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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 정약용 초상화.
 다산 정약용 초상화.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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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천재성과 과학적인 사고 그리고 서학에 대한 깊은 이해 등을 감안하더라도, 그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사진기를 사용한 사람이라면 얼른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는 어떤 사진기를 사용했을까.

"다산이 사용한 사진기는 카메라 오브스쿠라'(camera obscura)'란 장치인데, 어두운 방과 같은 암실에 구멍을 뚫고 렌즈를 단 것이었다. 이런 장치는 중국에서도 기원전 5세기에 묵자(墨子)같은 지식인들이 실험했고, 서양에서도 기원전 4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했다. 괴테 또한 1780년대에는 커다란 카메라 오브스쿠라를 갖고 있었고, 1791년부터는 들고 다닐 수 있는 카메라 오브스쿠라를 갖고 있었다. 괴테는 그림을 그리는 데에 이것을 사용하기도 하였지만 많이 사용하지는 아니하였다." (주석 7)

그의 문집에는 사진기와 관련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남아 있다. 

집을 산과 호수 사이에 지으니, 좌우에서 아름다운 경치와 빛이 서로 어울려 비치고, 대와 나무, 꽃과 돌이 겹겹이 둘러싸여 있으며, 누각의 울타리가 옆으로 잇달아 있다. 어느 맑은 날을 잡아 방의 창문을 모두 닫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모두 막아 실내를 칠흑과 같이 하고 구멍 하나만 남겨 볼록렌즈 즉, 애체를 그 구멍에 맞추어 끼운다.

이 조그만 구멍으로 어떻게 가능하겠느냐고 생각하겠지만, 투영된 영상이 눈처럼 희고 깨끗한 종이판 위에(애체의 편평하고 볼록한 정도에 따라 조정한다.) 두서너 자 건너편의 볼록렌즈부터 비친다. 실외의 강 언덕과 산봉우리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대와 나무, 꽃과 돌의 무더기와 누각의 옆으로 잇닿은 울타리가 모두 종이판 위에 그림자를 지어 비치는데, 짙은 청색과 옅은 초록빛은 색깔 그대로이고, 성긴 가지와 잎사귀의 밀집함도 실제 모양과 같고, 사이사이 밝고 그늘진 위치가 정연하여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세밀하기가 실이나 머리털과 같아 중국의 고개지(顧愷之)나 육탐미(陸探微) 같은 사람도 능히 그려낼 수 없을 것이니, 무릇 천하의 기이한 풍경이다. 안타까운 것은,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흔들려서 묘사하기가 매우 어렵고, 사물의 형상이 거꾸로 비치어 감상하기엔 황홀하다는 것이다. 이제 어떤 사람이 사진(寫眞)을 만들고자 하되, 털끝만한 착오도 없이 하려면 이것을 제쳐놓고는 더 좋은 방법이 없다.

그러나 진흙으로 빚은 사람같이 뜰 가운데 엄연히 단좌(端坐)하지 않고는 그 묘사의 어려움이 나뭇가지 끝에 바람이 부는 경우와 다름이 없다. (주석 8)


주석
7> 최종고, 『괴테와 다산, 통하다』, 244쪽, 추수밭, 2007.
8> 최인진 외, 『다산 정약용의 사진세계 ; 카메라 오브스쿠라의 흔적을 되살리다』, 5쪽, 재인용, 연우, 2006.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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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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