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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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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유니온 김도윤 지회장이 타투를 새길 때 사용하는 바늘 ⓒ 이희훈
    
지난 2019년 여름 타투이스트 김도윤씨는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적인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의 몸에 타투를 새겼다. 김씨는 '브래드 피트도 자신이 받은 타투가 한국에선 불법이라는 사실을 아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당연히 알았다"면서 "타투시술이 불법이라는 유례없는 상황에 오히려 재밌어하고 응원을 해줬다"라고 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선 1992년 대법원이 타투를 '의료행위'로 보는 판결을 내린 이후 의료인이 하지 않는 타투시술은 모두 불법이 됐다. 이로 인해 국내에서 미용문신 및 타투 시술을 받은 1300만 명 역시 불법으로 시술 받은 것으로 취급당하고 있다.

결국 김씨는 동료 타투이스트들과 함께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 섰다. "대한민국에서도 타투이스트들의 타투 시술이 합법화돼야 한다"면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앞서 김씨는 지난 2월 27일 민주노총 산하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 소속으로 '타투유니온' 노동조합을 동료 타투이스트들과 함께 만들었다. 코로나19로 제대로 된 홍보조차 하지 못한 상황에도 어느새 400명이 넘는 타투이스트들이 조합원이 돼 함께 활동하고 있다. 김씨는 노동조합 '타투유니온'에서 지회장을 맡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김씨의 타투 작업실에서 그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의 작업실은 불법이라는 이유로 입간판 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한 상태다.

타투, 예술인가 의술인가
 
타투유니온 김도윤 지회장 ⓒ 이희훈
 
이날 인터뷰에서 김도윤 타투유니온 지회장(이하 김 지회장)은 반복적으로 "세금을 내고 싶다"라고 말했다. 모든 타투 시술행위가 불법인 탓에 타투 시술에 대한 수익이 발생해도 제대로 된 세금을 낼 수 없는 상황이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법화와 관련된 법안이 국회에 올라올 때마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사 단체들은 격렬한 목소리로 '반대'를 외치고 있다. 의사 단체가 내건 주된 이유는 "비의료인의 타투시술은 국민건강에 반하는 비의료인의 의료행위"라는 것. 지난 2019년 10월 20대 국회에서 '문신사법'이 발의됐을 때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당시 대한피부과의사회는 성명을 내고 "문신이 합법화 되면 저품질의 지저분한 문신을 양산하고, 충동적인 마음에 청소년 및 젊은 층에서 (문신을) 많이 하게 될 것"이라면서 "문신 제거에 불필요한 시간과 경제적 손실을 겪을 젊은 층과 고통 받을 부모를 양산하는 법안은 국민의 건강과 행복에 부합하지 않는다. 전문가의 양심을 걸고 반대를 표한다"라고 발표했다. 발의된 법안은 제대로 된 논의조차 못하고 폐기됐다.

김 지회장은 "의사들 다수가 타투시술이 의료행위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면서 "자꾸 법으로 타투시술이 왜 의료행위가 아닌지를 설득하라고 말하는데, 지금 상황은 예술활동을 의료활동이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처음부터 설명이 안 되는 걸 설명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김 지회장의 손님 중에 현직 의사들도 많다는 사실이다. <오마이뉴스>가 김 지회장을 인터뷰한 그날도 현직 의사가 찾아와 타투 시술을 받았다. 해당 의사 역시 자신이 받은 타투 시술이 불법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미대생들이 전과자가 되고 있다"  
 
타투유니온 김도윤 지회장 ⓒ 이희훈
   
김 지회장은 석사 학위를 가진 디자인 전공자다. 2000년대 중반, 일반 회사를 다니다 '내가 갖고 있는 재능과 기술이 저평가 받고 있다'라는 생각에 전직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다.

"남들보다 잘하는 게 그림과 디자인이었다. 내 재능을 살려 사회적으로 값어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그것이 지금의 일이다.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회사를 그만두고 직업인으로서 타투이스트 삶을 선택한 것이다."

실제로 김 지회장은 불법의 굴레에도 불구하고 '코리안타투(Korean Tattoo)'라는 장르를 개척해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타투이스트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그 사이 그에게 타투를 받은 세계적인 스타들도 손에 꼽힐 정도다. 브래드 피트를 비롯해 영화 <옥자>의 주인공 릴리 콜린스와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로 유명해진 한국계 배우 스티브 연, 배우 한예슬, 여성그룹 AOA의 설현과 지민 등이 있다.

김 지회장 등장 이후 직업인으로서 타투이스트를 꿈꾸는 미대생들이 타투시장에 쏟아졌다. 문제는 이들 타투이스트들이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한 모두 잠재적인 범죄자라는 점이다. 타투시술이 불법이라는 점을 악용하는 사례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김 지회장은 "10만 원짜리 타투시술을 받고 '마음에 안 든다'며 280만 원의 보상금을 요구하는 돈을 뜯는 '업자'들도 생겼다"면서 "온라인 카페에선 타투시술이 불법인 것을 알고 '타투이스트가 걸리면 얼마의 벌금을 내야 하니, 얼마까지 요구해라' 등의 글이 공유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김 지회장은 "가장 큰 우려는 미대를 다니며 그림만 그리던 미대생들이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전과자가 된다는 것"이라면서 "경찰서에 가서 수사 받고 오면 감당 못하는 친구들도 생긴다. 이로 인해 수사를 받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친구도 있었다"라고 밝혔다.

"세계 타투산업 이끄는 K타투, 언제까지 방관할 건가"
  
타투유니온 김도윤 지회장 ⓒ 이희훈
 
코로나19 전까지 김 지회장의 손님 중 60% 이상은 외국인이었다. 김 지회장뿐 아니라 한국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타투이스트 중에는 신고 우려가 없는 외국손님만 받는 경우도 있다. 김 지회장은 "최소한 불법이라는 굴레만 씌우지 않았어도 대한민국이 세계 타투시장을 이끌게 됐을 것"이라면서 답답함을 토로했다. 

"할리우드 배우들뿐 아니라 모델계의 아드리아나 리마, 콜드플레이의 보컬 크리스 마틴 등 세계에서 각 영역의 탑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타투이스트들에게 타투시술을 의뢰한다. 불법인 줄 알면서도 왜 할까. 말 그대로 세계에서 가장 트랜디한 타투를 우리가 가장 잘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세계 타투시장을 대한민국 서울이 선도하고 있다."

지난 2018년 11월 식약처 '문신용 염료 안전관리 방안 포럼'에서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국내 미용문신 이용자는 1000만 명, 타투 이용자는 3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용문신 시술자 역시 30만 명, 김 지회장처럼 타투시술자로 한정할 경우에는 5만 명 정도 되는 인원이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김 지회장은 "코리안타투(K타투)는 세계시장을 이끄는 산업이자 관광산업이기도 하다"면서 "지금은 불법이라는 굴레 때문에 이러한 역할이 이스라엘과 터키, 호주 등으로 많이 옮겨가는 중이다. 지금이라도 타투를 양지로 끌고 나와 우리의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라고 호소했다. 

지난 2015년 12월, 박근혜 정권 당시 고용노동부는 창조경제 실현 및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한 '신직업 추진 현황 및 육성계획'에서 타투이스트를 정부가 육성 및 지원할 '신직업' 중 하나로 선정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에도 의료계를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높아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김 지회장은 이날 인터뷰를 마무리 하며 "타투에 대한 인식이 타투 인구가 증가하는 속도만큼 어마어마하게 달라졌다"면서 "험악하거나 무서웠던 타투는 이제 아기자기하고 예쁜 타투로 변화했다. 이러한 트렌드를 만든 것이 한국 타투다. 직업인으로서의 타투이스트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타투유니온 김도윤 지회장 ⓒ 이희훈
 
김 지회장이 속한 타투유니온은 타투이스트들의 일반직업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노동조합 차원에서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노동권과 세무교육, 법률교육, 성범죄 예방 및 대응교육 등도 병행하고 있다. 타투 직업군에서 사용될 표준계약서도 만들고 있다. 모두가 법과 제도 안에서 활동하는 '세금 내는 직업인'으로서의 활동을 위해서다. 

한편 일본 최고재판소는 지난 9월 "문신시술은 의료행위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당시 최고재판소는 "문신은 의료와 달리 예술적 기술이 필요하며 이는 오직 의사만이 수행할 수 있는 행위로 볼 수 없다"면서 판결 배경을 설명했다.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로 전 세계에서 타투시술을 불법으로 보는 나라는 대한민국만 남았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 타투이스트(문신사)를 전문직으로 인정하는 문신사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에는 타투이스트의 자격·면허 등에 관한 사항과 문신업소의 위생관리 등에 관한 사항과 협회 설립에 대한 내용이 규정됐다. 이 법이 통과되면 타투시술은 전 세계 다른 나라들처럼 합법적 행위가 된다.
태그:#타투, #박주민 , #의협, #헌법소원,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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