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정약용 선생 상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 생가에 있는 정약용 선생 상
▲ 정약용 선생 상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 생가에 있는 정약용 선생 상
ⓒ 위전환

관련사진보기

 
「탕론」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전론(田論)」은 정약용의 개혁사상의 대표급에 속하는 논저이다. 그가 살던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기 조선은 봉건제도의 붕괴와 사회경제적 모순이 격화되면서 민란이 잦았다. 유생ㆍ관리들은 여전히 관념론적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떠들고 있었다. 

그의 현실인식은 치밀하고 예리했다.

"근래에 와서 조세와 부역이 무겁고 번잡하며 관리들의 횡포가 심하여 백성들은 나라를 믿고 살 수 없게 되었다. 이리하여 모든 사람이 전부 난(乱)을 생각하게 되었으니 요언망설(妖言忘說)이 동에서도 서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이것을 법에 비추어 처단한다면 백성은 한 사람도 살아 있지 못할 것이다."(『목민심서』)

농업이 생업인 백성들은 어디를 막론하고 땅(토지)이 곧 생존의 명줄이었다. 하지만 경자유전의 법칙이 무너진 지 오래였다.

"지금 호남지방 백성의 형편을 보면 평균 100호 중에서 남에게 토지를 주어 소작료를 받아 먹는 자는 불과 5호이고, 자기의 땅을 경작하는 자는 25호 가량이며, 지주의 땅을 경작하여 소작료를 바치는 농민은 70호나 된다."(『여유당전서』제1집 제9권)

호남지방의 사례이지만 타지역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자영농이나 소작농민들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관리들에게 뜯기고 온갖 조세와 부역에 시달렸다. 

지금 국내의 전담은 약 80만 결(結)이고 인구의 수는 약 800만 명이다. 가령 10명을 1호로 계산하면 매 1호에서 1결의 땅을 경작하면 공평한 것으로 된다. 그런데 지금 문무고관들과 향간의 큰 부자들로서 1호에 매년 벼 수천 석을 거두고 있는 자가 심히 많으니 그들이 소유한 땅을 계산하면 100결이나 된다. 이것은 즉 990명의 생명을 빼앗아 1호를 살찌게 하는 것으로 된다. 

지금 국내의 부자로서 경주의 최씨와 전라도의 왕씨같이 벼 1만 석을 추수하는 자가 있으니 그 매 개인의 소유한 전답을 계산하면 400결이나 된다. 그러면 이는 3천 900명의 생명을 빼앗아 1호를 살찌게 하는 것이다.(『여유당전서』제1집 제11권)
  
 정약용
 정약용
ⓒ 강진군청 홈페이지 캡처

관련사진보기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획기적인 마을공동체 경작의 '여전제(閭田制)'를 제안했다. 

이제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는 밭을 얻도록 하고,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에게는 밭을 얻지 못하도록 한다면, 여전(閭田)의 법(法)을 시행해야만 나의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여전이라 하는가. 산골짜기와 개울과 들판의 형세를 가지고 경계(界)를 그어 만들고는, 그 경계의 안을 여(閭)라 이름하고 여 셋을 이(里)라 하며, 이 다섯을 방(坊)이라 하고, 방 다섯을 읍(邑)이라고 한다. 여에는 여전장(閭田長)을 두고 무릇 1여의 밭에는 1여의 사람들로 하여금 다 함께 그 밭일을 하게 하되, 서로의 경계가 없이 하고 오직 여장의 명령만을 따르도록 한다.

매양 하루하루 일을 할 때마다 여장은 그날의 수(數)를 장부에 기록하여 둔다. 그래서 가을에 거둘 때에는 그 오곡(五穀)의 곡물을 모두 여장의 당(堂)에 운반하여 그 양곡을 나누는데, 먼저 국가의 세(稅)를 바치고, 그 다음은 여장의 봉급을 바치고, 그 나머지를 가지고 날마다 일한 내용대로 장부에 의해 분배한다. 가령 곡식을 수확한 것이 천곡(斛: 10두(斗)가 1(斛) 일 경우, 그 장부에 기록된 일한 날의 수가 2만 일이면 매양 하루당 양곡 5승(升)을 분배하게 된다.

어떤 사람의 경우, 그 부부(夫婦)와 아들과 며느리의 장부에 기록된 일한 날의 수가 모두 8백 일이면 그 분배된 양곡은 40곡(斛)이 되고, 또 어떤 사람의 경우, 그 장부에 기록된 일한 날의 수가 10일이면 그 분배된 양곡은 4두(斗) 뿐인 것이다.

노력을 많이 한 사람은 양곡을 많이 얻게 되고 노력이 많지 않은 사람은 양곡을 적게 얻게 되니, 그 힘을 다함으로써 토지에서도 그 이익을 다 얻게 될 것이다. 토지의 이익이 일어나면 백성의 재산이 풍부해지고, 백성의 재산이 풍부해지면 풍속(風俗)이 순후해지고 효제(孝悌)가 행해지게 될 것이니, 이것이 밭을 다스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주석 9)


주석
9> 금장태, 『다산 정약용』, 179~180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