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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모자도 쓰지 않은 간호조무사가 혼자 수술 부위 지혈을 하고 있다
▲ 수술실 CCTV 화면 수술 모자도 쓰지 않은 간호조무사가 혼자 수술 부위 지혈을 하고 있다
ⓒ 권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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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의료 사고로 죽은 동생... 신문고를 치는 심정입니다 http://omn.kr/1olda

지난 10월,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졌습니다. 고작 0.32%라는 좁은 인용률을 뚫고 법원이 검찰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확인해준 것이죠. 지난 몇 년 동안 100일 가까이 거리에 나가 싸우신 어머니는 소식을 듣자마자 펑펑 우셨습니다. 아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한을 풀어 주리라 믿었던 검사에게 배신당하고 의지할 곳 없이 거리에 나가 싸운 결과였지요.

집도의가 여러 명을 동시에 수술하고 생면부지의 초짜 의사와 간호조무사가 들어와 수술을 이어받는 이른바 '공장식 유령수술'로 인해 건강했던 동생이 세상을 떠났지만, 사건을 담당한 성아무개 검사는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검찰은 불기소됐던 의료진들의 무면허의료행위를 공동책임으로 기소하겠다고 10월 24일 전해왔습니다. 성 검사의 처분이 잘못됐다고 해도 받아주지 않았던 검찰이 법원 결정이 나온 뒤에야 기소하기로 한 거지요. 

법원행정처 조사에 따르면 재정신청 인용으로 기소된 사건 담당 판사의 58.3%가 검사의 공소 유지 불성실을 지적한다고 하는데요. 피해 유족으로서 이제라도 변화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참, 재정신청이란 말이 생소하시지요. 저와 저희 가족들도 직접 사건을 겪기 전까지는 재정신청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동생 대희가 분업화된 공장식 유령수술 피해자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고, 3년에 걸친 경찰과 검찰의 수사가 이뤄지고, 성 검사가 의료진에게 타격이 될 만한 주요한 범죄혐의를 모두 불기소 처분한 뒤에야 알게 된 제도지요.

재정신청은 검찰의 불기소처분이 잘못됐다고 생각할 경우 직접 법원에 다시 판단해달라고 요청하는 제도입니다. 우리 법상 기소권은 검찰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이에 피해자가 원고가 될 수 있는 민사재판과 달리 형사재판은 검찰이 기소하지 않으면 법정에서 피고인들의 잘잘못을 따져볼 수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검찰의 불기소권이 막강하다는 이야기가 있는 거죠.

'검사는 불기소로 돈을 번다'는 말

사건 이후 법원과 검찰청, 변호사 사무실을 들락거리게 되다 보니 주워듣는 이야기가 많은데 그중 하나가 '검사는 구속으로 명성을 얻고 불기소로 돈을 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검사가 기소할 사건을 무혐의로 처리해도 견제할 수단이 없다 보니 부패의 소지가 많다는 주장이지요.  

사실 재정신청 전에 검찰 스스로 잘못된 불기소처분을 바로잡을 수단이 있지요. '항고'라는 제도인데, 고등검찰청이 일선 검사의 불기소처분을 들여다보고 기소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저희 역시 항고를 했었지만 검찰은 끝내 항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이유는 딱 한 문장이었습니다. '이 항고사건의 피의사실과 불기소 이유의 요지는 불기소처분 검사가 작성한 불기소결정서 기재와 같으므로 이를 원용하는 바, 일건 기록을 세밀히 검토한 결과 불기소처분 검사의 처분이 부당하다고 볼 자료 없으므로 이 사건 항고를 기각한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의사들이 다량의 출혈이 발생하고 지혈도 되지 않는 환자를, 다른 환자를 수술한다는 이유로 추가적인 조치 없이 간호조무사에게 수술 부위 지혈을 시켰다고 했습니다. 이에 간호조무사 혼자 수술 부위를 지혈하는 의료행위를 했기 때문에 의사들과 간호사 모두 공동하여 무면허 의료행위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공소를 제기하는 것이 타당하므로 형사소송법에 따라 공소제기를 명했죠.

법원, 의사들을 기소할 것을 명령하다
 
서울고등법원은 검사가 불기소한 처분에 대해 기소를 명했다
▲ 재정신청 결정문 서울고등법원은 검사가 불기소한 처분에 대해 기소를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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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재정신청을 인용했기 때문에 검찰은 10월 28일 대희를 수술한 성형외과 원장과 갓 의전원을 졸업한 상태였던 그림자 의사, 간호조무사를 무면허의료행위 공동정범으로 기소했습니다.

만약 재판에서 이 혐의들이 유죄로 판단되면 의료법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됩니다.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 1년의 범위에서 면허자격 정지, 의료업을 1년의 범위에서 정지시키거나 개설 허가의 취소 또는 의료기관 폐쇄 같은 처벌이죠.

현행 의료법상 기존에 검사가 기소했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는 유죄가 인정돼도 면허 정지, 의료기관 폐쇄 같은 처분을 내릴 수 없었는데 정말 큰 변화입니다. 만약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의료진들은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을 거예요. 저희 가족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불기소 처분했던 성 검사는 보건복지부·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누리메디컬컨설팅 감정회신들이 모두 무면허 의료행위란 의견을 냈지만 깡그리 무시했지요. 재정신청으로 이 검사를 처벌할 수는 없겠지만, 그에게도 최소한의 양심이란 게 있다면 몹시 부끄러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항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그 참담했던 2월을 기억합니다. 어머니는 제 몸보다 큰 피켓을 들고 매일 법원과 검찰 앞에 나가 1인 시위를 하셨고 울음이 느셨고 감정 기복도 커지셨지요. 지쳐가는 모습이 보였고 위태롭게 느껴졌습니다. 아들로서 너무나도 괴로운 시간이었어요.

어머니가 다시 일어나게 된 건 얼굴 한 번 본 적 없던 시민분들 덕분이었습니다. 이때쯤부터 사건이 언론을 통해 조명받기 시작했고 몇몇 유튜브 채널에서도 저희의 억울한 사연을 다뤄주셨지요. 이걸 보고 저희 재판을 찾아주신 시민들이 매 공판 때마다 수십 명이 되었습니다. 공판정에 자리가 없어 서서 보고, 코로나19가 확산된 이후엔 사회적 거리두기로 재판을 직접 보지 못하고 바깥에서 줄지어 기다릴 정도였죠.
 
코로나에도 불구, 시민들이 재판을 찾아서 응원해주었다
▲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공판이 끝난 후 코로나에도 불구, 시민들이 재판을 찾아서 응원해주었다
ⓒ 권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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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의 가슴 아픈 일을 응원하기 위해 제시간과 노력을 들여 움직일 수 있는 건지, 부끄럽지만 처음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신 분 중엔 비슷한 사연이 있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병원과 검찰에게 큰 상처를 입은 분들, 불의의 사고로 가까운 지인을 잃은 분들이 계셨죠. 

또 저보다도 한참 어린 열정적인 대학생 친구들도 재판을 찾았습니다. 멀리 제주도부터 전국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이 왔죠. 어머니가 1인시위 하는 현장에도 이런 분들이 방문해 응원의 말씀을 주셨고, 많이 알려져야 한다며 각자의 블로그와 SNS로 홍보도 해주셨죠.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검사의 잘못된 처분을 바로잡을 수 있었던 건 오롯이 시민분들 덕분입니다. 감사하다는 말씀으로 부족한 걸 알아서 감사하고 감사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입니다.

어머니는 요즘 의료 정의에 관심 있는 시민들의 모임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는 닥터 벤데타다'라는 카페지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던 노무현 전 대통령님 말씀처럼 병원과 법에 피해를 입은 분들이 서로 힘을 나누고, 불법적인 의료관행에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연대하는 단체입니다. 

감사한 힘으로부터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은 저희 가족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죠. 이 활동으로부터, 시민들로부터 도리어 배우고 얻는 게 많습니다.

<오마이뉴스> 또한 얼굴 한번 본 적 없던 시민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검찰과 병원의 항의로 관심 가져 주셨던 다른 언론사들이 사건을 보도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제 글을 실어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아마도 0.32% 확률의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진 배경엔 <오마이뉴스> 보도가 큰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보도가 나갈 때마다 많은 댓글이 달리는데 저희 가족은 모든 댓글을 하나하나 읽어본답니다. 응원 댓글이 없었다면 저희가 여기까지 못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독자분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앞으로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나길 바라는 한 명의 시민, 대희 형 태훈 올림

덧붙이는 글 | 닥터벤데타에서 유령수술 엄벌을 요청하는 국민청원을 진행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바로 가기 :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93662


태그:#재정신청, #인용, #의료법위반, #닥터벤데타, #국민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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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정의와 약자의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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