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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의 50주기였다. 그는 근로기준법이 있는데도 법을 당연하게 어기는 현실과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에 분개했고, 청계천 평화시장의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다 결국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그의 죽음 한국 노동운동을 부활시켰다. 

한국 사회에서는 지금도 수 많은 노동자들이 산재와 과로로 일터에서 죽고 있다. OECD 국가에서 산재 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이며, 2019년 한 해에 죽은 노동자가 855명이다. 올해도 코로나 사태 이후 택배 노동자들의 산재사망을 다루는 뉴스들이 잊을 만 하면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대부분은 비정규직들이다.

현 정부는 노동존중을 내세우며 집권했다. 그런데 현재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해 여당인 민주당은 법 제정을 당론으로 채택하는 걸 주저하는 모양새다.

비정규직 문제에서도 공약과 달리 큰 진전이 없었다. 도로공사가 정규직화를 거부하고 톨게이트 비정규직 수납노동자 1500명을 해고하는 것처럼 더 안 좋은 일만 벌어졌다. "자회사 정규직" 또한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사실상 아웃소싱, 즉 외주화를 방치하는 꼴이 돼버렸다. 고 김용균씨의 비극적인 사건도 외주화로 비롯된 산재였음을 생각하면 '노동존중'이라는 정부의 구호는 계속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뿐이 아니다. 최저임금을 16% 인상 이후 재계가 반발하자, 2018년에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늘려서 소위 '줬다 뺐는' 식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반감시켰고, 현재는 산별 노조 간부의 사업장 진입을 금지시키는 등의 ILO 협약에 역행하는 노동개악을 추진하고 있다. 과연 이걸 누가 노동존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웃소싱 강력규제를 추진하는 멕시코 좌파 대통령

노동권 문제 특히 비정규직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불안전 노동 문제는 전 세계적인 문제로 격상된 지 오래다. 멕시코에서는 좌파성향인 2018년에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줄여서 AMLO라 불린다)가 대통령으로 당선했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2019년 최저임금을 16% 인상하는 등 문재인 정권과 비슷하게 시작했다. 부정부패를 줄이기 위해 좌파적 긴축(고위 공무원 월급과 특혜, 행정 의례비용 지출 삭감 등)을 통해 행정부에 대한 신뢰를 높히려고 노력했으며, 간호사·교사·경찰·의사 등 공공서비스에 복무하는 직종의 임금을 올렸다.

시간이 흐를 수록 한국과 멕시코는 가는 길이 달라졌다. 문재인 정권의 노동존중이 시간이 흐르면서 흔들리다 못해 방향이 처음과는 반대로 가는 것과 달리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노동정책은 공약대로 진행됐다. 그는 2020년 최저임금도 20% 인상하면서 2년 연속 두 자리 수 최저임금을 인상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산입범위가 바뀌지 않았다. 게다가 퇴직연금의 수급요건을 완화하고 고용주 부담을 인상했다.

그뿐 아니라 최근 10월부터 아웃소싱을 폐지시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아웃소싱 업체 상당수가 탈세를 저지르고 아웃소싱으로 노동자들의 권리와 경제가 침해 받고 있다며 아웃소싱 폐지를 시사했고, 아웃소싱을 규제하는 법안을 발의해 11월 12일 국회에 제출했다.

멕시코 대통령이 이렇게 직접 발표한 이유는 하청업체들이 저지른 아웃소싱 과정에서의 탈세 문제와 하청업체에 고용된 노동자들에게 크리스마스 보너스를 주지 않기 위해 한꺼번에 해고하거나 출산휴가나 사회보험 가입 등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사건들이 보고 되었기 때문이다.

이 법은 내년 초에 통과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하원·상원 모두 여당이 다수당이기 때문에 쉽게 통과될 것으로 예측된다. 멕시코는 '노동존중' 구호를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노동존중' 구호가 거짓이 아니라면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유능한 대통령이 아니다. 전직 대통령들처럼 마약 카르텔을 진압하지 못하고 있고, 코로나 방역에서 큰 실책을 저질렀다. 멕시코는 지금도 방역 실패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데도 멕시코 대통령의 사례를 이야기 하는 이유는 멕시코에서도 노동공약, 노동정책의 일관성을 지키고 있는데 한국의 '노동존중'은 그렇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말 많은 멕시코와 비교해도 문재인 정부가 사용하고 있는 '노동존중' 구호는 낯뜨거운 일일 뿐이다.

정말 그 구호가 거짓이 아니라면 현재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악을 중단하고 노동계에서 요구하는 전태일 3법을 수용하려고 노력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또한 원상복구돼야 할 것이다.

마약 카르텔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한국에서 은연 중 무시받는 멕시코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동존중 정책을 보면서 부끄럽지 않다면 지금까지의 '노동존중' 구호는 거짓말이었다는 걸 인정하는 셈일 것이다.

태그:#멕시코, #노동존중, #오브라도르, #아웃소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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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사, 사회복지 관련 글을 쓰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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