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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5월3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정치적 판결 키코사건 재심요구 기자회견'에서 키코 사건 피해기업인이 발언하고 있다.
 지난 2018년 5월3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정치적 판결 키코사건 재심요구 기자회견"에서 키코 사건 피해기업인이 발언하고 있다.
ⓒ 조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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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8개 중소·중견기업들이 모두 3조2000억 원의 손실을 입고 파산하거나 그에 준하는 위기를 겪었습니다. 지난 2007년 말 기업들이 은행 쪽 권유로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Knock-In Knock-Out)에 가입한 뒤 벌어진 일입니다. 

지난한 과정 끝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던 일부 피해기업들은 결국 2013년 대법원에서 패소합니다. 오랜 기간 사회적 논란이 됐던 키코 사태에 대한 관심이 한풀 꺾이게 된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이후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금융감독원 수장 자리에 오른 윤석헌 원장은 당시 소송에 참여하지 못했던 키코 피해자 구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됩니다. 2019년 12월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는 신한·우리·산업·하나·대구·씨티은행이 원금 손실 위험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점 등을 인정해 피해액의 12~41%를 배상하라는 결론을 내렸죠.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우리은행을 제외한 대부분의 은행들이 배상권고 수용 결정을 5차례나 연기하면서 사태가 장기전으로 빠져버린 겁니다. 비판이 일자 은행들은 지난 7월 분쟁조정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협의체를 출범했는데, 이마저도 현재까지 공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100% 배상 주장한 이용우 의원, 그 근거는?

이런 가운데 올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키코 판매 은행들의 허를 찌르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정무위원회 소속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13년 대법원 판결의 핵심 오류를 짚은 것입니다. 이 의원은 "키코 거래는 완전한 사기거래이며, 피해기업들에 대한 100% 손해배상을 비롯한 은행들의 적극적인 피해구제가 필요하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이용우 의원실이 주목한 부분은 은행들이 키코 판매로 거둬들인 '수수료'입니다. 대법원이 수수료를 잘못 계산하면서 은행이 부당이익을 얻은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에 문제가 있었다는 겁니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키코 계약의 수수료율을 최소 0.058%에서 최대 0.48%로 봤습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런 수수료율이 펀드 등 다른 금융상품 거래에 비해 현저히 높은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은행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키코는 풋옵션(팔 수 있는 권리)과 콜옵션(살 수 있는 권리)을 1대 2로 합성한 옵션 상품입니다. 옵션은 쉽게 말해, 미리 결정된 기간 안에 특정 기초자산을 정해진 가격으로 사고 팔 수 있는 권리를 뜻합니다. 키코의 경우 환율이 정한 선 위로 올라가면 기업이 달러를 팔아야 할 의무가 발생하고, 그 아래로 내려가면 기업이 달러를 팔 수 있는 권리가 사라지는 상품이었습니다. 

이런 거래로 기업들이 내야 할 수수료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키코 계약은 공정했다는 것이 대법원 쪽 판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용우 의원실은 2013년 대법원 판결에 적힌 수수료율에 의문을 품게 됩니다. 금융회사들은 통상 옵션 수수료율을 1.5% 내외로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법원이 제시했던 0.058~0.48%가 지나치게 낮아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느낀 겁니다.  

옵션 수수료율 1.5%인데, 키코는 0.058%였다?
 
KB증권 옵션수수료율
 KB증권 옵션수수료율
ⓒ KB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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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11월 현재 KB증권에서는 달러 옵션 거래에 대해 1.4873%의 수수료율을 적용 중입니다. 과거 키코 상품이 판매됐던 시점에도 수수료율은 이와 유사했다는 것이 증권업계 쪽 설명입니다. 이와 함께 KB증권은 '매매대금'에 해당 수수료율을 곱한 것이 실제 내야 할 수수료 액수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키코 상품의 '진짜' 수수료에 대한 힌트는 바로 대법원 판결문 속에 있었습니다. "콜옵션 계약금액을 기준으로 이 사건 각 통화옵션계약의 수수료율을 산정하면..."이라는 문구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실 은행과 피해기업들은 키코 상품의 수수료가 실제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오랜 기간 공방을 벌여왔습니다. 기업들은 수수료가 있다는 설명을 듣지 못했고, 오히려 '제로 코스트(비용 없음)'로 안내받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뒤늦게서야 은행들은 키코 상품에 수수료가 있음을 인정했는데, 이를 콜옵션과 풋옵션의 차액이라고 얼버무렸습니다. 이 때문에 소송 과정에서는 은행이 벌어들인 수수료 금액과 수수료율이 정확히 얼마인지에 대한 논쟁이 이어졌죠. 

자, 그렇다면 대법원이 계산한 수수료율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재판부는 '계약금액'을 기준으로 비율을 산정했다고 했습니다. 계약금액을 분모로 두고, 콜옵션과 풋옵션의 차액을 분자에 두면 0.058~0.48%의 수수료율이 나온다는 얘깁니다. 

문제의 핵심은 '분모'에 있었습니다. 이용우 의원실은 옵션 수수료의 경우 계약금액이 아닌 매매대금(옵션 프리미엄)에 대해 부과해야 한다는 것에서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어떤 비율을 계산할 때 분모가 달라지면 그 결과값도 크게 달라집니다. 옵션 거래를 할 때에는 계약금액이 매매대금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습니다. 

대법원의 계산법
 
이용우 의원실
 이용우 의원실
ⓒ 이용우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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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예를 들어볼까요. 옵션 계약금액은 100만달러고, 매매대금은 5만달러라고 해봅시다. 수수료는 통상적인 옵션 거래와 같이 매매대금에 통상적인 수수료율인 1.5%를 곱하면 750달러(약 84만원)가 됩니다. 

반면 대법원의 논리대로 계약금액을 기준으로 수수료를 부과하면 100만달러의 1.5%, 즉 수수료는 무려 1만5000달러나 나옵니다. 약 11억3000만원어치의 달러에 대한 옵션거래를 하면서 수수료만 약 1690만원을 내야 한다는 얘깁니다. 이처럼 불공정한 계약임을 알고도 가입할 기업이 얼마나 될까요? 대법원의 계산법에 문제가 있는 이유입니다.

다시 말해, 계약금액이 아닌 실제 매매대금을 기준으로 하면 실제 키코 상품의 수수료율은 대법원이 제시한 숫자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고 이에 따라 수수료액도 상당했을 것이라는 얘깁니다. 이용우 의원실은 실제 키코 상품의 수수료율은 적어도 16%, 많게는 93%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이에 대해 키코 문제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키코 상품을 팔았던 은행들이 가져다준 자료를 대법원에서 충분한 검토 없이 그대로 인용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키코 수수료율 계산법을 둘러싼 논쟁은 지난달 16일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산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계속됐습니다. 이날 이용우 의원이 "옵션 수수료는 옵션 계약금액이 아닌 옵션 프리미엄(매매대금)에 부과하는 것이 맞나"라는 질문하자, 참고인으로 출석한 박선종 숭실대 교수는 "네"라고 답했습니다. 

또 이 의원이 "만일 산은이 상품구조 속의 수수료 또는 옵션 프리미엄 자체를 설명하지 않았다면 설명의무를 다하지 못한 건가"라고 묻자, 박 교수는 "키코는 콜옵션과 풋옵션의 합성거래여서 콜옵션과 풋옵션의 프리미엄(가격)이 얼마인지 알려줘야 하는데, 많은 은행들이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명백히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옵션 가격정보 제공 안한 은행들... 윤석헌 "산은, 규정 위반"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신용보증기금, 한국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서민금융진흥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키코 피해기업 배상에 대한 전문가 의견으로 박선종 교수가 참고인으로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신용보증기금, 한국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서민금융진흥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키코 피해기업 배상에 대한 전문가 의견으로 박선종 교수가 참고인으로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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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과거 키코 상품을 팔았던 산은은 기업들에 수수료 등 가격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면서도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라는 알 수 없는 주장을 펼칩니다. 국감 당시 이 의원은 "산업은행 자료를 보면 옵션의 가격정보는 없고 만기일자만 제공되고 있다"며 "은행업 감독세칙을 위반한 것이 맞나"라고 질의했습니다. 

은행업 감독업무시행세칙 제65조에는 '비정형 파생상품 거래 때 내재한 개별 거래별로 각각의 가격정보(금융기관의 거래원가가 아닌 대고객 거래가격 수준의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같은 질문에 이동걸 산은 회장은 "그것(가격)을 제시하지 않는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사후관리에서 의무를 다했기 때문에 불완전판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맞받았습니다. 반면 금융당국은 문제가 있다고 봤습니다. 지난 23일 정무위 종합 국정감사에서 윤석헌 금감원장은 "(키코 관련 산은 쪽 행위가) 규정 위반이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은행들은 2013년 대법원 판결을 방패막이 삼아 2019년 금감원 분조위 권고를 뭉개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뒤늦게나마 이 판결의 핵심오류가 국정감사를 통해 드러난 것입니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23일 종합감사에서 이같은 문제를 지적하면서  "산은은 금감원 분조위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더불어 산은과 같이 피해기업에 키코 가격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던 다른 은행들도 배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은행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키코 관련 대법원 판례는 '부당이득금반환' 등 민사소송에 대한 결과였습니다. 형사상 사기죄로 처벌 가능한지에 대해선 법정에서 가려진 적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피해액수가 50억원 이상인 경우 사기죄의 공소시효는 15년입니다. 공전 중인 키코 은행협의체가 다시 가동될지, 어떤 배상안이 나올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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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경제부 기자입니다. 010-9403-7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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