먹기 귀찮아서 굶거나 대충 먹던 내가 규칙적으로 끼니를 챙겨 먹었다. 아무래도 반찬 하나라도 공을 들이게 되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의 하원을 부탁할 수 있었다. 가끔은 아이들을 맡기고 혼자 외출도 할 수 있었다.

삼식이, 프리랜서, 재택근무라는 게 장점도 많았지만 단점이라면 생계를 책임지던 남편의 일이 고정적이지 않다는 점이었다. 하던 일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프로젝트가 없을 때면 마치 땅을 딛고 있던 바닥이 지진이 나듯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서로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싶어도 초조한 눈빛과 입금이 언제 될지, 일이 언제 들어올지 몰라 손안이 텅 빈 느낌이 들 때면 암울한 공기가 집안에 내려앉았다.

집안일 하는 남편, 출근하는 아내

앞이 보이지 않아 막막하던 무렵 기적같이 하늘에서 일이 뚝 떨어졌다. 남편이 아닌 나에게 일할 기회가 온 것이다. 사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일자리를 찾는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남편은 생계를 책임졌고, 아이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건 내 몫이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이를 맡기거나 부탁할 데가 없고 저녁에 퇴근하도록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자신도 없었다.

오롯이 10년 동안 아이들을 키운 나에게 감나무에서 감이 뚝 떨어지듯 일이 떨어진 것이다. 일할 생각이 있냐고 지인에게 연락이 왔는데 다른 엄마들은 코로나 방학으로 집을 비울 수가 없다고 했다. 두 달간 기간제 근로자로 일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고, 가슴 떨리는 동아줄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긴긴 방학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은 남편에게 맡겨졌다. 난 집을 탈출하듯 해방되었다. 우리 부부는 살면서 자주 하던 말버릇이 있었는데 '서로의 입장이 바뀌면 알 수 있을 텐데'라는 말이었다. 그 말이 거짓말처럼 10년 만에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린 역할이 바뀌었다. 학교와 유치원에 못 가는 아이들을 위해 남편이 식사를 챙겼다. 아침에는 학교와 유치원에 아이들 정상 체온을 알리고, 첫째 아이가 온라인 수업에 스스로 정착하기까지 도와줬다. 둘째는 유치원 등원 대신 현장학습 사진을 찍어서 올려야 하는 숙제가 있었다. 내가 일하는 동안 학교나 유치원에서 연락이 오면 나 대신 남편과 통화하는 게 좋겠다고 넘겼다.

오전에 출근해 오후에 퇴근까지 집안일에 대해서 철저하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나의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는 하루가 황홀하기까지 했다. 난 집에 들어가면 소파에 누워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피곤함에 엎어졌다. 왜 그토록 아빠들이 집에 오면 소파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는지 너무나 이해가 될 정도였다.
   
 집안일로 손에 물이 마를 일이 없던 남편은 양쪽 손등에 습진이 나기 시작했다.
 집안일로 손에 물이 마를 일이 없던 남편은 양쪽 손등에 습진이 나기 시작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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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알못(요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남편이 식사를 차려주면 '왜 반찬이 매일 비슷하냐'며 '이건 맛있네 맛없네' 날카롭게 평가하고 '요즘 따라 입맛이 없네'라며 까다롭게 요구했다. 내가 오늘 얼마나 힘들었는지 에피소드를 나열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주말에는 집 밖에 나가기도 싫다며 그저 쉬고 싶다고 했다. 나만 책임지면 되는 그 시간 동안 누군가 나에게 회사와 집 중에 어디가 더 좋으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난 "회사 갈래요!"라고 외쳤을 것이다. 전업주부였던 내가 월급날 통장에 찍혀진 숫자를 보며 희열했다.

바꿔 산 지 두 달, 남편은 화를 내기 시작했다 

10년 동안 집안일로 지쳐 있던 내게 생산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반항 같은 일상이었고 안식월 같은 보상의 시간이었다. 반면에 남편은 하루종일 복닥거리는 아이들 소리에 귀가 아프다며 한 시간이라도 혼자 있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이 싸울 때면 조용히 타이르던 남편이 짜증과 화를 내기 시작했다. 게다가 집안일로 손에 물이 마를 일이 없던 남편은 양쪽 손등에 습진이 나기 시작하다가, 급기야 손톱만 하던 습진 부위가 점점 야구공처럼 커졌다. 간지러워지기 시작해 참다못해 간 피부과에서는 물을 닿지 말라는 처방을 내려주었다.

집안일은 끝이 없다고, 티도 안 난다고 내가 늘상 하던 말을 남편의 목소리로 듣게 되었다. 우리는 입장이 달라져 있었지만 또 서로의 익숙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내가 내뱉었던 말을 남편이 주워 담고 있었고, 사회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인한 남편의 한숨이 나의 한숨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물론 서로가 다르게 쌓아온 10년의 세월을 고작 두 달로 맞바꿀 수는 없지만 서로의 자리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두 달의 기한은 끝이 났고 난 다시 집으로 정착했다. 회사 조직 안에서 내가 사라지는 일이었고, 집에서도 가족을 위해서 나의 존재가 사라지는 일이다. 하루의 시간과 같은 공간에서 우리는 돈 버는 일이든 집안일이든 여전히 각자의 존재가 사라지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각자의 입장을 반박하고, 변호하는 시간이 전보다는 줄었다. 서로 눈빛과 대화의 행간에서 느껴지는 침묵 안에 서로의 입장을 한 번씩 헤아리는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난 여전히 미스터리다. 남편은 하루종일 가족과 함께하는 게 뭐가 좋다고 사표를 냈을까. 물리고 식상한 집밥이 아닌 바깥바람 쐬면서 MSG 팍팍 들어간 식사 한 끼가 얼마나 맛있는데. 아침에 헤어졌다가 저녁에 다시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데. 돈보다는 시간이라고 외치는 남편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이해하기까지는 아직 멀었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중복 송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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