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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은 언감생심, 국내 여행조차도 꺼려지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아까운 계절을 '집콕'으로만 보낼 순 없죠. 가벼운 가방 하나 둘러메고, 그동안 몰랐던 우리 동네의 숨겨진 명소와 '핫플레이스'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전국 방방곡곡 살고 있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큰마음 먹지 않고도 당장 가볼 수 있는, 우리 동네의 보석 같은 장소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부평은 독특하다. 인천의 내륙지역에 위치한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인천이지만 정서적으로는 바닷가 쪽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 아직도 그 쪽 사람들은 부평 넘어간다고 하고, 부평 사람들은 인천 나간다고 한다. 둘 다 인천이면서 그런다. 항구에서 서울 가는 길목이라 그 중간 완충역할을 많이 했다. 교통요지에 군사요지였다. 제국주의 시대 일본군도, 광복 후 미군도 부평에 기지를 차렸다.

부평은 또 유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큰 시장이 두 개다. 하나는 일제 때부터 있었던 구시장이고 다른 하나는 도로 건너에 새로 만든 새시장이다. 구시장은 지금 한창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게 아니다 보니 진척이 느리다. 걸핏하면 업자끼리 싸우고 중단되기 일쑤다. 하다못해 시장 인근의 옛 경찰서 자리도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벌써 20년이 넘었다.

그 경찰서와 시장 사이의 뒷골목에는 술집이 밀집해 있었다. 주로 부평에 주둔하던 군인들이 많이 드나들었는데, 공수부대가 외곽으로 옮기고, 미군 부대의 규모가 대폭 줄어들면서 그 술집들도 하나 둘 문을 닫았다. 우리의 밤 문화, 술 문화가 바뀐 탓도 컸다. 화려한 조명이 하나 둘 꺼지면서 골목은 쇠락한 구도심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쇠락한 구도심의 분위기를 바꾼 청년들
 
인천 부평의 새로운 명소 평리단 길  다 죽어가던 쇠락한 시장 뒷골목이 청년 창업자들이 몰리면서 되살아나고 있다.
▲ 인천 부평의 새로운 명소 평리단 길  다 죽어가던 쇠락한 시장 뒷골목이 청년 창업자들이 몰리면서 되살아나고 있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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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염없이 늙어가던 지역에 언제부턴가 아연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4~5년쯤 전부터였다. 아담하고 예쁜 커피숍들이 먼저 들어섰다. 뒤이어 디저트 카페, 특색 있는 메뉴의 유럽풍 레스토랑, 개성만점의 옷이나 액세서리 숍, 사진관, 꽃집, 공방 등이 속속 문을 열었다. 주인들은 20, 30대, 많아야 4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어벤져스처럼 이 골목에 나타났다.

2016년 개장한 부평시장 프리마켓의 영향이 컸다. 시장 한가운데에 있는 길을 막아 자동차 없는 거리로 조성하고 그곳에 청년 창작자들의 장터를 차렸다. 이 거리는 인천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곳이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었다. 자꾸 휑해지는 시장의 풍경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어 기존 상인들이 용단을 내려 가게 앞을 내준 거였다.

개성 있는 액세서리며 다양한 패션 소품들이 선을 보였다. 가요제나 패션 쇼 같은 이벤트도 많았다. 사람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특히 젊은이들이 많았다. 부평구가 중소기업청 예산을 따와 시작한 이 사업은 나름 성공을 거둔 셈이었다. 칭찬해 줄만 했다. 하지만 주말에만 열린다는 게 조금 아쉬웠다. 그들 중 일부가 이 골목에 둥지를 틀면서 지역 전체로 번져나갔다.

지금까지 40~50개 정도의 점포가 들어섰다. 코로나19로 다소 주춤하지만 전에는 평일 하루 2만 명 이상 다녀갈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그 골목 일대를 '평리단 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서울 경리단 길을 차용한 거다. 남 이름 빌려 쓰는 게 조금 찜찜하지만 어쨌거나 이 우중충한 우범지대는 순수 민간의 힘으로 새롭게 거듭 나는 중이다.

세대가 공존하는 평리단길 
 
아름다운 공존  1층엔 방앗간이 2층엔 초현대식 이발관이 들어섰다.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간판마저 함께 쓴다
▲ 아름다운 공존  1층엔 방앗간이 2층엔 초현대식 이발관이 들어섰다.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간판마저 함께 쓴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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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골목의 미덕 중 하나는 공존이다. 사오십 년 된 노포(老鋪)와 이제 한두 살짜리 소포(少鋪)들이 사이좋게 함께한다는 점이다. 그 둘은 아무 연결고리도 없다. 노포들은 주로 커튼, 홈패션, 의류 등을 취급한다. 오히려 매우 이질적이다. 낡고 오래된 노포들은 깔끔하고 예쁜 소포들에 전혀 주눅 들지 않고 꼿꼿하게 허리 펴고 제 자리를 지킨다. 젊은상인들도 노포의 어르신들에게 늘 깍듯하다.

"사실 이런 게 상생이고 윈-윈 아니겠습니까. 우리야 사람 많이 드나들면 좋지요. 우리 매출도 덩달아 오르니까요. 다 죽은 골목을 저 친구들이 살렸으니 대견하기도 하구요. 아무튼 우린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천냥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김흥수 사장은 젊은이들 덕에 지역상권이 더 좋아져 바랄 게 없다고 말한다. 그의 아버지 때부터 여기에 터를 잡았고 자신이 장사한 지는 20년이 넘었다. 이 골목의 산증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그도 요 몇 년 만큼 사람 많이 드나들었던 적은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만큼 오래 쇠락했던 지역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어르신들하고 한 동네에서 장사하는 게 오히려 좋아요. 배울 점도 많지요. 어르신들도 잘 해주세요. 우리 가게 건물주께서도 4년 간 집세 올리지 않을 테니 열심히 하라며 가게 터를 내주셨어요. 고마울 따름이지요."

카페 워디(WORDY)의 황제윤 사장도 대체로 만족하는 눈치다. 그러면서 자신과 비슷한 나이 대의 다른 사장들도 같은 생각일 거라고 일러준다. 그는 2년 전에 이곳에서 문을 열었다. 지금은 코로나로 손님이 많이 줄긴 했어도 매상도 꾸준하다고 한다. 수입을 물으니 그냥 회사 다니는 친구들 안 부러울 정도라고만 한다. 그는 이 골목이 더 성장할 것이라 내다봤다.

우려했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조짐도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상인들은 대체로 눈에 띌 만큼 가게 세가 오르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 동네에서 8년 째 부동산중개사사무소를 운영 중인 신광식 대표는 앞으로도 터무니없이 가게 세가 오르는 일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5년 간 물가 인상 분 정도는 올랐죠. 하지만 미미한 수준이구요, 워낙 세가 쌌던 지역이라 올랐다고 해도 실제로는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미는 수준이죠. 건물주 분들이 대부분 노쇠하신 분이 많아 크게 욕심도 내지 않으세요."

굳이 문제가 있다면 매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개업하려는 젊은이들은 많은데 나오는 가게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돈으로 밀어 붙이거나 억지로 밀어내는 일은 없다. 로얄 부동산 신 대표는 그냥 자연스럽게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또 그런 대로 서서히 변해가는 곳이 이곳 평리단 길의 생리라고 정의했다.

그의 말처럼 건물주들도 대부분 같은 생각이었다. 전에는 아무리 싸게 내 놔도 들어오는 이가 없었는데, 그런 데서 세가 나오니 공돈 같기도 하는 반응마저 있었다.

"몇 푼 더 받으면 뭐 하겠어요. 이렇게 다 죽었던 우리 가게 살려 준 것만도 고마운데, 더 바라면 나쁜 사람이지. 그냥 하던 대로 놔두려 해요. 뭐 여기 터가 좋아 돈 많이 벌어 다른 데 가면, 그 땐 또 모르지만."

이 동네 사는 전영제씨의 말이다. 그의 집은 골목 요지의 3층짜리 건물이다. 조물주 위의 건물주라지만 그는 세입자들에게 박하게 굴지 않는다고 했다. 이른바 착한 건물주다. 다만 먼저 장사하다 나간 사장이 권리금 받는 건 자신도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이와 비슷한 지역들이 치솟는 가게 세 때문에 몸살을 앓는 경우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모두를 환영하고, 누구나 존중받는 거리
 
평화의 거리 오른쪽엔 노포들이 왼쪽엔 소포들이 늘어서 있다. 하지만 이들은 싸우지 않는다 평화롭게 공존하는 거리다.
▲ 평화의 거리 오른쪽엔 노포들이 왼쪽엔 소포들이 늘어서 있다. 하지만 이들은 싸우지 않는다 평화롭게 공존하는 거리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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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골목의 장점은 또 있다. 이곳엔 술집이 없다. 그 흔한 고깃집도 없다. 새롭게 입주한 가게들 중엔 그렇다. 취객이 없으니 밤에도 소란스럽지 않고, 토사물 따위로 거리가 더럽혀질 일도 없다. 고깃집이 없어 연기 피우거나 냄새 날릴 일도 없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그게 가장 좋단다. 주거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술집으로 흥했던 골목에 술집이 하나도 없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시장은 열린 다양성의 공간이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으로 채워진 공간이다. 그 중 더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은 없다. 그 가치는 평등하다. 오롯이 사람을 위한 가치다. 시장은 공존의 공간이다. 사람들이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며 함께 살아간다. 사람이 넘치고 사랑이 넘실거린다. 모두를 환영하고, 누구나 존중받는다. 강압이 아닌 조화의 질서로 유지되는 공간이다.   

부평 평리단 길은 그런 시장의 정신을 온전히 구현하고 있다. 노포와 소포가 사이좋게 공존하며 세입자와 건물주가 또 서로를 보듬는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그곳에 사는 주민들을 배려한다. 서로가 서로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되어 준다. 각박한 우리 사회에선 참 보기 드문 풍경이다. 이 평화가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차제에 이곳만의 독특한 새 이름이 생기면 더 좋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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