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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를 찾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경주의 유적과 유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경주를 찾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경주의 유적과 유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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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과 서쪽을 지키듯 웅장하게 선 석탑과 그 주위에 싱싱한 생명력으로 빛나는 수백 년 된 느티나무가 없는 감은사 절터를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습니까?"

10월 31일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 초청강연회를 위해 경주 화백컨벤션센터를 찾은 유홍준(명지대 석좌교수) 전 문화재청장이 고사(枯死) 직전의 위기에 처한 감은사지 느티나무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문화재 보존을 위한 노력이 일으킨 역효과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감은사는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호국의지가 담긴 절인 동시에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 등 빼어난 신라의 불교 유물이 다수 발견된 예술적 사찰. 그런 이유로 사계절 내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경주의 대표적 관광지 중 하나가 됐다.

"조형미와 장엄함을 두루 갖춘 감은사 석탑은 위대하게 보인다"라고 평한 유 교수는 "특히 탑의 가운데로 솟아오른 철심은 신라 건축예술의 완결미를 유감없이 보여준다"고 추켜세웠다.

유홍준 교수의 감은사 사랑은 그의 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아! 감은사, 아, 감은사 탑이여!'라는 문장에서 느껴지는 진한 애정을 많은 독자들이 알고 있다.

쌍둥이처럼 우뚝 선 동탑과 서탑 지척에서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감은사지 느티나무는 이 절터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던 대표적 상징물이었다. 그 나무가 있음으로 해서 한 폭의 아름다운 동양화 같은 풍경이 완성됐던 것.
 
미학적 완성도를 보여주는 감은사지를 공중에서 촬영했다. 오른쪽에 말라죽어 가는 느티나무가 보인다.
 미학적 완성도를 보여주는 감은사지를 공중에서 촬영했다. 오른쪽에 말라죽어 가는 느티나무가 보인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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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 위기에 처한 감은사 느티나무.
 고사 위기에 처한 감은사 느티나무.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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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역사 유적과 유물을 제대로 보존하고, 보다 근사하게 보완하려는 노력이 역효과를 일으킬 때가 있다. 감은사지 느티나무가 바로 그런 경우로 보인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수백 년 동안 마을을 상징해오던 나무들이 많이 죽었다. 당산나무 뿌리 위에다 콘크리트를 가져다 바르니 살 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한 유홍준 교수는 감은사지 느티나무의 고사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평소 교류하던 식물학자와 긴 문자를 주고받기도 했다.

강연회에서 유 교수는 식물학자가 보내온 문자를 참석자들에게 공개했다. 그 문자의 핵심은 '느티나무를 보존하기 위해 뿌리 주변에 석축(石築)을 쌓고, 근처에 인공 구조물을 여러 개 만든 것이 나무가 고사 상태에 이른 이유로 추정된다'는 것.

비단 유 교수만이 아닌 적지 않은 역사학자들이 말한다. "유적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나무와 숲이 사라져서야 되겠는가. 때로는 자연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더 효과적인 유적과 유물 관리가 될 수 있다"고.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감은사지 느티나무 다시 살아나 절터의 풍경이 온전해지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는 유 교수의 말은 향후 경주의 유적지 관리와 보존사업을 진행할 이들에게 진지한 고민거리 하나를 던져주고 있다.
 
9층목탑이 세워진 신라의 국찰 황룡사가 있었다고 추정되는 터.
 9층목탑이 세워진 신라의 국찰 황룡사가 있었다고 추정되는 터.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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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결합이 문화재 복원의 힘이 되길

"상상력이 세상을 바꾼다."

68혁명 당시 프랑스 파리 대학 담벼락에 붙었던 격문이다. 역사학과 철학에 공학과 IT기술이 결합하고 여기에 상상력까지 더해진다면 신라의 유적과 유물은 어떤 모습으로 현대인들 앞에 나타날까?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이날 강연에서 기발하고 흥미로운 상상 하나를 이야기했다.

"지금으로선 복원이 힘든 황룡사와 9층목탑을 해가 진 밤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홀로그램(Hologram·3차원 입체 영상)으로 떠오르게 하면 어떨까? 한국의 기술력이라면 불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황룡사는 진흥왕, 진평왕, 진지왕, 선덕여왕 등 4명의 왕이 93년에 걸쳐 만들어낸 신라의 대표적 사찰 중 하나. 갈등과 대립 관계에 있던 백제에서까지 기술자를 초빙해 만들었다는 높이 80m의 거대한 목탑이 위용을 자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경주시 구황동에 절터만 남아있을 뿐.

문화재의 복원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대형 프로젝트다. 성급하게 손을 댔다간 일을 망치기가 쉽다.

1400년 전 서라벌의 '랜드마크'였을 황룡사 9층목탑은 현재로선 제대로 된 복원이 불가능하다. 왜냐? 당장 거기 사용될 8톤 트럭 2600대 분량의 금강송(金剛松)이 없기 때문.

유홍준은 문화재청장 재직 시절 전통 목조유물 복원을 위해 울진 지역에 150만 평에 이르는 소나무숲 조성을 제안해 실행했다. 벌써 15년 전 일이다. 그러나, 그 소나무들이 문화재 복원에 사용되려면 앞으로도 100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황룡사역사문화관엔 1/10로 축소된 9층목탑이 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이걸 홀로그램으로 복원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황룡사역사문화관엔 1/10로 축소된 9층목탑이 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이걸 홀로그램으로 복원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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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기술을 이용해 황룡사와 9층목탑을 고풍스런 홀로그램으로 만들어 '밤의 경주'를 찾은 관광객과 시민들에게 보여주자는 유홍준의 상상력은 그 발상이 신선해 보인다. 만약 이 상상이 실현된다면 7세기 서라벌의 밤길을 걷는 행복감을 맛보려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게 분명하다.

어지간히 바쁜 일이 아니면 포스텍과 카이스트 등에서 공부하는 젊은 공학도들과의 만남은 거부하지 않는다는 유 전 청장.

거기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결합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역사 유물을 복원해보자는 뜻이 깔려 있다. 발전된 기술력은 때때로 인간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기도 하기에.

100년을 사는 인간은 극히 드물다. 그러니 이 기사를 읽는 절대다수는 금강송으로 복원된 9층목탑을 볼 수는 없을 듯하다. 하지만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황룡사와 목탑은 적절한 재정 투입과 기술 개발 노력이 있다면 몇 해 뒤에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앞서도 말했지만 세상을 바꾸는 건 '상상력'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보완한 것입니다.


태그:#유홍준, #감은사지, #황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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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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