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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고(故) 전태일 열사 훈장 추서식에서 둘째 동생 전순옥 씨 옆의 의장병이 들고 있는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판에 부장을 걸어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고(故) 전태일 열사 훈장 추서식에서 둘째 동생 전순옥씨 옆의 의장병이 들고 있는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판에 부장을 걸어주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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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사건과 사람을 기념하려는 것은 과거를 단지 반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좌표를 세우기 위해서다. 그러한 기억과 해석 투쟁으로 역사는 만들어지곤 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노동자 운동의 역사에서 '열사 정신'이 소환되었던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사건과 사람을 박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가는 실천을 하기 위해서다. 독재정권에서 희생된 박종철과 이한열의 정신이 민주화 항쟁과 직선제개헌으로 이어졌던 것처럼 말이다. 죽음의 끈을 기어코 부여잡아 빛을 만들려는 노력이야말로 열사 정신일 것이다. 

그러나 기념일이 때로는 사건을 봉합하고 사건이 생기를 갖고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사건의 발전을 봉합하는 데 동원되기도 한다. '기억만 하라!', '지금은 좀 살만하지 않은가', 이것이 그들의 정언명령이다. 기억의 생동을, 살아있는 자들의 역동을 막기 위해 동원된 기념은 앞이 아니라 뒤를 바라보기에 퇴행적이다. 역사의 시계를, 인권의 시계를 멈추고자 한다.

무궁화훈장 추서가 놓인 그곳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그렇다 보니 곳곳에서 '전태일'과 '열사 정신'을 말한다. 심지어 대한민국 행정 수반인 문재인 대통령도 전태일을 말한다. 대통령은 열사에게 '무궁화 훈장'까지 추서했다. 무궁화 훈장은 국민 복지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이에게 수여 하는 국민훈장이니, 독재정권 시절을 떠올리면 세상이 좋아졌다고 착각할 수도 있겠다. 민주화운동 열사에게 국민훈장을 수여한 바는 있으나 노동 열사에게 수여하는 것은 처음이라 곳곳에서 정부를 추켜세우는 말이 넘쳐난다. 

그러나 나는 반갑지가 않다. '노동존중'을 내세운 정부답다고 칭찬할 수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세웠던 노동존중 공약 중 제대로 지켜진 것이 하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생계가 막막해지고 해고 위기에 몰리고 집단감염으로 생명과 건강의 위협을 받고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무엇을 했는가. 기업에 40조 원을 쏟아부으면서도, 기업에게 해고하지 말라는 한마디 하지 않았다. 삼성과 현대차를 방문해서는 기업의 성장과 회장의 성과를 칭찬하면서도, 그들이 저지르고 있는 불법 파견 등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재벌은 불법을 저질러도 처벌은커녕 국가의 격려 대상이라는 뜻이다. 

한국사회 불평등의 핵심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노동 존중'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인 한국사회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하는 척하더니 최저임금에 수당이며 식대도 포함해서 계산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 산입방식을 개악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적게는 20만 원에서 크게는 80만 원까지 임금이 삭감됐다. 그뿐이 아니다. 취임 후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약속은 간접고용(비정규직)을 유지하는 방식인 자회사정책의 꼼수로 돌변했다. 자회사이니 여전히 임금과 노동조건은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최근에는 노동법을 개악한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때 중단된 것을 문재인 정부가 강행하겠단다. 정부는 ILO 협약을 비준하려면 사용자에게도 줄 것이 있어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권리와 권리침해가 맞바꿀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목숨을 살려줄 테니 손목을 부러뜨리겠단 것이 인권적이지는 않다.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은 그동안 한국 정부가 노동자들의 결사의 자유를 막았기에 권고한 것이다. 그런데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내용의 노동법과 맞바꾸라는 것은 최소한의 합리성도 없는 것이다. 결사의 권리는 단지 노조를 만들 수 있는 권리만이 아니라 노조의 단체행동, 즉 파업권을 포함한 모든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 권리다. 결사의 권리를 쪼개고 쪼개어서는 온전한 권리행사가 될 수 없다. 

노동자와 기업주의 노동과 임금 조건 협상 주기를 1년 더 연장(단체협약의 유효기간도 2년에서 3년 연장)하자고 한다. 해마다 물가가 인상되고 안전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단체협약 주기를 늘리자는 것은 인권침해를 참으라는 뜻이다. 무엇보다 사업주가 사업장 내 쟁의행위(장소)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한 것은 100년 넘게 국제인권기준으로 보장한 단체행동권과 파업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이렇게 무궁화 훈장 추서는 노동자의 권리가 멈춘 그곳에 놓여있다. 

무엇보다 최근 전태일 열사의 울부짖음 같은 호소를 들어서 더욱 씁쓸하다. 쿠팡 부천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노동자는 사측의 사과와 보상을 요구한 선전전에서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그의 외침이 아프다. 그는 계약직 비정규직 노동자로 코로나19에 감염된 후 삶이 파탄 났다. 사측의 방역수칙 위반과 코로나19 확진 사실을 늦게 고지하면서 150명이 넘게 집단감염됐으나 정부는 기업을 처벌하지 않는다.

현대판 노예 하청노동자들은 아직도 먼지를 뒤집어쓰고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의 모습. 마스크가 분진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까만 분진을 뒤집어썼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의 모습. 마스크가 분진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까만 분진을 뒤집어썼다.
ⓒ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전주비정규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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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훈장 추서 소식을 접해 씁쓸한 마음을 더 찌르는 사진 한 장을 보았다. 현대차 전주공장 하청노동자가 환기설비도 없는 곳에서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새까맸다. 방진효과도 없는 엉터리 마스크를 추레하게 쓰고 있다. 혹시나 10년 전 사진이겠지 싶어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물었더니 바로 어제의 사진이라고 했다. 재벌이 만드는 자동차공장이라고 믿기지 않아서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해당 공정에 비정규직을 넣으면 되니 공정을 개선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나마 노조가 있는 곳은 자동화로 하거나 환기 시설 등을 개선하는데, 노조가 없으면 1970년대나 볼 수 있음 직한 노동환경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했다. '비정규직의 생명과 몸'으로 안전하게 공정을 개선할 돈을 때우는 것이다. 

사진은 밑바닥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 50년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 은유가 아니라 현실임을 보여준다. 50년 전 평화시장 미싱사와 시다들이, 먼지 뿌연 작은 공간에서 등조차 펴지 못하고 일하던 모습 그대로다. 이렇게 무궁화 훈장은 참혹한 노동의 현실을 가리는 장막이 되었다.

정권은 '열사의 분신 투쟁'을 훈장에 묶어두려 할 때, 이 시대의 전태일들은 '저항'으로 되살린다. 비정규직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열사가 분신한 당일 전태일다리에서 청와대까지 행진한다고 한다. 참혹한 노동의 현실을 바꾸라고 대통령에게 요구하러 가는 것이다. 전태일의 분신 사건이 박제되지 않고 생기를 갖고 밖으로 터져 나올 것이다. 2020년의 전태일들이 있음에 우리의 가슴이 뛰는 것인지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명숙 시민기자는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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