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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10월 19일은 '양봉인의 날'이다. 세계적으로는 5월 20일을 '벌의 날'로 기리고 있다. 5월 20일이 UN 제정 '세계 벌의 날(World Bee day'가 된 것은 그날이 슬로베니아의 근대 양봉인 안톤 얀사(Anton Jansa)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안톤이 그런 지구적 광영을 누리게 된 것은 조국 덕분이다. 슬로베니아는 '유럽 양봉의 심장' 소리를 듣는 나라다. 인구 200만의 슬로베니아에는 양봉 인구가 1만 명이나 있다. 200집 중 한 집이 양봉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꼴이다(0.5%).

​통계의 실감을 위해 우리나라의 경우와 비교해보자. 계산하기 쉽게 총인구를 5000만으로 잡고 양봉 종사자 약 2만 명의 비율을 보면 0.04%로, 슬로베니아 0.5%의 1/12.5밖에 안 된다. 우리나라가 슬로베니아만큼 양봉 산업이 활성화되었다면 5000만 명의 0.5%는 25만 명이나 된다.

주로 농약과 살충제 때문에 벌 개체가 격감하고 있어 자연 생태계 유지에 큰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벌이 많아야 꽃과 식물들의 수분이 원활하게 일어나는데, 농약 및 살충제 과다 살포로 벌이 떼죽음을 당하면서 자연생태계가 위험해진 것이다.

그래서 2018년부터 인류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세계 벌의 날'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일반인의 실천 사항은 무농약 또는 저농약 농산물을 애용하고, 벌이 좋아하는 꽃을 많이 심는 행동이다. 이 일에 슬로베니아가 앞장을 섰고, 안톤은 그 덕(?)을 보았다.

정붕이 남긴 유명한 청렴 관련 일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벌은 1509년(중종 4) 경북 청송에 살았던 꿀벌들이다. 그러나 이 벌들은 '의로운 개'나 '의로운 소'처럼 주인의 생명을 살리고 대신 죽은 충신(!)들은 아니다.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데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고, 경상북도 도청 등 여러 공공기관 청사와 누리집에도 올라 계속 이름을 날리고 있다.

​모두가 당시의 청송부사 정붕(鄭鵬) 덕이다. 영의정이 "청송은 잣과 꿀의 명산지 아닌가! 나한테 좀 보내주게"라는 전갈을 보내오자 정붕은 "잣은 높은 산꼭대기에 있고(柏在高岺頂上) 꿀은 민간의 벌통에 있는데(蜜在民間蜂筒中) 태수가 무슨 재주로 그것을 얻을 수 있겠소(爲太守者何由得之)?" 하고 답장을 보냈다. 이 일화가 공사를 엄격히 구분하고 부정부패를 철저히 거부하는 청렴한 공직자의 모범으로 우리 국민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정붕 초상(구미시 선산읍 포상리 소재 '정붕 사당' 안의 영정을 재촬영하여 일부만 사용였으므로 실제 초상과는 많이 다름)
 정붕 초상(구미시 선산읍 포상리 소재 "정붕 사당" 안의 영정을 재촬영하여 일부만 사용였으므로 실제 초상과는 많이 다름)
ⓒ 해주정씨신당공파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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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붕의 일화는 단순히 그의 일회성 언행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신당 정붕은 퇴계 이황이 "〈안상도〉를 보면 정붕의 학문이 정치함을 알 수 있다"라고 격찬한 학자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비슷한 평가가 실려 있다. 다음은 정조 22년(1798) 10월 5일의 기록 중 일부 내용이다.

"정붕은 문경공(文敬公) 김굉필(金宏弼)의 문하에서 배워 정통을 이어받았는데 정밀하게 사색하며 힘써 실천했습니다. 일찍이 구용(九容) ‧ 구사(九思)의 조목에다 (태공망이 무왕에게 전해 준 <단서>에서 말한) 경태(敬怠)의 분류를 보태어 책상 위에 그려서 붙여놓고 되새겼는데 이황이 그의 조예가 정밀한 것을 칭찬하였습니다."

본문의 '책상(床) 위(上)에 그려서(圖) 붙여놓고'는 정붕이 〈안상도(案上圖)〉를 작성해서 실생활에 활용을 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안상도는 성리학의 이치를 실제 생활에 실천할 수 있는 방안에 관한 그림 형태의 글이다. 낙천(樂天)과 안명(安命)으로, 선비가 학문을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낙천 즉 하늘의 이치를 깨달아 그 경지에서 즐기는 것이며, 그 경계에 이르면 스스로의 분수와 한계를 알았으므로 마음이 평안해진다는 논리를 기본 이념으로 하고 있다. ​

정붕은 낙천의 실천방안으로 '정기의관존기첨시(正其衣冠尊其瞻視)' 즉 '의관을 바르게 하고 시선을 높이 두라'를 제시한다. 여기서 존기첨시는 사소한 이익이나 욕망에 집착되지 말고 하늘의 이치와 인생의 진리를 탐구하는 데 열정을 쏟으라는 뜻이다. 안명의 실천방안으로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즉 '자기가 바라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마라'를 제시한다.​
 
경북 구미 선산읍 포상리 해주정씨신당공파종중 재실 앞의 정붕 신도비
 경북 구미 선산읍 포상리 해주정씨신당공파종중 재실 앞의 정붕 신도비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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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22년 10월 5일 실록에 등장하는 '구용'과 '구사'에 대해 알아본다. 구용은 <예기>에 나오는 말로, 사람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아홉 가지 태도를 가리킨다.

족용중(足容重) : 발은 무거워야 한다.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뜻이다.
수용공(手容恭) : 손 공손해야 한다. 어지럽게 움직이면 인격이 혼란해 보인다.
목용단(目容端) : 눈은 단정해야 한다. 곁눈질, 부릅뜨기, 내려깔기 등은 금물이다.
구용지(口容止) : 말을 함부로 많이 하지 말라는 뜻이다.
성용정(聲容靜) : 안정된 마음은 조용한 음성을 낳고, 좋은 대화를 가능하게 해준다.
두용직(頭容直) : 머리를 곧게 유지하라. 자칫하면 좋지 못한 인상을 준다.
기용숙(氣容肅) : 숨은 조용히 쉬어라. 숨은 마음 상태를 나타낸다.
입용덕(立容德) : 덕스럽게 서라. 뻣뻣하면 불손, 엉거주춤하면 비굴해 보인다. 
색용장(色容莊) : 얼굴 모습은 씩씩하고 생기가 있어야 한다.


구사는 <논어>에 나오는 말로, 사람의 바람직한 아홉 가지 사고방식을 가리킨다.

시사명(視思明) : 분명하게 볼 생각을 하라.
청사총(聽思聰) : 똑똑하게 들을 생각을 하라.
색사온(色思溫) : 표정은 온화하게 가질 생각을 하라.
모사공(貌思恭) : 태도는 공손하게 가질 생각을 하라.
언사충(言思忠) : 말을 충직하게 할 생각을 하라
사사경(事思敬) : 일은 공경스럽게 할 생각을 하라.
의사문(疑思問) : 의문이 있을 때는 물을 생각을 하라.
분사난(忿思難) : 화가 날 때는 뒷일을 생각하라.
견득사의(見得思義) : 이득이 있을 때는 의리를 생각하라.


정붕은 하늘의 이치를 찾는 참된 사람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 요인으로 <소학>에 나오는 태(怠)와 욕(慾)을 언급한 후, 극복 방안으로 동심(動心)과 인성(忍性)을 들었다. 태는 게으름이니 그를 극복하려면 마음을 격동시켜야 하고, 욕은 욕심이니 참을 줄 아는 마음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뜻이다.

​정붕은 범범유유도불제사(泛泛悠悠都不濟事) 면면순순자유소지(勉勉循循自有所至)라는 문장으로 〈안상도〉를 끝맺고 있다. 범범유유도불제사는 안정된 마음과 태도를 가지지 못한 채 허황하게 떠 있으면 아무 일도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 면면순순자유소지는 우주와 인간 세상의 이치에 따라 부지런히 노력하면 자연스레 좋은 결과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다.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정붕은 이와 같은 〈안상도〉를 자신의 책상 위에 그려놓고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그것을 들여다보며 일상의 삶을 실천했다. '잣과 꿀' 일화는 그러한 정붕의 지식인다운 실천자적 인식이 낳은 결과이다.

생각이 행동을 낳는 씨앗인 것은 분명하지만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주는 정붕의 사례를 오늘에 되살려 어수선한 우리나라의 정신과 현실을 바로잡아야겠다.
 
경북 구미 선산읍 포상리 '정붕 사당'
 경북 구미 선산읍 포상리 "정붕 사당"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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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 정붕 약전

1647년(세조 13) 11월 4일 선산 출생

149년(성종 23) 25세 과거 합격(조선 시대 합격자 평균 연령은 36세)

1504년(연산군 10) 9월 18일 연산군에게 바른 정치를 권하다가 장형 80대를 맞고 이튿날 영덕으로 유배

1506년(중종 1) 9월 13일 사헌부 지평, 9월 20일 의정부 겸상에 임명되나 사양함. 이어 홍문관 교리에 임명되나 중종반정공신 홍경주(중종 후궁 홍씨의 아버지)의 위세를 보고 기묘사화를 예감, 병을 핑계로 낙향함.

1509년(중종 4) 5월 18일 영의정 성희안과 중종의 강권으로 청송부사 부임, 3년 재임 중 1512년 9월 19일 46세로 별세

1513년 3월 15일 아들이 어리고 가난하여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사정을 알고 동방급제했던 경상감사 방태화를 비롯 영남 지역 수령들과 선비들이 상의하고 풍기군수 임제광이 묘갈명을 쓰고 비석을 만들어 구미시 무을면 선영하에 장사를 지냄
 

태그:#정붕, #안상도, #벌의 날, #양봉인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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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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