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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 정약용 초상화.
 다산 정약용 초상화.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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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파란곡절의 생애에서 환갑을 전후하는 시기가 그나마 가장 행복했던 지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비록 노쇠하고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자유로운 몸으로 저술을 하고 산천을 유람하며 당대의 석학들과 학문을 토론하거나 편지를 주고 받는 나날이었다. 

환갑이던 해 봄 대산(臺山) 김매순(金邁淳, 1776~1840)과 학문적 논쟁을 벌였다. 한해 전인 1821년 11월 젊은 시절 정조 치하의 규장각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는 김매순과 30여 년이 지난 뒤에 재회하게 되었다. 안동김씨 집안이지만 생각이 틔고 학문이 깊었다. 병조참판을 거쳐 강화부유수를 지냈다.

연천(淵泉) 홍석주(洪奭周, 1774~1842)와도 편지를 주고 받으며 논쟁을 하였다. 그는 좌의정을 지냈으며 경학과 성리학에 밝았다. 김매순과는 정약용이 저술한 『매씨상서평(梅氏尙書平)』과 『상례사전』 등을 보내면서 서평과 논쟁을 벌였다. 

또 한 사람 홍석주의 아우 홍현주(洪顯周, 생몰년 미상)가 있었다. 정조의 둘째딸 숙선옹주와 혼인하여 영명위(永明尉)에 봉해졌다. 일찍부터 정약용은 존경하여 형을 소개한 인물이다. 이들 간의 학술논쟁과 서평은 각 책 한 권 이상의 분량이어서, 여기서는 대산ㆍ연천과 주고 받은 품격 있고 격조 높은 편지 한 통씩을 소개하기로 한다. 정약용이 1821년 11월 27일 대산에게 보낸 편지다. 

정록청에서 남색 관복을 입고 나란히 앉아 일하던 때를 생각해보니 역력하여 눈앞의 광경과 같으면서도 마치 부딧돌의 불과 바람 앞의 등불처럼 갑자기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지곤 합니다. 이제 어언 서른 해가 지난 뒤에야 응중(凝重)한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이미 수염과 머리털은 희끗희끗하고 또 절박한 산림처사의 자태가 다분히 있으니 인생이란 참으로 감개스럽고 헤아릴 수 없는 것인가 봅니다. 

돌아보매 쇠하고 늙어 폐인이 된 이 몸은 마치 벌레 먹은 나무 그루의 말라빠진 움과 같아서 뜻하지 않게 한차례 병이라도 앓게 되면 문득 숨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인형(仁兄)께서는 다행히 수서(收敍)를 얻어 호ㆍ령(湖嶺) 사이의 조그마한 고을 하나를 얻었으니 이 또한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때문에 내년 늦봄 벽계에 가기로 한 약속 또한 너무 아득하게 되었습니다. 한나라 광무황제의 '하루하루가 중요하다' 라는 비유는 진정 도를 아는 사람의 말입니다.

그러나 다음달 보름 무렵에 눈 덮인 집에서 하루 쉬기로 한 일은 절대로 늦추거나 어기지 마십시오. 들어보니 고기 잡는 어장에는 오강(五江)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도리어 번거롭고 시끌벅적하게 될 것이니, 곧바로 산정에서 토란을 굽고 콩을 삶으며 즐기는 것이 조용하고 오붓할 듯하다고 합니다. 아이들 말이 이와 같으니 듣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구우(丘隅)에게 연락하여 적당한지 헤아려보심이 어떠하겠습니까? 헤어진 뒤의 안부를 알기 위하여 간단히 적어 보냅니다. (주석 12)

 
여유당 다산 정약용의 생가
▲ 여유당 다산 정약용의 생가
ⓒ 이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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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같은 해 12월 10일 대산이 정약용에게 보낸 답신이다.

원회운세(元會運世)는 지극히 유구한 것으로 30년이 그 한 단위를 차지하는데 이와 같은 세월이 지나서야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그간의 세상 일은 말로 다 형언키 어렵습니다. 두보의 이른바 '밤 늦도록 촛불 밝히고, 마주 대하니 꿈만 같다' 라는 시구가 어찌 반드시 친척에게만 해당하는 말이겠습니까? 

더욱이 이틀 밤을 묵는 동안에 양양하게 귀에 가득 찬 것이 지극한 이론과 오묘한 뜻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게으름과 어두움을 깨우쳐주고 몽매함을 열어 넓혀주신 것은 낡고 묵은 옛날 책자와는 비할 바가 아닙니다. 

돌아와서 사모하며 우러러보매 더욱 마음이 맺힌 듯한데, 뜻밖에도 도탑게 기억해주시고 손수 쓰신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뜻이 후하고 말씀이 진지하여 족히 보배롭게 가슴속에 간직할 만 하온데 옛일까지 언급하시니, 생각이 얽히고 이어져 애잔한 동시에 어질고 후덕함이 애틋하여 이 세상에서 다시 얻을 수 없을 듯 합니다. 받들어 여러 차례 반복하며 읽어보니 깊이 느끼어 아로 새겨지는 감격 다할 수 없습니다.

새봄은 아직 멀지만 세월이 덧없이 흘러가는 것은 시인이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정사(精舍)에서 한 번 만나기로 한 약속을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구우(丘隅)에게서 연락이 있을 것입니다. (주석 13)


주석
12> 『다산과 대산ㆍ연천의 경학논쟁』, 실시학사경학연구회 편역, 28~29쪽, 한길사, 2000.
13> 앞의 책, 30~31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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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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