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이런 생각을 안했는데, 코로나가 겹치면서 '내가 언제까지 이걸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뭐 수입이 없는 거야 늘 그래왔기 때문에 어떻게든 채워 넣으면 되는 거고, 내가 잘 아끼면 되는 거고. 그런 것들은 되게 익숙해졌는데. 이거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그런 불안감들이 제일 요즘 힘든 상황인 것 같아요."

코로나19로 인해 예술인들의 삶은 더욱 위태로워졌다. 시각예술, 연극, 무용, 클래식 및 전통 공연 등 전시 및 공연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문학, 독립영화, 대중문화 등 전 영역의 피해가 극심하다. 지난 7일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제출받은 '코로나19 관련 문화예술 분야 피해 추정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예술인들이 받은 고용피해는 1260억 원에 달했다.

불안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울 은평구의 예술인들을 만나 재난 전과 후 삶을 물었다. 첫 번째 인터뷰,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내는 삶 가운데 잠시 멈춰 서서 나, 그리고 사람들에게 노래로 안부를 묻는 싱어송라이터 '레이린'을 만난다. 
 
 은평으로 이사와 산책하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싱어송라이터 레이린 (사진제공 : 레이린)

은평으로 이사와 산책하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싱어송라이터 레이린 (사진제공 : 레이린) ⓒ 은평시민신문


- 2015년 미니앨범 <시점, 첫 번째> 발매를 시작으로 다양한 형태의 음악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레이린의 음악세계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제 음악은 사실 저의 이야기에서 출발을 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음악이었어요. 처음에는 제 개인적인 이야기나 어떤 것에서 영감을 받은 이야기들을 음악으로 풀었는데 요즘에는 조금 더 넓게 세계를 확장하고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안녕을 물어보는 작업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레이린의 뮤직비디오나 영상들에는 유난히 걷는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는 것 같아요. 어떤 여정에 관한 작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엉망 뮤직비디오 같은 경우는 영상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한 거라(웃음). 그렇게 듣고 보니 연관성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걷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걸으면서 해결되지 않던 고민들이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거든요. 예를 들면 가사의 어떤 부분이 책상에 앉아있을 때는 마무리가 안됐는데,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다거나 하면서 공간이 주는 느낌과 더불어 완성이 된다던가. 그리고 나의 삶이 불안하다고 느끼니까 계속 어디론가 가야될 것만 같다는 것도 있었던 것 같고."

- 그 여정이 이제 은평에 닿았네요. 은평에 오신지 2년이 넘었다고 들었어요. 지난해, 은평문화재단의 청년예술단으로 활동하며 지역 예술인들과 함께 '걷다가 마주하면' 전시를 함께하시기도 하셨는데 어떠셨어요?
"지난해 전시에서 만든 음악이 그 전의 기존 작업과 조금 다르게 나왔어요. 사실 그 전에는 풍경들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아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호기심도 생기지 않았고. 다들 바쁘게 살잖아요. 약속시간에 늦으면 안 되고, 핸드폰 보고 있고. 그런데 이상하게 은평구를 왔는데 이곳은 산책하기가 너무 좋고 걷는 재미가 있는 동네라서 세세하게 보기 시작한 것 같아요.

길에 놓여있는 의자는 왜 저기 있는 걸까. 비어있기도 하고 누군가 앉아있기도 한데 그게 이상하게 골목마다 하나씩 다 있고, 심지어 버리는 것 같아도 가져가지 말라고 적혀있기도 했어요. 길거리 풍경들을 내가 보는 재미가 생기게 된 동네라서 그런지, 원래는 내면의 것들로 작업을 하다 바깥에서 발견한 것으로 작업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싱어송 라이터 레이린 (사진제공 : 레이린)

싱어송 라이터 레이린 (사진제공 : 레이린) ⓒ 은평시민신문


- 해당 전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가 닥쳤습니다. 코로나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일단 공연이 많이 취소가 됐어요. 연기가 된 것도 있지만, 연기된 것들도 취소가 될 것 같아요. 그야말로 힘든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 같은 경우는 대면 예술을 많이 하다보니까 사람들과 만났을 때 눈앞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거든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을 때. 지금의 날씨와 모든 상황. 들려오는 소리들. 이것들이 마음속으로 탁 치고 들어오는 순간이 있는데, 요즘은 보통 영상을 통한 비대면 공연을 하다보니까 이제 그런 것들을 못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닌가, 너무 서운하고. 

작년까지만 해도 이런 생각을 안했는데, 코로나가 겹치면서 '내가 언제까지 이걸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뭐 수입이 없는 거야 늘 그래왔기 때문에 어떻게든 채워 넣으면 되고, 내가 잘 아끼면 되고, 그런 것들은 익숙해졌는데. 이거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그런 불안감들이 요즘 제일 힘든 상황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스스로 작업의 방향성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어요."
 
 싱어송라이터 레이린 (사진제공 : 레이린)

싱어송라이터 레이린 (사진제공 : 레이린) ⓒ 은평시민신문


- 그 확장의 일환으로 독특한 공연이나 브이로그도 시도를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여름에 연습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공연이 있었어요. 코로나 19로 일거리를 잃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연습을 이어가는 예술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습중"이라는 프로젝트인데, 처음에 듣고 정말 신선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많은 예술가들이 한 작품을 위해서 굉장히 공을 들이고 노력을 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너는 네가 좋아하는 것 하잖아? 약간 놀면서, 즐기면서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런데 연습하는 과정을 보면 정말 반복적인 노동이잖아요. 틀린 부분이 있으면 계속 맞을 때까지 연습하고, 춤도, 공연도, 모든 것이 그럴 것인데. 그 과정을 시민들에게 보여준다는 것이 좋았던 것 같아요. 

브이로그 같은 경우에는 지금 공연으로 관객을 만날 수 있거나 대화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어떻게든 조금 더 소통을 하고 싶었어요. 공연장에서도 계속 음악만 들려주는 건 아니잖아요. 말도 걸고, 몸짓도 있을 것이고. 소통의 방식으로 브이로그를 택해봤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고요. 누군가 보고 댓글을 달아주시면 저도 그게 기쁨이 되고, 다음에는 어떤 것을 또 해볼까 힘이 나기도 해요. 저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 자체는 재미있는 것 같아요."

- 이 지역의 예술인들이 계속 생존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노력뿐 아니라 또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요? 
"일단 은평구에는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전시나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 말고 작업실이나 합주실도 찾기가 힘들어요. 그래도 공간이 있으면 살롱처럼, 이런 예술가도 만나고 저런 예술가도 만날 수 있고 교류할 수 있는데 그럴 수 없어서 조금 아쉽다?

그리고 저도 그렇고 예술가들과 만나는 지역의 주민들이나, 지원을 하는 문화 기획 단체가 지역이라는 틀에서 자유로웠으면 좋겠어요. 저도 은평구의 지원을 받아 지역의 예술가로 작업을 할 때는 알쏭달쏭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이 지역에 사니까 이 지역에 관한 이야기만 해야지'에 갇히면 안 되는데, 아무래도 그렇게 되기 쉬운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지역의 이야기는 타 지역의 이야기도 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예술가나 기획자, 보는 분들 모두 자유로운 시각을 가지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

- 예술가들은 왜 자신의 일을 지켜야하는지, 예술의 의미를 고민을 하게 되는 시대인 것 같아요.
"한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공연을 보러가지는 않는다.' 코로나 같은 감염병이 돌고 기후도 이상한데 사람들이 생존하기 위해서 밥을 먹고, 병원을 가고, 자기한테 필요한 걸 사지 노래를 들으러 가지는 않을 거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생각해봐도 수긍이 가는 말이었어요.

이 시대, 정말 어려운 시기에 예술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결국, 그렇다고 해서 예술가들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멈춰버리게 되면 더 무서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그래도 저는 예술이 가진 힘을, 예술로 인해 사람들이 갖는 영향을 믿거든요. 그래서, 어렵지만 어떻게든 이야기를 전해야하지 않을까."

- 레이린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순간순간마다 다르긴 한데, 점점 '나'만을 바라보고 살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주위를 둘러볼 수 없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러면서 발생되는 사건 사고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스쳐지나가지 말고 같이 고민을 좀 해보고, 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고,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을지에 대한 생각들을 같이 하고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시기에는 다들 건강하셨으면 좋겠고, 몸과 마음이 둘 다 건강해서 '오늘도 안녕하구나'라는 걸 느끼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레이린 은평 예술가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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