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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6일,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이들 중 63명이 성인지 감수성 향상 교육 등 각종 교육과 직무훈련을 받고 목포교도소와 대전교도소에서 36개월 동안 대체복무 업무를 수행합니다. 그동안 병역거부권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해 활동해온 전쟁없는세상의 활동가들과 병역거부자들이 대체복무제의 시작에 맞춰 병역거부 문제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는 것들과 대체복무제의 문제점과 개선점, 대체복무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기자말]
2011년 나는 항소를 하지 않고 서울서부지법에서 1심 확정 뒤 구속이 됐다. 최후진술을 열심히 준비해 갔는데 시계를 보면서 그냥 서면으로 제출하고 가라고 판사가 말했을 때 거기에 그냥 '네네' 하면서 최대한 공손하게 보이려 애쓰던 내 모습이 기억난다. 혹시나 1년 6월이 아니라 1년 8월을 선고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있었다.

'도주의 우려가 없다'며 법정구속은 면해줬던, 심리공판 때 후회하지 않겠냐고 내게 한 번 더 물어서 뒤에 앉아있던 엄마를 울렸던 그 판사가 쓴 판결문은 "징역 1년 6월에 처한다"는 단 한 문장으로 끝났다. 수감 시절, 출소가 가까워지며 설레던 마음과 동시에 한편으론 그 판사의 멱살을 쥐고 왜 1년 6월을 선고했는지 더 성의 있게 말해보라고 외치는 상상을 자주 했다. 

아직도 이름은 잊히지 않는 이 판사를 새삼 떠올리게 된 건 최근 '대체역 심사위원회(아래 심사위)' 방문 면담에서 나눈 이야기들 때문이다. 본격 시작될 심사 업무를 앞두고 전쟁없는세상에서 수감생활을 마친 병역거부자들을 모아 심사위를 방문한다고 하여 함께 갔다. 헌재 판결 이후 병역거부 재판에서 총 쏘기 게임 접속 기록을 조회하는 것처럼 '진짜 양심'을 가려내겠다며 모욕적인 질문들이 나온다고 들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대체역 신청자의 서류를 검토하고 심사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을지 궁금했다.
 
2010년 12월 14일 국방부 앞에서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을 하는 날맹
 2010년 12월 14일 국방부 앞에서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을 하는 날맹
ⓒ 전쟁없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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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입증책임을 묻는다는 것

'대체역'이란 말이 여전히 좀 낯설긴 하다. 헌재가 병역법 88조 1항에 대한 판단을 요청받았을 때 내가 기대했던 논의는 단지 해당 처벌 조항이 헌법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측면만은 아니었다. 군대를 거부하는 개인의 양심을 국가가 "정당한 사유"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 것인지를 설명하는 입증 책임이 저들에게 지워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입증을 위해서는 군대와 전쟁이 '자연'스러운 것인지, 민주사회에서 국가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논의를 비켜갈 수 없다. "남자라면 군대를 가야지"라는 말을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 근거를 들어 설명하는 수고를 바랐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헌재의 판단은 병역거부자가 선택할 수 있는 병역의 종류를 하나 더 만들라는 것이었고, 대체역을 수행할 자격이 있는지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심사하는 국가의 프로세스가 시작됐다. 마치 대학 입시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를 하나 더 준 뒤에 그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실력('양심')을 가졌는지는 네가 증명하라는 식으로 대체복무의 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입증 책임을 누구에게 지울 것인가는 그 제도가 누구의 권리를 위해 존재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번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장혜영 대표발의)이나 인권위의 평등법 시안의 예가 그렇다. 두 법안 모두 차별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면 그것이 차별이 아니라거나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점을 상대방이 입증해야 한다는 골자를 명시적으로 담고 있다. 차별을 당한 사람이 자기 경험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을 가한 쪽에 차별이 아님을 입증할 책임을 둔 것이다.

대체역 심사위를 방문하던 날, 양심을 심사하는 업무를 하지만 그동안 병역거부자를 직접 만나본 적은 없다는 사람들 앞에서 최대한 '평범'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특별한(혹은 특이한) 신념의 소유자라서가 아니라 누구나 병역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병역거부를 시혜나 특혜가 아니라 권리로 접근하는 게 가능하다는 점을 어필하고 싶었다. 

막상 만나서는 안심되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위원회는 대체역 신청자들이 진지하고 일관된 양심을 가졌다는 전제를 기본값으로 접근을 하려고 한다. 우리 업무는 병역거부자들의 권리 행사를 돕는 것이라 생각한다"는 취지의 말을 들으며 면담이 화기애애하게 흘러가던 참이었다. 조사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분이 "요즘 신청하신 분들이 제출한 서류를 보면 이런 말은 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싶은 순간들이 있다"면서 "지금 여러분이 대체역을 신청한다면 다 탈락입니다"라고 웃으며 말을 했다.

"탈락"이란 말을 듣는 순간 대체역을 선정하는 그 '시험'을 한번 통과해보고 싶은 나의 욕망이 꿈틀함을 느꼈다. 내가 얼마나 진지하고 일관된 양심을 가진 사람인지, 나의 행적과 주변인 진술서를 꼼꼼하고 철저하게 준비하여 난 '괜찮은' 사람이란 걸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 정도는 아니지'란 걸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그 정도'의 양심을 가진 사람과 나 사이에 구별이 생겨난다.

<난민, 난민화되는 삶>에서 도미야마 이치로가 "00라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00가 아니다."(평화를 만드는 말의 모습)라는 문장을 통해 지적한 모습, 즉 선별을 통해 자격을 입증받아야만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게임에 입장한 순간 양심을 선별하는 기준을 전제한 채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이들과 나를 분리하고 있었던 거다. 피식 웃음이 났다. 헌재 판결 이후 여호와의증인이 아닌 한 줄줄이 유죄 선고를 받고 있고 지금 내가 다시 병역을 거부하면 나 또한 양심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텐데, 나의 그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 싶다.
 
지난 10월 출소한 병역거부자들과 대체역 심사위원회 앞에서 찍은 사진.
 지난 10월 출소한 병역거부자들과 대체역 심사위원회 앞에서 찍은 사진.
ⓒ 전쟁없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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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가 권리라면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대체역 심사위에 함께 방문했던 오태양 님의 이야기가 나에겐 새로웠다. 2001년 2월, 당시 큰 파장을 일으켰던 "차마 총을 들 수가 없어요"란 제목의 <한겨레21> 인터뷰 기사가 나오게 된 뒷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들었다. 오후에 시작해서 저녁 먹기 전까지 5시간 넘게 이어졌다는 인터뷰를 그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병역거부를 고민은 했지만 생각을 정돈해서 밖으로 표현해볼 기회가 아직 별로 없을 때였는데, 신윤동욱 기자가 천천히 그리고 세심하게 질문을 해줬고, 자기가 말하면 이야기를 기다리고 들어주는 그런 시간이었다고 했다. 본인에겐 인터뷰에 참여했던 그 시간 자체가 고맙고 귀한 경험이었다는 걸 말하면서 대체역 심사자들이 병역거부자들에게 잘 질문하고 잘 들어주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당부를 남겼다.

오태양 님의 얘기를 곱씹으면서 병역거부가 권리로 인정받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떠올려봤다. 자기 서사는 타자와의 의미 있는 만남을 통해 만들어진다. 대체역 신청을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준비하지만, 병역거부자의 서사는 신청서 제출로 끝이 아니라 심사 과정에서도 갱신될 수 있어야 한다. 대체역 심사과정에서 병역거부가 권리로 존중받는다는 것은 결국 병역거부자의 말이 어떤 응답을 돌려받는지에 달려있단 생각이 들었다. 신청자의 이야기에 깃든 어떤 진지하고 일관된 '양심'이 드러날 수 있도록 돕는다는 태도와 체계야말로 병역거부'권'을 보장하는 바탕이 아닐까 싶다.

인용 혹은 기각이란 한 문장짜리 판결이 아니라, 신청인의 삶에 대한 성실한 독해와 이해에 기반한 국가의 응답을 어떻게 추동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국가 기관으로서 심사위의 책무는 단 하나의 '진정성 있는 양심' 서사에 기댄 '선별'이 아니라 더 다양한 병역거부자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수고를 들이는 것이다. 

'허락'을 넘어 권리를

병역거부자는 구구절절 설명하고 국가가 '양심'을 심사하는 구도 자체가 부당하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병역거부의 이유를 잘 알려내고 사회적 논의가 촉발되기를 기대하는 것이 운동이기도 하다. 여성 병역거부 선언을 통해 성별이분법과 군사주의가 어떻게 연결되어 작동하는지 논의를 확산하고 군사화에 맞서는 동료를 더 만들어가는 것, 또는 예비군 거부 선언을 통해 한 인간의 양심이 갖는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성격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사회적 논의가 촉발되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대체역 심사 과정이 공무원 시험 준비처럼 '합격 답안'을 준비하는 과정이 아니라 군사화에 저항하는 수단의 하나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독일에서 대체복무제도가 반군사주의자들을 체제 내로 흡수해가는 과정('탈정치화된 병역거부')이었다는 지적, 즉 1980년대 중후반 대체복무를 하는 게 쉬워지면서 병역거부가 애초 치열하게 제기했던 군대와 전쟁, 국가에 대한 정치적 담론들이 독일 사회에서 사라지고 이후 군사화는 더 심화됐다는 문제의식(글 링크)을 떠올리며 우리는 어떤 질문을 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제도가 잘 안착하기 위해 심사위 안팎에서 여전히 넘어야 할 산도 많기에 대체복무자가 평범한 존재가 된다는 말이 여전히 먼 얘기처럼 들리지만, 병역거부의 정치성이 탈각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기억해둘 만하다. 군사주의에 협력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대체복무도 거부하는 완전거부자가 나온다면?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니라 그 또한  '평범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하는 질문이다. 

낙태죄 비범죄화 이후 법 개정안이 논의되는 요즘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구호, "처벌도 허락도 아닌 재생산 권리 보장"이란 프레임은 병역거부 운동에서도 유효하다. 심사의 칼자루를 쥔 채 한 인간의 양심을 납작하고 고정 불변한 것으로 해석하는 권력을 문제 삼는 동시에 병역거부를 권리로 말하기 위해 필요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  

[기획-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
총과 게임에 집착한 검사님, 그런 병역거부자는 없습니다 http://omn.kr/1q1cf
2배의 복무기간, 이건 형평성과 아무 상관이 없다 http://omn.kr/1q31d
③ 
독일의 대체복무, 예상치 못한 효과를 만들었다 http://omn.kr/1q51r
경찰에 한마디도 못 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http://omn.kr/1q65g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날맹 님은 병역거부자입니다.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http://www.withoutwar.org/?p=16814


태그:#병역거부권, #대체역 심사 , #대체복무
댓글1

모든 전쟁은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라는 신념에 기초해 전쟁과 전쟁을 일으키는 다양한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활동하는 평화주의자?반군사주의자들의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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