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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산에 오르는 이유가 있다. 나이 50이 되면서부터는 가만히 있으면 하루 하루 체력이 떨어지는 것이 몸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나이 들어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왕 움직일 거라면 공기 좋은 곳에서 자연을 느끼며 걷고 싶어 몇 년 전부터 산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면 어떨 때는 산에서 자라는 야생의 열매를 만나는 즐거운 경험을 할 때도 있다.

어떤 산에서는 등산로 옆 덤불 속에 숨어있는 작은 산딸기를 만나기도 하고 어떤 산에서는 50평은 족히 넘을 듯 넓게 군락을 이룬 야생 블랙베리들을 만나기도 한다. 내가 자주 찾았던 산 중에는 정상으로 향하는 길 중간쯤에 10미터는 족히 넘는 큰 나무를 뒤덮은 크게 자란 포도 덩굴이 있다. 
 
10미터는 족히 넘는 큰 나무를 덮으면서 자란 포도 덩굴
▲ 큰 나무를 에워싼 포도 덩굴  10미터는 족히 넘는 큰 나무를 덮으면서 자란 포도 덩굴
ⓒ 김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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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에 이 산을 찾으면 조그맣게 열매 맺기 시작한 초록색 포도송이를 만날 수 있다. 그때마다 가을에 포도가 익으면 꼭 따먹어 보아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지나쳤었다. 그러길 몇 년째 난 아직까지도 그 포도를 따먹어 보지 못했다. 

그 날도 그랬다. 오랫만에  찾은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그 포도 덩굴을 만났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포도가 익은 모습을 만났다. 과수원에서 만나는 포도송이와 자연 상태에서 자라난 야생 포도를 만나는 느낌은 좀 다르다.

그런데 산을 오르다 보면 쉬지 않고 올라가야 될 것 같은, 산에서만 나타나는 관성의 법칙이 작동할 때가 있다. 힘들어서 그런 건지 몰라도 잠깐 쉬는 틈에도 빨리 올라가야 되는데 하는 조급한 마음이 나를 붙든다.

항상 맛 보고 싶었던 야생 포도가 익은 모습을 보고도 그랬다.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내려올 때 먹어야지' 그리곤 일단 그 곳을 지나쳐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상에 다다른 후 내려가야 될 때가 되자. 아내가 말한다. 올라왔던 길이 너무 경사가 심하니 내려갈 때는 다른 길로 가자고. 그렇게 그 날도 결국 익은 포도를 먹지 못하고 산을 떠났다. 
 
산을 빨리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보기만 하고 결국은 먹어 보지 못한 포도 송이
▲ 잘 익은 야생 포도  산을 빨리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보기만 하고 결국은 먹어 보지 못한 포도 송이
ⓒ 김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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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이런 경우 뿐일까? 산에 오르다 보면 경치 좋은 곳을 만날 때가 있다. 사진 한 장 예쁘게 찍어야지 생각하다가도 지금은 올라가는 것이 중요하니 내려갈 때 여유있게 시간내서 찍어야지 하고 다시 오르곤 했다. 그러다보면 결국 또 다른 길로 내려오게 되거나 날씨가 갑자기 안 좋아져서 그 사진은 결국 찍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어디 포도 먹는 일 뿐일까? 항상 경험하는 거지만 이 패턴은 삶에서도 매번 반복된다. 살아 가면서 내 가슴을 뛰게 했던, 하고 싶던 도전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먹고 사느라 바쁘니 나중에 해야지' 하고 미뤘던 일을 지금까지도 하지 못했다는 걸 나이 50이 넘어서 다시 깨닫는다. 

내 심장을 뒤흔드는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지금 당장이어야 한다. 우리 앞에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이 아니면 나중은 결코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 그것이 산 속의 포도를 먹는 것처럼 작은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어떤 건 죽는 순간 후회할 가장 큰 한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태그:#포도 , #야생,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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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있는 산부터 이름없는 들판까지 온갖 나무며 풀이며 새들이며 동물들까지...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것들을 깨닫게 합니다 사진을 찍다가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 슬며시 웃음이 나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는 순간 등, 항상 보이는 자연이지만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함께 느끼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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