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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어머니가 치매라고?!

코로나19가 한국을 덮친 지 어언 9개월이 가깝다. 날마다 확진자 숫자를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날들. 하지만 지난 2월과 3월 대구-경북을 휩쓸던 코로나의 위세를 생각하면 지금도 쓴웃음이 나온다. 서울에 사는 동생들이 어머니 병환이 심상치 않다는 전갈을 보냈기로 서울로 올라왔다. 둔감한 탓인지 예전과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문제는 밤에 찾아왔다. 어머니가 현관문으로 걸음을 옮기시기에 "어디 가세요", 했더니 "화장실 갈란다" 하신다. "화장실은 거기가 아니라, 저기에요." 어머니가 잠시 고집을 부린다. 이런 일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는 게다. 텔레비전을 보시다가 "웬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우리 집에 자꾸만 들어오냐?" 하시기도 한다. 아니, 우리 모친이 치매인가?!

다음 날 아침 가까운 병원에 어머니를 모시고 갔는데, 대기 인원이 차고 넘친다. 복잡한 안내노선을 따라갔더니 간호사가 어디서 왔는지 묻는다. "청도에서 왔습니다." 했더니 두 가지 선택지를 말한다. 코로나19 확인비용 19만 원을 내든지, 밖에서 기다리든지. 나는 순순히 밖으로 나왔다. 신천지와 대남병원의 본고장 청도에서 온 게 죄라면 죄였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치매 증세는 코로나19로 인한 동네 경로당 폐쇄 후유증임이 밝혀졌다. 경로당 총무로 날마다 드나들던 일상이 어느 날 문득 차단되고 홀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결과였다. 꾸준한 대화와 마실 다니기,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늘리면서 어머니는 천천히 본래 모습을 되찾았고, 지금은 완전히 예전 상태로 복귀했다.

기계 보고 강의하기
 
 강연이나 강의를 녹화할 때마다 뭔가 허전하고 빠져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번에도 공허함은 그대로 찾아들었다.
 강연이나 강의를 녹화할 때마다 뭔가 허전하고 빠져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번에도 공허함은 그대로 찾아들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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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봄학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비대면 수업이다. 문자 그대로 학생들 얼굴을 보지 않고 강의하는 방식이다. 대학의 근간인 인문대학, 사회대학, 자연대학에서 비대면으로 수업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특히 인문학은 강의자와 수강자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질의 응답하는 과정을 거쳐서 강의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대학 본부에서 보내온 지난 1학기 최초 비대면 강의방식은 온라인으로 강의내용을 정리해서 올리고,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기술적인 난도가 적잖은 줌을 활용한 방식을 권장하기 시작한다. 나 같은 기계치는 따라가기 버거운 방식이다. 나는 본래의 강의 방식을 고수하다가, 어느 날 출구를 찾았다.

러시아어 원어민 교수의 강의를 도와주는 학생들을 우연히 본 것이다. 온갖 기계와 전자제품에 능통한 그들에게 도와줄 수 있겠니, 했더니 즉석에서 좋다는 대답이 온다. 그날부터 날마다 2시간 정도 기계를 향해, 정확히 말하면 촬영 카메라 렌즈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강의하기 시작했다. 허공을 향한 피에로의 고단한 몸짓이 시작된 셈이다.

사실 카메라를 바라보며 강의를 녹음한 경험은 예전에도 적잖게 있다. 경북대학교에서 진행한 <동서고전의 만남> '케이무크(K_MOOK)' 강연이 그랬고, 학부생 대상으로 실행한 <러시아 문학사> '플립드-러닝' 녹화가 그러했다. 하지만 강연이나 강의를 녹화할 때마다 뭔가 허전하고 빠져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번에도 공허함은 그대로 찾아들었다.

마스크 쓰는 일

코로나19가 유럽과 미국 그리고 러시아에서 대대적으로 확산한 것은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그곳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에 원인의 일부가 있다. 그들 나라에는 시위할 때도 마스크를 쓰면 안 된다는 불문율 같은 게 있다. 얼굴을 가리고 시위하는 사람은 무엇인가 은폐하려는 사람이거나, 예비 범죄자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분단 서도이칠란트의 숱한 시위 현장에서 복면이나 마스크를 쓰고 시위하는 사람을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그런 까닭에 유럽에서 무슬림의 부르카는 물론이려니와 히잡이나 니캅이 환영받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유학하면서 대학이나 공공기관에서 히잡이나 니캅을 쓴 여성이 배척당하는 장면은 보지 못했다.

코로나19가 창궐할 때에도 거리에서는 애써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식당이나 건물에 들어갈 때만 마스크를 꼭 쓰곤 했다. 지나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마스크를 얼굴에 부착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고 말았다.

대구 문화방송국에서 <시인의 저녁 ('시사와 인문학이 있는 저녁'의 줄임말)>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생긴 습관이다. 담당 프로듀서가 감기 걸리면 정말 안 됩니다, 하고 으름장을 놓기에 마스크를 쓰기로 한 것이다. 공적 영역의 준수가 잉태한 사적 습관의 변모랄까!

코로나19 이후의 시대

대구와 경북대에는 무수히 많은 신축공사가 진행 중이다. 도심지 곳곳에 거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공사가 한창이고, 이런저런 대규모 건물을 짓느라 경북대 곳곳이 소란스럽기 그지없다. 그런데 코로나19의 소용돌이 속에서 학생들이 없는 캠퍼스와 시민들이 자리를 비운 거리와 광장, 지하철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의문이 생긴다.

저 많은 아파트와 대규모 건물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지방 공동화와 거점 국립대마저 고사할 것이라는 예측을 비웃는 거대 건설현장! 한 세대 정도 시간이 흐른 다음 저 많은 아파트에 누가 들어가 살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미래세대 주머니를 털어 오늘도 아파트 가격을 올리는 투기세력과 부모세대, 그것을 방조하는 관계당국.

서울로 경기도로 몰려드는 청년세대와 구직자들의 행렬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미래상을 제시한다. 코로나19가 남긴 교훈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 사는 세상은 자연과 친화하면서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그레타 툰베리가 말하는 지구의 기후위기와 환경위기는 무엇을 뜻하는가. 인간이 자연과 공존해야 한다는 논리 아닌가?!

널찍하고 청정한 나라 곳곳을 비워놓고 서울과 경기도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행렬은 우울하다. 저렇게 밀집하다가는 2차, 3차 코로나19의 창궐을 통제하기 어려울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코로나19는 예고편일지 모른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나오는 형편에 비어가는 농어촌과 콩나물시루처럼 미어터지는 서울과 경기도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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