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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은 '산수' 시간에 칠판에 문제를 쓰고 '재수 없는' 학생들을 불러내어 문제를 풀게 했다. 그 '재수'가 없음이란 날짜 끝 숫자와 자기 번호 끝 숫자가 겹치거나, 갑자기 눈을 돌리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친 경우에 해당되었다.

다른 과목은 웬만큼 했던 나는 산수가 싫었다. 특히 칠판에 나가서 문제를 풀면 다 아는 문제도 긴장이 되어 틀리곤 했다. 그럴 때면 선생님은 성질을 내시며 지휘봉으로 머리를 내리치며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니는 산수는 와 이리 못하노? 제일 중요한 과목인 산수를 이따구로 해서 커서 뭐가 될라카노? 응?"

그렇게 선생님에게 당한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나빴다. 집으로 돌아가 가방을 마루에 던져놓다 큰누나에게 한 대 더 쥐어터지고 그날은 그야말로 엉망이 되었다. 그렇게 산수와 수학이란 과목은 나에게서 한 걸음, 두 걸음 사회적 거리가 아닌 '학문적 거리'를 둔 채 멀어져 갔다.
 
 '삶을 위한 수업' 책 표지, 마르쿠스 베른센 (지은이),오연호 (편역)
 "삶을 위한 수업" 책 표지, 마르쿠스 베른센 (지은이),오연호 (편역)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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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을 쌓아가는 교육 vs. 실패를 누적시키는 교육
 
"실패의 경험이 누적되면 학교생활 자체가 힘들어집니다. 저는 자신감이 부족한 학생들과 수업 전에 미리 약속을 하기도 해요. '선생님이 이 대목에서 이 질문을 할 거니까 미리 답변을 준비해 줘.' 이렇게 해서라도 학생들이 자신감을 서서히 쌓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책 <삶을 위한 수업>에서 덴마크의 영어교사 안데르스 울랄은 자신감이 부족한 학생들을 돕는 방법에 대해 위와 같이 말했다. 선생님이 자신감이 부족한 학생과 미리 각본을 짜 놓고 질문과 대답을 하며 그 학생에게 자신감을 키워준다. 물론 극약처방이긴 하지만 난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내 과거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나의 초등학교 선생님은 실패의 경험을 누적시켰고, 산수라는 과목을 진절머리 나고 무섭게 만들었다.

그렇게 수학이란 과목과 '학문적 거리'를 차츰차츰 넓혀 나가던 나는 고등학교 1학년 2학기에 드디어 수포자(수학 공부를 포기한 사람)가 되었다. 친구들의 '기본 수학의 정석'이라는 책은 언제나 책의 앞쪽만 닳아 있고, 뒤쪽은 사람들의 시선도 느껴보지 못한 각종 숫자와 공식들이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나의 수학 책은 친구들이 보던 앞쪽에서 몇십 페이지 전진했지만, 어느 순간 각종 공식들과 수학 기호들의 무차별 공격에 항복 선언을 하고 무릎을 꿇었다. 냉혹한 선 지원 후 시험의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인 나는 55점이 주어진 수학 과목 시험에서 집합, 행렬, 등차수열 이 3문제만 풀고 주관식에서는 0, -1, ∞을 의미 없이 썼다. 시간이 엄청 남아있길래 등차수열 공식도 모르면서 n의 10항까지 일일이 더해서 추출한 정답을 두 번 정도 검산하는 오만도 부려보았다.
 
"저는 수학 이야기나 학교 이야기가 아니라 학교 밖 이야기에서 출발해요, 아이들에게 일상생활에서 수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려고 노력합니다."

덴마크 고등학교 교사 아프셀리우스는 수학이라는 과목이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아이들에게 말했지만, 나의 학창 시절 수학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수학이 대학 시험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주입하려고 노력했다. 덴마크 학생들에게 중요한 것은 "일상"이라면, 한국의 학생들에게 중요한 것은 "대학"이었다.

믿기 싫었지만 그건 엄연한 사실이었고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나의 중고등학교 수학선생님들의 교육 방식은 한국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하고 현실적인 교육 방식이었다.

'수포자'를 양산하는 한국의 수학교육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시골 고등학교였다. 도시보다 학업 성취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인문계 학생 150명 중에서 대부분의 정상적(?)인 친구들은 수학을 포기했고, 10명 미만이 그나마 수학이라는 과목의 꼬리를 잡고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우리 학교에서 수학은 10명만 경쟁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기권을 하는 이상한 과목이었다.

경쟁에는 나쁜 경쟁과 좋은 경쟁이 있다고 한다. 나쁜 경쟁은 오로지 잘하는 학생에게만 도움이 된다. 반면 좋은 경쟁은 모든 학생에게 동기를 불러일으키고 뒤처진 학생도 잘 할 수 있게 도와준다. 하지만 나는 수학이라는 과목의 경쟁에도 낄 수도 없는 낙오자였다.

내 잘못이었다. 선생님의 정형화된 수업방식에 적응하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한국은 그래왔다.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거나 성적이 떨어지면 그 첫 번째 원인은 학생 본인이었고, 그다음이 선생님의 수업 방식이었다. 한국의 교육 현실의 구조적 문제는 항상 뜬구름 잡는 백분토론 주제에 머물곤 했다. 

덴마크의 학교법에 따르면 교사는 자신의 교실에서 어떤 방법으로 수업을 할지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 수업 방식의 자율성에 대한 교사의 권리는 그 누구도 침해하거나 개입해서는 안 된다. 덴마크의 교사들에게 어떤 점이 좋아서 이 직업을 선택했느냐고 질문하면 첫 번째로 "자율성"을 꼽는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과연 어떨까? 한국에서 교사는 수업 방식에 대해 자율권이 많지 않다. 교육당국과 학교의 방침에, 학부모와 때론 학생들의 요구에 교사들의 수업권은 항상 침범당할 우려가 있고, 이미 침범당한 채 학교라는 직장에 속한 조직원의 역할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 슬픈 현실은 한국의 젊은 교사들에게 어떤 점이 좋아서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냐고 물으면 그 첫 번째로 뽑는 것이 "직업의 안정성"이라는 점이다.

변함없는 한국의 교육 현실

내가 산수를 어려워하고, 수학을 포기하던 80~90년대 학창 시절과 지금의 교육현장은 많이 다를 것이다. 도시락을 사 와서 친구들과 나눠 먹고, 무거운 책가방에 그날 교과서와 문제집을 들고 나르던 그 시절을 지금 어린 학생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선생님의 엄한 체벌과 폭력을 스파르타식 교육방식의 호랑이 선생님이라고 당연시 여기던 시절을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대학을 향한 끊임없는 경쟁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대학이라는 목표 앞에 '수도권(in Seoul)'이라는 단어가 더해졌다.

오연호 작가의 전작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읽고 이번 책 <삶을 위한 수업>까지 모두 읽었다. 처음에는 덴마크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부러움이 들었다가 이번 책을 읽으면서는 그런 동경과 부러움보다 절망감과 좌절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변하지 않는 교육 현실, 기득권 유지에 대한 사람들의 처절한 욕망, 사명감보다 직업적 현실에 안주하는 교사, 학생이 주체가 아닌 학부모와 교육당국이 주체가 되는 학교, 서열화된 대학, 수도권 중심의 경제구조… 지금 한국에서 덴마크의 교육을 구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학생들을 독립적 주체적 인간으로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밖에 모르는 '독고다이'로 만들어 버린다.

작가의 말처럼 언제쯤 우리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도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이 대학을 위한 수업이 아니라 삶을 위한 수업을 들을 수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삶을 위한 수업 - 행복한 나라 덴마크의 교사들은 어떻게 가르치는가

마르쿠스 베른센 (지은이), 오연호 (편역), 오마이북(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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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에 행복과 미소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대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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