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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행위로 인하여 생기는 손해 가운데 정신적 고통이나 피해에 대한 배상금.'

위자료(慰藉料)에 대한 사전적 정의다. 민법은 제751조에 '재산 이외의 손해의 배상'이라는 제목으로 신체, 자유 또는 명예를 해하거나 기타 정신상 고통을 가한 자는 재산 이외에 손해에 대하여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위자료 청구의 근거를 두고 있으나 그 위자료 산정의 기준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법원에서 인정하는 위자료액수의 적정성에 대해 논란이 있을 때가 종종 있다. 지난 21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는 공익신고자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입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제1심 판결이 선고되었는데, 인정된 위자료 액수는 피해자가 청구한 금액의 1/10에 불과한 500만 원이었다. 5월 27일 변론종결된 이 사건의 판결선고기일은 원래 7월 15일이었는데 두 차례나 선고기일을 연기하여 내린 결정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참고인 조사 후 받은 불이익
 
성남지원 2019가단217413 판결문 중 일부
 성남지원 2019가단217413 판결문 중 일부
ⓒ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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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 A씨는 2014년 3월부터 장애인 거주시실 및 직업재활시설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에 입사하여 2017년 10월까지 특별한 문제 없이 근무를 하였는데, 같은 해 11월경 국가인권위원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조사받은 이후부터 사회복지법인은 A씨를 '인권위 제보자'로 의심해 각종 불이익을 주기 시작했다.

법인이 생산하는 커피 품질에 문제가 발생하자, 함께 일한 직원들은 제외하고 커피 생산 근로장애인을 보조하는 A씨에게만 시말서를 내게 했다. 또 커피 생산 업무를 맡았던 A씨를 스테이플러 작업장으로 배치해, 스테이플러 심을 2개씩 겹쳐서 상자에 넣는 단순 업무만을 하도록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사회복지법인은 A씨에게 "복무규정 위반, 인사관리 규정 위반"을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출석하도록 했고, 출석통지서에는 "시설의 부당 대우를 받는다고 인권위에 전달한 적이 있고,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임에도 외부기관(인권위)에 전달해 기관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명시했다. 
 
사회복지법인 인사위원회 출석통지서 중 일부
 사회복지법인 인사위원회 출석통지서 중 일부
ⓒ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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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장애인인권센터 등 여러 시민단체가 징계 절차를 중단하라고 지적하자, 사회복지법인은 인권위 관련 내용은 빼고 근무 태도 등을 문제 삼아 출석통지서를 재차 발송했다.

결국 국가인권위원회가 사회복지법인에 A씨에 대한 신분이나 처우와 관련한 불이익조치를 중지할 것을 권고하는 긴급구제결정(18긴급400)을 내린 뒤에야 징계절차는 중단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 긴급구제결정문
 국가인권위원회 긴급구제결정문
ⓒ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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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신고자 불이익 후 가해자처벌과 손해배상은?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의해 중단된 건 인사위원회 절차뿐, A씨에 대한 사회복지법인의 불이익은 계속되었고 결국 A씨는 2018년 4월 사직을 한 후 공익신고자보호법위반으로 사회복지법인과 불이익에 가담한 가해자들을 고발했다.

이후 공익신고자보호법위반으로 수사는 진행되었지만,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은 사회복지사 A씨가 받은 여러 불이익 중 "A씨의 의사에 반해 비선호 부서인 스테이플러 작업장으로 배치했다'는 부분만을 공익신고자보호법위반으로만 기소했다. 또한 불이익을 준 직원들이 공모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강한 의심이 들긴 하나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강한 의심을 든다는 사정만으로 공모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쉼터 원장과 사회복지법인만 기소했다.

2018년 12월 검찰이 벌금 200만 원으로 약식기소한 사건에 대해 사회복지법인은 무죄를 주장하였고, 2019년 10월이 되어서야 벌금 200만 원은 확정되었다.
 
형사사건 진행상황
 형사사건 진행상황
ⓒ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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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 A씨는 이 사건 발생 당시의 충격으로 인해 수년간 일해 온 사회복지사의 일을 그만두고 택배 일을 통해 생계를 이어나가는 등 회복될 수 없는 피해를 입었기에 2019년 7월 위자료 5천만 원의 지급을 구하는 손해배상소송을 시작했다. 

함께 일한 동료들를 증인으로 신청하면서까지 그 당시 사회복지법인으로부터 받은 불이익과 그로 인해 받은 정신적 충격을 입증하려고 노력했지만, 법원은 아래와 같은 이유를 들어 사회복지사 A씨가 청구한 위자료 5천만 원의 1/10인 500만 원만 인정했다.
"나아가 그 위자료 액수에 관하여 살피건대, 원고가 스테이플러 작업장에 배차된 기간, 원고에 대한 인사위원회 개최가 비록 이루어지지는 않았고, 이를 공익신고자 보호법에서 금지한 불이익조치나 원고에 대한 불법행위라고는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하여 원고가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신청을 하는 등의 고충을 겪은 점, 그 밖에 공익신고자보호법 제29조의 2 제2항이 정하는 법원이 배상액을 정함에 있어 고려하는 사정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모든 사정을 참작하여 그 액수를 5백만 원을 정한다. " -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2020. 10. 21. 선고 2019가단 217413사건 판결문 해당부분
 

공익신고자 불이익, 막을 수 있을까?

공익신고자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내부의 문제를 드러내는 사람이다. 영어로 휘슬 블로어(Whistle blower), '휘슬'은 호루라기, '블로어'는 부는 사람, 즉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을 뜻한다. 공익신고자는 내부의 문제를 숨기려는 사람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여겨져 고초를 당하기도 한다. 사회복지사 A씨처럼 말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은 이후 사회복지법인으로부터 받은 불이익으로 인해 A씨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개입이 있었지만 그 불이익을 막아내지 못했다. 법과 제도가 없어서일까? 공익신고자보호법이라는 법과 제도가 있음에도 그러했다는 것이 더 마음을 무겁게 한다.

회사를 떠나게 한 사회복지법인이 그 대가로 지불한 금액은 단돈 700만 원, 벌금 200만 원에 위자료 500만 원이다. 단돈 700만 원의 대가만 치르면 되는 공익신고자 불이익, 과연 이 정도의 대가만으로 공익신고자 불이익을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든다.  

2017년 11월로 다시 돌아가 보자. 

사회복지사 A씨에게 참고인으로 조사받으러 와 달라는 국가인권위원회는 그날 이후 A씨에게 가해질 불이익조치 후 사회복지법인이 치러야 할 대가는 700만 원에 불과하다는 사실, 현행법과 제도로는 당신을 보호해 줄 수 없다는 현실을 제대로 고지했을까? 

"우리는 공익신고를 고민하는 시민들에게 현행법과 제도로 당신을 보호받을 수 있으니 용기를 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로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에 따라 대한변호사협회 법률구조제단 법률구조사업을 통해 2018년 2월부터 사회복지사 A씨의 법률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태그:#공익신고자보호, #손해배상 위자료, #공익신고 후 불이익조치, #최정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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