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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로 평가받는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명언이다. 

이 말을 비틀어 21세기 각광받는 철학자인 슬라보예 지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언어는 존재의 고문 장소다."

현재 보수 야당과 보수 언론의 극렬한 언어가 자신의 존재를 고문하고 있다. 즉 보수의 고유한 정체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보수 언어의 실격

원래 보수는 품격의 엄격함을 추구하고 진보는 자유로운 파격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 보수의 언어는 형식에 집착하는 고루함을 보여준다, 판사들의 판결문이 대표적이다. 판결문 전체가 한 문장일 정도로 길고 어려운 전문어로 나열되어 일반인이 읽기에는 대단히 난해한 권위주의적인 글이었다.

반면에 진보의 언어는 격식을 버리고 지나치게 자유분방하여 보수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싸가지" 논쟁에 휩싸이기 쉽다. 진보의 대표적인 지식인인 유시민 작가도 과거 한때 이렇게 비난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새로운 보수 세력의 언어가 이상하다. '일베' 언어의 특징인 차별적인 혐오 발언이 보수 정치인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지난해 보수 야당 나경원 전 의원의 일베적인 발언이 크게 문제가 되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을 '달창'으로 비하하여 정의당으로부터 "단순한 막말 사태가 아니라 여성 혐오이고 언어 성폭력"이라고 비판받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나 의원은 '김정은 대변인', '반민특위'로 발언으로 태극기 지지자들에게 히트를 쳤고, 이에 질세라 황교안 전 대표마저 '폭탄 정권'이라는 극렬한 언어를 남발한다.

더욱 심각한 점은 '조폭' 언어의 특징인 권위주의적인 우악스러운 언어가 보수의 차기 대선 후보 1위인 검찰총장의 입에서 튀어나오다니 매우 경악스러운 일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언쟁을 벌이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언쟁을 벌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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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법리적으로 보면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말해 보수 세력에게는 환호를, 일반 시민에게는 경악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긴 글-민주적 통제와 그 적들'이라는 제목으로 "검찰은 조폭과 다를 게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부하의 반대말은 두목이나 보스이다. 보스와 부하, 오야붕과 꼬붕은 조폭의 대표적인 권위적인 조직 언어이다. 다시 말해 윤석열 검찰총장은 검사와 수사관의 보스란 말인가? 

검찰총장은 법률적으로 법무부 장관의 지휘와 감독을 받는 위치에 있다. 다시 말해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은 민주적인 통제 아래에서 상급자와 하급자의 관계에 있다. 검찰총장도 국민들의 민주적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 합법적인 정당한 지휘 계통 아래에 있다는 말이다. 

민주적 통제를 거부하고 검사들의 보스를 자처한 일명 백두산 호랑이는 이 말로 새로운 누아르 장르를 보여주었다. 영화에서 보던 장면이 현실화된 데에 평범한 시민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업에서마저 수평 조직을 외치며 직급 파괴를 하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검찰 조직이 이러한 민주적인 조직 문화의 보급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수직적인 권위주의에 물들어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강욱 대표가 검찰 조직 문화를 조폭적이라고 규정한 것도 이해가 된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자신과 검찰 조직을 보호하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전략으로 조폭식 언어를 구사한 것일 수도 있다. 경찰 출신 황운하 의원은 윤석열 총장의 언어를 "인격 미숙하고 교양 없는" 것으로 비판했다. 

사라진 언어의 품격에서 드러나는 보수의 위기

보수 세력의 위기는 보수 언어의 실격에서 잘 드러난다. 조폭적인 언어와 '일베'적인 언어가 보수 담론의 핵을 이룬다는 점이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더불어 보수 언론도 팩트체크와 균형적인 시각보다 정파적 이해에 몰입하여 프레임 조작에 골몰하다 보니 역시 실격의 길에 들어서고 있다. 

작은 흠을 침소봉대하고 이를 공격적으로 반복하는 전략은 작년 9월 이른바 '조국 대전'에서 일정 정도 성과가 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검찰 개혁과 조국 수호'를 외치는 서초동 촛불집회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오히려 조국을 불공정의 프레임으로 공격하는 데에 선봉장이던 나경원 전 의원의 엄마 찬스 의혹과 최성해 총장의 학력 위조와 공작 정치 의혹만 불거졌다. 

의혹을 부풀리고 이를 집요하게 반복적으로 공격하는 전략은 윤미향 의원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도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되었다. 그럴수록 야당의 지지도는 떨어지고 비호감도만 높아질 뿐이었다. 

심지어 부동산값 폭등과 문재인 정부의 무능에도 같은 방식이 사용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격하던 목소리는 오히려 강도 높은 부동산 대책이라는 부메랑을 맞았다. 이 과정에서 야당 원내대표인 주호영 의원은 23억 시세 차익 의혹이 드러났으며 탈당한 박덕흠 의원은 수천억 대의 피감기관 수주 의혹으로 고발되었다. 

여권 인사를 공격하기 위해 이철 대표에 대한 일종의 작업은 채널A 이동재 기자의 검언유착 사건으로 드러나고, 또 오래 묵혀둔, 여당 공격 소재인 '옵티머스'와 '라임' 사모펀드 사건은 도리어 검찰 게이트로 비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온건한 여당 지지자들에게도 공수처의 필요성만 각인시켰다. 

윤미향 의원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집요하게 큰 소리로 비판할수록 보수 야당에 대한 중도층의 지지도는 더 떨어지고 기존의 품격 있는 보수층도 등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 

보수 세력의 작전 프레임과 거친 언어는 품위 있고 격조 있는 기존의 언어를 깨트리고 있다. 이러한 언어의 실격이 단순한 해프닝인가? 물론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당선으로 인해 가짜뉴스와 극우적인 언어가 세계적으로 확산한 탓도 있다. 트럼프 성공 모델을 따라 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우리나라 보수도 진정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해법으로 극우 기독교 집단과 결합하고 '일베' 언어를 차용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자신도 최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재선된다면 더 신사적이고 친절한 사람이 되겠다고 공언했다. 그가 말하기를, "내가 처음 백악관에 왔을 때 너무나도 할 일이 많았다. 정치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올바른 사람이 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극우적인 실격된 언어의 상징인 트럼프마저 반성을 보이는 상황에서 보수 야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가 되고 싶은 윤석열 검찰총장과 차기 서울 시장 후보가 되고 싶은 나경원 전 의원의 실격된 언어는 어떤 운명을 맞이할 것인가? 다시 본인 자신과 자신을 지지하는 보수 세력에게 절망을 안길 것이라고 예측해본다.

물론 둘 다 야당 후보 경쟁에서도 밀릴 것이다. 아직 윤 총장의 부인과 장모의 의혹 사건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다. 나경원 전 의원의 경우, 수사와 언론을 통해 그 의혹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경원 전 의원을 끈질기게 고발하고 비판한 대표적인 인물로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과 황희두 민주연구원 공동이사가 있다. 그런데 둘 다 나 전 의원으로부터 고발당했지만 무혐의로 종결되어 나 전 의원 측이 더욱 곤란해졌다. 

언제라도 윤석열과 나경원 두 사람 모두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폭탄 뇌관을 안고 있다. 

한마디로 윤석열과 나경원이 조국에게 걸었던 프레임이 다시 그들에게로 부메랑처럼 날아들 수 있다는 말이다. 언어의 실격은 기본이고 앞으로 감찰과 수사로 밝혀질 비리 의혹은 덤인가?

태그:#윤석열, #나경원, #일베 언어, #조폭 언어, #보수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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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연구자로서 정치존재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장자와 푸코를, 지젝과 원효, 바디우와 나가르주나, 헤겔과 의상 등 동서양 정치존재론의 트랜스크리틱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전 상지대 교양대학 교수로 학생들에게 인문학과 철학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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