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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적정한 기후환경에서만 살 수 있다. 기후조건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변하면 지금의 기후조건에서 번창한 모든 생명체는 멸종을 피할 수 없다. 기후변화를 모르면 그 변화를 조절할 힘(기술)도 가질 수 없다. 제대로 모르는 자연을 다 안다고 착각하는 데서 비극이 싹튼다. 이미 시작된 기후변화에 우리는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을까? 그럴 시간이 남아있기나 한 것일까? 기후변화가 브레이크 없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어떤 기후재난을 겪게 될까? '김해동의 투모로우'에서 이런 문제를 다뤄본다.[기자말]
 
유엔세계식량계획(WFP)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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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노벨 평화상은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에 돌아갔다. 노벨위원회는 "세계식량계획은 기아와 식량안보를 책임지는 가장 큰 인도주의 기관"이라며 "코로나19 백신이 나오기 전 혼란에 대응하는 최고의 백신은 식량"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WFP는 식량 원조를 통해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유엔의 산하기구로 1961년 유엔 총회와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결의로 설립되어 1963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노벨위원회는 재난 시기에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식량이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식량을 전달하는 일이 세계 평화를 만드는 최고의 행동이라고 판단한 셈이다. 기후변화는 갈수록 인류에게 더 큰 기후재난을 안기게 될 텐데 그로 인한 가장 큰 위협은 식량불안정 유발이다. 이런 배경에서 기후변화와 이상기후 그리고 식량안보 문제를 생각해 보자.

치명적인 위협

오랜 기간에 걸쳐 지구에 축적된 화석 연료를 연소해 대량의 기계 에너지를 얻는 기술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됐다. 산업혁명 출발 당시에 3억에도 채 미치지 못하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오늘날에는 80억 명에 육박하고 있다. 인구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매년 8천 만 명씩 증가해 금세기 중반에는 100억 명을 훌쩍 넘길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러한 인구 증가 전망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여러 요소들, 그 중에서도 물, 에너지, 식량의 3대 요소가 안정적으로 공급될 경우를 가정한 경우에 유효하다. 그렇지 못하면 인류는 오히려 기근으로 빠른 인구 감소 과정을 겪을 수 있다.

가까운 장래에 이 3대 요소가 모두 불안정한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우려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아비규환의 고통 속에 인류는 산업혁명 이전의 수준으로 축소되어 갈지도 모른다. 가이아 이론의 제창자인 러브록(Lovelock)은 2006년에 출간한 그의 저서 <가이아의 복수>에서 세계 인구를 크게 줄여 5억 명 정도로 안정화 해야 지구 환경이 지속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는데, 어쩌면 이것이 현실화할지도 모른다.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 중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고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가 식량 부족이다. 최근 더욱 증폭되는 이상기후 현상이 언제 전 지구적 대흉작을 만들어낼지 모른다. 이미 강대국들은 1990년대 초에 이상기후에 따른 대흉작을 겪으면서 이 문제에 대비해 오고 있다.

이상저온이 일으킨 충격

대표적으로 1993년 대규모 이상기후 현상에 따라 발생한 재해를 들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때의 피해 규모를 들어 'Billion Dollars Disaster(수십억 달러 재해)'라고 부른다.

이 해에 미국에서는 봄에 이상 저온으로 곳곳에 60~120cm에 이르는 폭설이 내렸다. 또 역사적인 저기압이라고 이름 붙은 강한 저기압이 미국 동부 해안에 강력한 토네이도와 기록적인 강풍을 가져왔다. 당시 사망자가 270명, 추산한 재산 피해 금액은 50~60억 달러에 달했다.

여름에는 장기간 내린 비로 미국 중부와 중서부에 홍수가 발생해 사망자 48명, 재산피해 약 210억 달러가 발생했다. 이들 지역과 대조적으로 남동부 지역에서는 폭염과 가뭄으로 사망자가 16명 나오고 농작물 피해가 10억 달러 내외에 이르렀다. 또 가을에는 사우스 캘리포니아에서 건조 현상과 강풍이 이어져 대형 산불이 일어났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이 해의 이상기후는 북반구 곳곳에서 기승을 부려 피해가 막대했다. 여름철에 동아시아에서는 냉해, 유럽과 미국에서는 고온과 가뭄이 기승을 부렸다. 특히 여름 냉해로 동아시아가 대흉작을 겪은 것은 인류에게 큰 충격이었다.  1980년대 후반 LA를 포함한 미국 중서부 지역을 강타한 폭염을 계기로 지구온난화가 알려진 상태에서 기온이 낮은 여름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라고 하면 기온의 급격한 상승으로 만년설이 녹아서 해수위가 올라가 해안 저지대가 침수된다든가, 고온화로 자연 생태계와 인간 활동이 위협받게 되는 현상을 떠올리는데, 엉뚱하게도 여름철에 과거에 없던 냉해 피해가 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1993년의 냉해는 지구온난화 현상이 기온과 해수 온도의 상승만이 아니라 과거에 없던 이상기상 현상을 유발해 인간 활동에 큰 위협이 된다는 새로운 사실을 일깨워준 사건이었다. 구체적으로 이 해에는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가 흉작으로 식량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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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후와 흉작

이를 계기로 지구온난화 대책 중에서 식량 자급률을 올리는 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전 세계에서 인구 5천만 명을 넘는 국가 중에서 식량자급률(공급열량 종합식량 자급률)이 50%를 밑도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두 나라 모두 식량자급률이 25% 내외에 머물고 있다). 공산품 제조에 탁월한 한국과 일본은 부족한 식량은 수입하면 된다는 생각에 젖어 있었다. 세계적으로 별다른 흉작이 없다면 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식량을 수입해와야 할 상대 국가가 이상기상 현상으로 흉작을 겪게 되면 식량을 구매할 수 없게 된다(우리나라는 여전히 이 교훈에 둔감하다).

1993년 냉해로 인한 대흉작 시기에 일본에서 제기된 인상 깊었던 논점은 식량 수급(식량 안보) 문제를 자국의 작황에 한정되어 볼 것이 아니라 곡물 수출국 및 주요 식량 수입국들의 사정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시각이었다. 그러한 관점에서 일본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생산 변동성 연구' 과제를 총 9년에 걸쳐서 수행했다.

이 연구의 초기 3년 동안(1996-1999) 동아시아에 냉해를 일으킨 이상기상 현상 발생 과정을 연구하는 기상학적 접근과 냉해의 유형과 규모에 따른 농산물 피해를 연구하는 농업 부문의 연구가 이뤄졌다(필자도 연구자로 참여했다). 나머지 6년 동안에는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주요 농업 국가들에 일본의 선진 농업기술을 전수하고 해외에 농업기지를 확보해 진출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다.

2007년에는 미국에서도 여름철 이상저온으로 인한 식량생산 문제가 대두됐다(1993년에 미국은 고온과 가뭄으로 흉작이었다). 미국에서는 2007년을 '여름이 없던 해'라고 부르는데 이상저온의 규모가 1993년의 동아시아보다 더 심각했다. 2007년의 대흉작을 계기로 미국은 식량 생산과 전 세계 식량공급 전략을 재정비하게 된다.

식량 수출국의 흉작에 따른 곡물 무역시장의 불안정 문제는 최근에 올수록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2008년 호주, 러시아, 미국이 가뭄으로 큰 흉작을 입어 세계 곡물 시장이 요동을 쳤다. 그 여파로 식량 수입 부족을 겪은 필리핀과 아랍 국가 등에서 사회 혼란이 발생했고(시리아 내전도 이 여파로 발생했다고 본다) 우리나라도 유전자변형농산물(GMO) 농산물 수입의 빗장을 모두 풀 수밖에 없었다.

가장 최근인 올해도 호주, 러시아 등의 가뭄으로 인한 흉작과 코로나19에 따른 국제 교역 환경의 불안정을 우려한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식량 수출 금지 조치를 발동했다. FAO의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의 식량 비축량은 약 70일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전 세계 식량 생산량에 15∼20% 정도만 감산해도, 분배가 제대로 이뤄진다는 가정하에서도 식량 부족 사태가 일어나게 된다.

최근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침체를 타개하기 위한 대책으로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는 한국형 뉴딜을 입안하면서 그 안에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그린뉴딜을 넣었다. 하지만 그린뉴딜 안에서도 농업 문제를 등한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그런 비판은 정당하다. 이를 가볍게 여기는 정부는 기후변화가 가까운 장래에 가져올 진정한 위협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김해동 기자는 계명대학교 지구환경학과 교수입니다.


태그:#기후변화, #이상기후, #냉해, #가뭄, #기후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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