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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 정약용 초상화.
 다산 정약용 초상화.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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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귀양살이지만 옹근 18년을 살아온 강진은 비애와 함께 정이 깃든 곳이었다. 해배 소식을 듣고는 자신의 심장이 멈추는 듯한 기분이었지만, 시답잖은 권위의식을 벗고 학자의 본성으로 돌아가 제몫의 삶을 산 기간이었음을 돌이켰다.

황상ㆍ이청과 같은 제자를 가르치고 사윗감으로 윤창모를 골랐으며,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를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강진 유배가 아니었으면 그처럼 향기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염량세태의 시국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멈추지 않았던 외가쪽 윤씨 집안 사람들과 소박하고 인정 넘치는 주민들의 아쉬운 배웅을 받으며 8월 말에 다산초당을 떠나 귀향길에 올랐다.

귀향하는 도중에 충주 하담에 있는 부모의 산소를 찾았다. 1801년 장기로 귀양가는 길에 들렀다가 18년만의 참배였다. 만감이 서리는 심경으로 「어버이 무덤에 오르며」라는 제목의 시를 지었다.

어버이 무덤에 오르며

 나는 정기를 늦게 받아 태어났기에 
 아버지께선 내 막내아들이라 하셨어요
 순식간에 30년이 흘렀는데
 아버님 뜻을 기쁘게 해 드리지 못했어요 
 무덤 속이 비록 저세상이지만
 옛사람은 여묘(廬墓) 살며 모셨삽니다
 아직도 생각나요 신유년(1801)의 봄
 통곡하며 묘소를 하직했지요
 말도 먹일 겨를도 없이 떠나면서
 의금부의 관리에게 핍박당했어요
 귀양지에서 떠돌다 보니
 어느새 18년이나 흘렀답니다
 봉분 앞에 서 있는 한 쌍의 나무
 가지와 잎새가 예전처럼 푸르르군요
 사람의 생애가 너만도 못하여
 버림받는 게 어찌 그리도 쉬운지. (주석 1)

  
다산초당 정약용 선생이 유배하며 기거하시던 곳
▲ 다산초당 정약용 선생이 유배하며 기거하시던 곳
ⓒ 이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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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산소에 들러 성묘를 마치고 9월 14일 고향 마재로 돌아왔다. 1801년 2월 하옥되어 19일만에 출옥하고 장기현으로 귀양갔다가 그해 10월 '황사영사건'으로 다시 투옥되고, 11월에 강진으로 유배간 지 18년에서 두 달이 모자란 기간이었다. 자신도 어느새 쉰 일곱의 중늙은이로 변해 있었지만, 혼자서 막내아들의 장례를 치르고 폐족이 된 가문을 지키느라 아내 홍씨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귀향한 지 얼마 뒤에 반갑지 않은 인물이 안부를 물어왔다. 자신은 물론 남인세력의 앞길을 가로막았던 서용보가 하인을 집으로 보냈다. 동태를 살피러 보낸 것인지 인간으로서 차마 하지 못할 일을 저지른 데 대한 반성인지 의도를 알기 어려웠다.

이듬해(1819) 서용보는 영의정에 올라 출사하면서 다시 하인을 보내 안부를 전했다.

해배되어 마음이 더 추운 겨울을 보낸 뒤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일 즈음인 1819년 봄, 서용보가 영의정에 올라 서울 조정에 가면서 다시 하인을 보내 안부를 전했다. 아직 사면을 받지 않은 상태라 다산에게 안부를 전해 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서용보는 벌써 두 번이나 안부를 물어 오니 다산으로서도 이런 서용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산보다 다섯 살 위인 서용보는 1774년(영조 50) 불과 18세의 나이로 증관 문과에 급제했다. 다산과 다섯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벼슬로는 15년이나 선배인 셈이었다. 과히 천재란 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아직 완전히 사면되지도 않은 다산에게, 그것도 정승의 신분으로 두 번 씩이나 안부를 전했다는 것은 뭔가 다른 뜻이 있다는 걸 의미했다. (주석 2)


이즈음에 지은 「가는 세월」이란 시에서 착잡했던 심기의 일단이 보인다. "뉘우치고도 고치지 않으니"의 대목은 서용보의 행태를 꼬집는 듯 하다. 제3연이다.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이여
 저 흘러가는 물결 같다오
 온갖 풀은 오그라들어 감추고
 산속엔 눈 높이 쌓였네
 이 쇠약해진 몸 돌아보니
 햇볕이 이미 기울어진 것 같아라
 무성한 잡풀 제거하지 못하여
 자다가 깨어 탄식하고 노래하네
 백성이 뉘우치지 않는 것도
 도리어 또한 비난이 있거늘
 뉘우치고도 고치지 않으니
 이를 어찌하잖 말이냐. (주석 3)


주석
1> 『다산시선집』, 871쪽.
2> 차벽, 『다산의 후반생』, 266~267쪽, 돌베게, 2010.
3> 『다산시정선(하)』, 686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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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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