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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재난이 있었다. 정부가 장애인 대상 감염병 대응 매뉴얼을 지난 6월 24일에 발표했지만, 이미 대구에는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 4개월, 메르스 유행 이후 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심지어 매뉴얼에는 예산도, 실행 주체도 제대로 명시되지 않아 장애인이 맞닥뜨린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동안 정부 대신 매뉴얼의 빈틈을 메운 것은 시민단체와 장애인의 가족들이었다. 또다시 감염병이 확산하면 장애인과 같은 취약계층은 위험의 최전선에 있을 게 불 보듯 뻔한데, 왜 변화는 더딘 것일까. 우리는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대구 코로나 확산을 겪은 장애인 당사자(이자 활동가)와 장애인 인권 단체 활동가들을 만나봤다. [기자말]
김시형 활동가는 15년여 동안 대구 시민사회에서 장애인 인권운동을 해온 시민단체 활동가이자 장애인 당사자다. 그는 지체장애와 뇌병변장애를 가진 중증장애인으로 평소 하루 5시간 활동지원사의 지원을 받았지만, 지난 2월 대구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2주간 혼자 자가격리에 들어가야 했다. 김시형 활동가는 2월과 지금을 비교해도 장애인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재난 상황이 크게 개선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지난 8월 29일, 김시형 활동가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지원키트가 쓸모 없었던 이유
  
 활동 중인 김시형 활동가
 활동 중인 김시형 활동가
ⓒ 김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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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는 2월 19일을 기점으로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했다. 당시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어떤 상황이었나요?
"센터 상근자 중에 활동지원사 분이 계셨는데, 의심 증상자로 보건소에 갔다는 얘기를 2월 19일에 들었어요.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우리 큰일 났다, 큰일 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부터 센터가 자체적으로 비상체제에 들어갔습니다. 19일을 기점으로 센터 방문자, 활동지원사 분들을 파악하고, 의심 증상자의 접촉 대상자는 모두 자가격리에 들어갔어요. 체험홈(장애인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준비하는 공간)에 입주한 장애인들도 자가격리 대상자였습니다.

매뉴얼 같은 게 전혀 없었던 시점이고, 보건복지부에서 지침은 내려왔지만, 허울뿐인 지침이었고요. 그 지침에 구체적 예산이나 그런 건 명시되지도 않았죠."

- 어떻게 혼자 자가격리에 들어가게 되셨나요?
"활동지원사들도 자가격리 대상자였어요. 그렇다고 해서 누가 양성 판정을 받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활동지원사랑 제가 같이 자가격리를 할 수는 없었어요."
  
- 혼자서 2주간 어떻게 생활하셨나요?
"가장 힘들었던 건 기본적인 생활들이에요. 청소, 빨래, 개인위생 그리고 밥 먹는 것, 이게 제일 힘들었죠. 빨래 같은 건 아예 하지도 못했어요. 기어 다녀야 하니 발가락 껍질이 까지고 무릎이 아프고 그런 게 있었죠.

집에 따로 식량이 준비돼 있던 것도 아니니 밥은 배달 시켜 먹었고, 아침에는 일어나서 미숫가루를 먹었어요. 간단하게 혼자 타 먹을 수 있는. 그렇게 하루에 한 끼 정도 먹었어요. 샤워도 1시간 반에서 2시간이 걸렸어요. 활동지원사가 있으면 평소에는 20분 만에 씻거든요."
  
- 자가격리 중에 정부나 대구시에서는 어떤 물품들을 지원받으셨어요?
"자가격리 후 구청에서 하루에 두 번씩 전화가 와요. 체온 체크도 하고 상태가 어떤지 모니터링하려고. 한번은 오후에 전화가 와서 '지원물품을 드리겠다'라고 하더라고요. 어떤 것들을 받는지 물어봤어요. 혹시나 필요 없는 게 있으면 안 받으려고. 공무원이 야채가 있다고 하길래 안 가져다주셔도 된다고 얘기를 먼저 했어요.
 
 김시형 활동가가 남구청에게 지급받았던 생배추.
 김시형 활동가가 남구청에게 지급받았던 생배추.
ⓒ 김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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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집 문 앞에 가보니 채소가 들어 있는 지원 키트가 딱 있더라고요. 그렇게 두 번 정도 키트를 받았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됐어요. 생쌀을 보내거나, 생배추를 가져다줬거든요. 좀 슬펐어요. 진도 주민들이 힘들게 키운 배추인데 행정편의적인 생각으로 이렇게 나눠 줘버리니까 이 노력이 허사가 된 거잖아요."

3월 초 진도 주민들이 자가격리 중인 대구 시민들을 응원하기 위해 봄동 80상자를 보내왔다. 대구 남구청은 자가격리 중인 320가구에 가공하지 않은 생배추를 그대로 보냈다. 김시형 활동가는 먹을 수 없는 배추였다. 활동지원사 없이 불로 조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보건소는 어떻게 방문하셨나요?
"보건소는 못 갔죠. 한 사흘 동안 계속 보건소에 연락했는데 연락이 안 됐어요. 그 점이 제일 답답했어요. 구청에서도 모니터링 전화를 하면서 '보건소에 연락이 안 되냐, 연락해라', 심지어 '우리도 연락이 안 되니까 만약 연락되면 얘기해달라'라고 하더라고요.

자가격리 기간은 끝나가는데 검사결과가 안 나오면 계속 그 기간이 연장되잖아요. 빨리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전화도 안 되고. 그때부터 더 힘들어졌던 것 같아요. 3월 1일에야 전근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으로부터 이동지원을 받아 대구의료원에서 검사를 받았어요."

- 보건소가 전화도 안 받는 상황에서 매우 불안하셨을 것 같습니다.
"자가격리 하는 동안 힘들면 상담받으라고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문자가 오거든요. 그곳에서 한번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를 받고 더 비참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떡해요', '힘내세요', '몸 관리 잘하세요' 등 듣는데 '뭘 힘내라는 거야' 그렇게 느껴지더라고요. 그 전화를 받고 조금 비참하다, 초라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생배추를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 시나 구청이 방문해서 방역수칙을 알려준다든지 그런 적은 없었나요?
"못하죠. 할 수 있는데 못하죠. 감염 위험이 있으니까. 지급된 위생키트 안에 안내서도 들어있었는데 글자로 적혀있어요. 글자를 아는 사람은 읽을 수 있잖아요. 문제는 시각장애인, 발달장애인 분들이 그런 걸 받으면 이해를 못 하니 제대로 된 안내를 받을 수가 없는 거죠."

장애인 존중 없는 장애인 자가격리 시설
  
 활동 중인 김시형 활동가
 활동 중인 김시형 활동가
ⓒ 김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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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4일 정부에서 '장애인 대상 감염병 대응 매뉴얼'을 최초로 발표했습니다. 장애인들의 입장과, 장애인 단체들의 요구사항이 매뉴얼에 잘 반영됐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뇨. 1월 말, 2월 초에 코로나19와 관련한 1차 지침이 보건복지부에서 내려왔어요. 이후 7차 지침까지 나왔어요. 그 지침을 모아놓은 게 6월에 나온 매뉴얼이에요. 그 1~7차 지침도 대구지역에 활동하는 장애인 단체들이 계속 대구시, 정부에 요구해온 내용이 들어간 거예요.

1차 지침 때나 지금이나 개선되지 않은 게 있어요. 장애인이 자가격리자가 됐을 때, 격리시설로 갔을 때 생활지원을 받는다는 지침이 있다 하면, 여기에 따른 예산을 얼마나 배정할 것이며, 누가 집행하고 총괄하며, 어떤 인력이 투입되는지, 이런 것들이 전혀 없는 거죠.

또 지침을 시행하기 위한 주체가 있어야 하잖아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예산도 있어야 하고 컨트롤타워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매뉴얼에 반영되지 않았어요."

- 매뉴얼을 보면 장애인 확진자 발생을 대비해서 사전에 격리공간을 확보하겠다고 돼 있는데 현재 그러한 공간은 마련이 됐나요?
"아직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1차 지침이 나올 때도 대구에는 장애인을 위한 격리시설이 지정되지 않았어요. 격리시설이 생긴다고 해도 생활에 필요한 장애인 편의시설까지 갖춰져 있어야 해요. 그런데 '시에서 그런 걸 고려해서 지정할까' 이런 의문이 드는 거죠. 2월에 성보재활원에서 장애인 확진자 5명이 나왔잖아요. 그분들 모두 서울로 이송해 치료를 받았어요. 대구에서 책임져야 하는데 못 지는 상황이 발생하니까 그렇게 된 거죠."

현재 대구 내 자가격리 시설로는 대구교육낙동강수련원이 있다. 2월 경증환자 격리치료시설인 생활치료센터가 첫 개소하기 전부터 보호자가 없는 취약계층, 이주노동자, 홈리스 등의 격리장소로 지정됐고, 지금은 대개 해외입국자의 임시생활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 편의시설의 미비로 장애인의 입소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전근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 또한 "낙동강수련원은 장애 접근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장애인의 실제 생활환경을 고려한 격리공간은 대구 내에 없는 것이다.    
- 이런 재난 상황에서는 장애인들을 위한 어떤 정책과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2월에도 느꼈지만, 앞으로 코로나19 같은 상황이 또 온다면 장애인, 사회적 약자들을 우선적으로 검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저질환을 가진 장애인들이 많거든요. 당시 코로나19 검사 1순위가 신천지 교인들이었다고 하잖아요. 그 이유가 이해도 되고 감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그래도 신천지는 명단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가격리 통보만 하면 끝이잖아요. 자가격리돼 혼자 생활한다고 해도 장애인과 같은 어려움을 겪지는 않으니까."

김시형 활동가는 "신천지 교인 중에는 장애인이 없었어요. 신천지는 장애인을 안 받아요"라고 말했다. 2월 대구에서 신천지 대구교회를 중심으로 감염이 확산하면서, 진단검사가 교인들을 우선으로 이뤄졌다. 동시에 격리병상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당시에는 확진자의 병원 입원이 의무화됐기 때문에, 증상이 있음에도 병원에 입원하지 못해 자택격리 중인 환자들이 대거 발생했다. 시내 대학병원 응급실들이 잇따라 폐쇄됐다.

3월 3일에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아래 중수본)는 검사 우선순위를 신천지 교인에서 일반시민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김강립 당시 중수본 1총괄조정관은 정례브리핑에서 "대구시민에 대한 진담검사 결과를 볼 때, 코로나19의 지역사회 감염이 일정 수준 이상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 전, 2월 27일에는 신장을 이식받은 대구지역 70대 남성이 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았으나 발열 외 증상이 없어 경증으로 분류돼 집에서 대기하다 이틀 만에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장애인 확진자가 나왔다는 건 지역사회에 감염병 많이 퍼졌다는 반증"
  
 활동 중인 김시형 활동가
 활동 중인 김시형 활동가
ⓒ 김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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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가 되면, 장애인 복지관이나 보호센터 같은 곳들이 다 휴관해요. 그러면 장애인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집에 있어야 해요. 집에 있는 그 시간만큼 돌봄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한시적으로라도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에 위험수당을 포함해서 예산을 배정해야 해요.

또 현재 정책이 장애인이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활동지원 서비스를 병원에서 한 달 이상 이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어요. 코로나19로 병원에 입원하면 보통 두 달, 석 달을 지내게 되는데 이때 활동지원사가 장애인을 지원할 수 있도록 제약을 풀어야 해요.

의사, 간호사 중에는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적은 분들도 있잖아요. 특히 발달장애인은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고 아픈 것도 표현하기 어려운데, 이러한 점들을 전문 의료 인력이 상세히 알고 있을까요? 그러면 기존에 함께하던 활동지원사들이 간병에 들어가야 하는데 감염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들어가려고 할까요? 그러니 특수 상황을 고려해 활동지원사들에게 위험수당도 지급할 수 있어야 하죠."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의료 인력을 제외한 비감염인이 병동에 들어갈 수 없다. 따라서 확진을 받은 장애인은 활동지원사의 보조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닥친다. 3월 초 대구 북구 성보재활원 거주 장애인 5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서울시립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서울시립병원에 별도의 생활지원인이 없다 보니 서울 장애인 단체의 도움으로 활동지원 인력을 구했으나, 병원에서 거부했다. 활동지원 인력의 감염 가능성이 높고, 병원 환경에 익숙지 않기 때문이었다.

전근배 국장은 "예를 들어 방호복을 입는 것에서부터 의료기기를 건드리는 것까지, 단순히 한두 시간 교육으로 체화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게 병원의 입장이었다. 현실적인 방법은 장애인에 대해 이해도가 높은 의료인력을 확충해서 더 투입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모든 병원에서 이러한 인력을 일시에 확충하는 건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장애인 단체에서는 대안으로 '장애인 확진자 지정 의료지원·생활지원 병동·병원'을 요구하고 있다. 전 국장은 "장애인 확진자가 나왔을 때 지정병원을 갖추고, 그 지정병원에서는 보다 간병 인력을 증원해달라는 것이었는데, 이에 대해서도 어떻게 만들지가 여전히 공백인 상태"라고 덧붙였다.
  
- 코로나19는 전 세계적인 재난이고 누구에게나 위험하지만, 그럼에도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에게 더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장애인 확진자가 나왔다는 건 지역사회에 이미 감염병이 많이 퍼졌다는 반증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장애인들은 사회적 활동반경이 적을 수밖에 없거든요.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동시에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도 있다', '우리들의 이웃이다', 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장애인들이 모두 시설이 갇혀있었기 때문에, 장애인 확진자가 발생한다는 건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장애인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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