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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젠장! 눈을 떠보니 새벽 3시 반이다. 지난밤 어쩐지 쉽게 잠이 드나 싶었다. 미처 11시를 확인하지 못하고 잠들었으니, 6시쯤 일어났다면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몇 시가 됐든 일단 새벽에 눈을 뜨면 그걸로 잠은 끝이다. 지난 두 달 남짓 그랬다.

자면서 꼭 한 번은 깬다. 방광이 민감한 탓인지는 몰라도, 꽤 오래된 습관이다. 다만,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화장실을 다녀오면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잠들었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나 싶다. 요즘 들어 저녁 식사 후 웬만하면 물을 마시지 않는 이유다.

다시 눈을 감고 양을 수백 마리 세워봐야 틀렸다는 걸 알고 있다. 괜히 뒤척이면 같은 병실 환자분들에게 폐만 끼칠 뿐이다. 일단 실내화 끄는 소리 나지 않게 조용히 문을 열고 방을 나가야 한다. 그나마 복도의 등이 환해 스마트폰을 켜거나 방 스위치를 올릴 필요는 없다.

불 켜진 휴게실에 가자면 간호사실을 지나야 한다. 낮에는 네 분이 분주히 일하는 공간인데, 그 시간 근무자는 앳된 간호사 한 분뿐이다. 눈이 아직 초롱초롱한 걸 보면, 아마 밤을 꼬박 샌 듯하다. 꼭두새벽에 서로 나누는 눈인사가 어색하기만 하다.

무슨 일이냐며 안부를 물을 법도 하지만, 그는 내 병명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무덤덤하다. 그 시간 책을 옆구리에 끼고 휴게실에 가는 부스스한 내 모습이 스스로 멋쩍다. 정수기의 냉수 한 잔에 정신이 맑아지는 걸 보니, 오늘 낮이 두렵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다.

간호사의 근무 교대 시간이 다시 병실로 돌아갈 때다. 3시간 남짓 맑은 정신에 집중했더니 200여 쪽짜리 수필집 한 권을 금세 다 읽었다. 입원 치료 중에는 웬만하면 가벼운 운동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데, 그게 말처럼 쉽진 않다. 그럼 낮에 졸게 된다.

수면장애 환자의 입원 풍경
 
점심 뒤 오후 치료를 마치면 얼추 3시쯤 된다. 졸음과의 본격적인 전쟁을 치러야 하는 때다. 수면 장애 환자에게 낮잠은 치명타다.
 점심 뒤 오후 치료를 마치면 얼추 3시쯤 된다. 졸음과의 본격적인 전쟁을 치러야 하는 때다. 수면 장애 환자에게 낮잠은 치명타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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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입원을 준비하며 몇 권의 책을 샀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수필집 몇 권과 그동안 짬이 나지 않아 미뤄뒀던 두툼한 책 몇 권을 챙겼다. 스트레스로 인한 수면 장애에는 '무념무상'이 가장 좋은 치료법이라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다행히 책을 읽지 말라는 주문은 없었다. TV와 노트북, 스마트폰은 각성 효과가 있어, 특히 저녁 식사 후에는 사용하지 말도록 했다. 커피도 오전 10시 이전에 한 잔만 허용되는데, 의사는 처방한 약보다 일상생활 속 습관의 변화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책 읽기가 새벽녘에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낮엔 그러잖아도 쏟아지는 졸음을 견디기 힘든 탓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책이라도 10분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정상적인 수면 리듬을 되찾기 전까지 아무래도 낮에 책을 읽는다는 건 지나친 욕심일성싶다.

오전 8시. 아침 식사를 마치면 오전 담당 의사의 회진 시간이다. 질문은 단 한 가지다. 지난밤 몇 시쯤 잠들었는지, 또 오늘 아침은 몇 시에 일어났는지. 그 시간을 꼼꼼하게 체크하는 건, 지금껏 스스로 두어 달 동안 꾸준히 해왔던 일이라 새삼스럽지 않다.

다행히도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분들은 나보다 일찍 자고 늦게 깬다. 내가 폐를 끼치면 끼쳤지, 그분들로 인해 방해되는 건 없다는 이야기다. 허리에 갑옷 같은 복대를 찬 분, 팔과 다리에 깁스를 한 분과 나란히 걸터앉아있으면, 너무 멀쩡한 모습이라 민망할 때가 있다.

9시경 오전 치료를 받는다. 침을 맞고 부항을 뜬 뒤, 레이저 치료까지 받으면 얼추 한 시간이 걸린다. 점심 식사 후 2시경에 받는 오후 치료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침과 뜸, 부항의 위치가 차이가 난다. 오후에는 마사지도 있는데, 졸음을 참지 않으면 이내 곯아떨어질 것만 같다.

다른 환자들과는 달리 정수리와 목 부근에 집중적으로 침이 꽂힌다. 누군가 머리를 긁어주는 듯한 자극이 온다. 의심병이 도져선지, 침과 부항 등이 수면 장애 치료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궁금했다. 근육의 긴장을 이완시키고 혈액 순환을 도와 숙면에 도움을 준다는 설명이다.

질문이 많은 환자가 귀찮을 법도 하건만, 담당 의사는 일일이 답변을 해줄 만큼 자상하다. 병원에서 좋은 의사 만나는 것도 복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젊은 전공의인데 알면 안다, 모르면 확인 후 알려주겠다는 식의 솔직한 태도에 더 신뢰가 간다.

굳이 집 가까운 병원을 놔두고 타지의 한방 병원을 찾은 건 순전히 약 먹는 게 싫어서다. 수면제의 도움 없이 이겨내고 싶어서다. 한약과 양약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지만, 수면제라는 세 글자가 주는 공포가 내 안에 DNA처럼 각인돼 있다.

10시쯤부터 점심 때까지가 사실상 노트북을 켤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휴게실에서 와이파이를 켠 뒤 주요 기사를 검색하거나 메일을 확인한다. 글도 이때가 아니면 쓸 짬이 마땅찮다. 아직은 졸음을 견딜 만한 오전이라 책을 읽을 수도 있는, 말 그대로 금쪽같은 시간이다.

병원에서 아침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12시 정각, 점심이 각 병실로 배달된다. 쌀밥과 멀건 국, 꼬맹이들 소꿉놀이 같은 그릇에 담긴 심심한 반찬이 전부지만, 환자분들은 모두 입원 중에 살이 올랐다며 한마디씩 하신다. 식사의 질보다 제때 먹는 게 더 중요함을 알겠다.

점심 뒤 오후 치료를 마치면 얼추 3시쯤 된다. 졸음과의 본격적인 전쟁을 치러야 하는 때다. 수면 장애 환자에게 낮잠은 치명타다. 점심께 30분쯤 잠깐 눈을 붙이는 건 상관없다는 한 의사의 말을 믿었다가 당일 밤을 지새운 적도 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 난 믿을 수 없다.

낮엔 반드시 땀이 날 정도로 운동을 해야 한다. 몸을 노곤하게 만들어야 밤에 쉽게 잠들 수 있다는 상식적인 이유에서다. 오전엔 여유가 없고, 너무 늦은 시간도 피해야 한다. 잠들기 직전의 지나친 운동은 숙면에 방해가 된다고 한다. 뭐든 과유불급이다.

실제로 겪어도 봤다. 자칭 경험자라는 분들이 몸을 녹초로 만들수록 쉽게 잠들 수 있다기에, 퇴근 후 집에서 담양까지 자전거로 왕복한 적이 여러 번이다. 얼추 40km 거리다. 씻고 난 뒤 시체처럼 쓰러져 잠든 때도 있지만, 오히려 정신이 말똥말똥해져 잠을 설친 적이 더 많다.

스트레스는 땀과 함께 배출된다는 그럴듯한 조언도 숱하게 들었다. 운동이 대표적인 스트레스 해소법이라는 건 맞지만, 수면 장애를 겪고 있는 이들에겐 걸러서 들어야 할 이야기다. 문제는 강도와 빈도다. 과격한 운동은 피하고 너무 지치지 않게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치료가 끝난 뒤 바로 운동을 시작할 순 없다. 침과 뜸 치료의 특성상 샤워는 두 시간이 지나서야 가능하다. 침을 꽂았던 자리가 아물기 전에 물기가 스며들면 몸에 해롭다고 한다. 물이 그럴진대, 운동하는 동안 흘리는 땀은 오죽할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오후 치료를 마친 뒤 대략 두 시간은 굳이 궁금하지도 않은 병원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산책을 한다. 말이 좋아 산책이지, '서서 조는' 시간이다. 1층 로비에서 건물 꼭대기에 마련된 정원까지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며 소일한다. 이때는 휴게실 의자에 앉는 것도 위험하다.

오후 5시. 짧고 굵게 운동하는 시간이다. 병실과 같은 층에 운동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설치된 기구라고 해봐야 자전거 타기와 크로스컨트리, 유압식 벤치프레스 정도가 고작이다. 종류는 적어도,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선지 엊그제 장만한 새것 같다.

자전거를 20분쯤 타면 땀이 기분 좋을 만큼 난다. 이어서 팔굽혀펴기와 쪼그려 앉았다 일어서는 스쾃을 각각 10분 정도 하면, 1회 용 마스크가 축축하게 젖는다. 운동을 마친 이때가 샤워 시간이다. 샤워를 마치고 새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면 몸이 날아갈 듯 가볍다.

오후 6시. 저녁 식사가 배달된다. 병원의 일상은 바깥보다 낮이 짧고 밤이 길다. 아침, 점심, 저녁 식사 시간만 봐도 알 수 있다. 오후 6시면 퇴근이 시작될 시간이지만, 이곳에서는 식사를 마치고 하루를 시나브로 마무리해야 할 때다. 병원의 공식적 취침 시간은 밤 10시다.

문제는 수면 리듬!

운동을 마치고 샤워도 했겠다, 배마저 부르니 솔솔 잠이 밀려오는 시간이다. 하루 중 이때를 조심해야 한다. 초저녁에 잠이 들면, 십중팔구 이른 새벽에 깨어 이후 밤을 지새우게 된다. 입원 직전 퇴근 후 오후 8시경 잠들었다 자정에 깨어 밤을 꼬박 새운 뒤 출근한 적이 몇 번 있다.

무엇보다 수면 리듬이 깨져 잠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게 더 큰 문제다. 사실 이것을 치료하는 게 입원을 결정한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다.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자더라도 제때 잠들고 제때 일어나는 것이, 들쭉날쭉 열 시간 자는 것보다 낫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은 터다.

저녁 시간에도 병실에 머물러있기가 힘든 이유다. 담당 의사는 수면 리듬을 되찾을 때까지는 10시 이전엔 잠자리에 들지 않도록 조언했다. 물론, 그 시간까지 TV도, 노트북도, 스마트폰도 켤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휴게실에서 책을 읽거나 복도를 어슬렁거리는 것뿐이다.

입원과 동시에 취침 전에 먹어야 할 가루약을 처방받았다. 수면제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 탓에, 성분과 효능에 대해 담당 의사를 찾아가 꼬치꼬치 캐물었다. 대추의 과육과 씨에서 추출한 신경 안정제라고 했다. 중독성이 전혀 없으니,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약을 먹으면 방금 샤워를 마친 것처럼 나른함이 밀려왔다. 그게 약 때문인지, 낮 동안의 눈물겨운 노력 덕분인지 알 수 없으나, 아무튼 그랬다. 밤 10시. 병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이제 잠드는 건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는데, 부디 새벽녘에 깨지 않길 바랄 뿐이다.

태그:#수면 장애, #스트레스 해소법, #수면 유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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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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