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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 병원행이 곧 입원이 됐다. 병가를 신청했더니 동료 교사들 모두가 놀라는 눈치다. 지난 23년 동안 단 한 번도 병가를 사용해본 적이 없던 터다. 여하튼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주변 사람들에게 올해 병원 한 번 가지 않았다고 으스댔는데 꼴이 말이 아니게 됐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수면 장애. 진단서에 적힌 병명이다. 밤에 잠을 못 이룬 건 두어 달쯤 됐다. 주변에선 나이가 50줄에 접어들면 남자도 갱년기를 겪는다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고, 나 역시 며칠 부대끼다 말겠지 싶어 그럭저럭 참고 지냈다.

숙면에 좋다는 라벤더 차나 캐모마일 차를 밤마다 마셨다. 허브 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지금껏 입에 대지 않았는데, 약이라고 여기며 끼니 챙기듯 했다. 잠자리에 들 때는 차분한 명상 음악을 틀었고, 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은 멀찍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었다.

그 좋아하던 커피도 거의 끊었다. 평소 하루에 7~8잔은 기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스스한 얼굴로 더듬더듬 맨 먼저 찾는 게 커피콩과 그라인더였다. 아침 식사를 건너뛸지언정 커피를 거르고 출근한 적은 없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하루가 시작되지 않았다.

커피와 함께 '영혼의 음료'였던 맥주도 끊다시피 했다. 저녁 식사 후 송골송골 물방울 맺힌 황금빛 맥주잔을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쌓인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지금 수면을 방해하는 거라면, 그보다 더한 거라도 매몰차게 대할 준비가 돼 있다.

잠시 수면 리듬이 깨진 줄 알았는데
 
 밤에 잠을 못 이룬 건 두어 달쯤 됐다.
 밤에 잠을 못 이룬 건 두어 달쯤 됐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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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잘 아는 의사 역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잠시 수면 리듬이 깨진 것 같다며 며칠 분의 수면 유도제를 처방했다. 그는 환절기마다 내게 알레르기 비염약을 처방해주는 주치의 같은 분이다. 다른 일로는 거의 병원을 찾지 않아선지, 그는 내 건강을 나보다 더 자신하는 눈치다.

하품조차 나오지 않는 늦은 밤, 약을 먹으면 잠은 들었다. 그런데, 아침에 깨면 개운하기는커녕 잠을 잔 것 같지 않았다. 약을 먹고 자나, 예전처럼 잠을 설치나, 아침의 찌뿌드드한 느낌은 비슷했다. 도리어 종일 몽롱하고 무기력한 느낌은 약을 먹은 뒷날이 더 심했다.

혹시나 해서 더 큰 병원을 찾았다. 진단도 병명도 똑같았다. 다른 게 있다면, 처방된 약의 양이 훨씬 더 많아졌다는 것뿐이었다. 저녁 시간대별로 약이 달랐고, 잠자리에 눕기 전에 먹어야 할 약 봉투에는 어김없이 똑같은 수면 유도제가 들어있었다.

의사의 지시대로 분 단위까지 정확히 맞춰가며 약을 먹었으나, 아침의 느낌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밤이 깊어질수록 정신이 맑아졌고, 해가 중천에 뜰수록 나른해지고 무기력해졌다. 의사도, 약사도, 약 기운이 남아 그런 거라며 곧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상이 멀쩡할 리 없었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전혀 집중이 안 됐다. 예전 같으면 업무 추진이 더딜 때 해결의 실마리가 샘 솟듯 튀어나오곤 했는데, 일 자체가 귀찮아졌다. 한번은 꾸벅꾸벅 졸다가 수업 시작종을 놓친 적도 있다. 예전엔 전혀 없던 일이다.

얼마 동안 약을 더 먹어야 수면 리듬을 찾을 수 있을까. 덜컥 겁이 났다. 여기저기서 수면 유도제의 심각한 부작용을 익히 들어온 터다. 의사가 그걸 간과할 리 없지만, 약에 의존해 일상을 회복한다는 게 나약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당장 남들 앞에서 말 꺼내기조차 민망했다.

무엇보다 처방전에 적힌 우울증 치료제라는 글자가 눈에 박혔다. 스트레스가 우울을 야기했다는 뜻일까, 아니면 스트레스가 곧 우울증이라는 이야기일까. 그도 아니라면, 대개 병의 원인이 불분명하면 무조건 스트레스 탓이라고 말하는 의사의 관행적인 진단일까.

환자가 자신의 병을 단정할 순 없는 노릇이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우울하다는 느낌을 경험하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우울해 보인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수면 장애로 인한 후천적인 질병이라면 모를까, 우울증이 원인이라는 진단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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