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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공원을 내려다 보고있는 '독립운동의 아버지 홍암 나철 동상'
▲ 평화공원을 내려다 보고있는 "독립운동의 아버지 홍암 나철 동상" 평화공원을 내려다 보고있는 "독립운동의 아버지 홍암 나철 동상"
ⓒ 장래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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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철이 귀국했을 즈음 서울에는 이미 조선통감부가 설치되고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통감으로 부임하여 마치 점령군 사령관처럼 행세하고 있었다. 각지에서 항일의병이 봉기하고, 최익현ㆍ임병찬을 비롯한 의병지도부가 전북 순창에서 붙잡혀 쓰시마섬으로 유배되었다. 

나철은 을사오적을 처단함으로써 민족정기를 회복하고 그 여력으로 의기있는 청년들을 모아 국권회복 투쟁을 전개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동지 규합에 나섰다.

이기ㆍ오기호ㆍ윤주찬ㆍ김동필ㆍ박대하ㆍ이홍래ㆍ이용택 등 동지들과 비밀결사 자신회(自新會)를 조직하였다. 취지문에서 "스스로 새롭게 하여 남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막아내자"고 주창하며 애국계몽과 실력양성을 기치로 내세웠다.

자신회는 실행 목표를 을사오적의 처단으로 설정하고 실행할 용사들을 모으고 총기를 구입하는 등 거사를 서둘렀다. 

이들은 거사 후 주모자들이 직접 관헌에 자수하여 국민의 대표로 책임을 지기로 하고, 이에 대비하여 오적을 처단하는 이유와 독립의 염원, 애국의 충정을 담아 표현한 자신회 취지서, 참적동맹서(斬敵同盟書), 참간장(斬奸狀) 등을 짓고, 일본정부와 각국 공사관에 보내는 글, 내외 인민에게 포고하는 글 등을 작성하는 등 준비를 갖추었다. 1907년 3월 25일 아침 을사오적을 일거에 처단하기로 한 단원들은 아침 8시경부터 오적들이 정부로 나가는 길목에서 대기하였다. 

나인영ㆍ오기호는 일부 단원과 함께 광화문 해태석 앞에서 박제순을 기다리고 이홍래는 사동(寺洞) 입구에서 권중현을, 돈의문 밖에서는 이완용을 맡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완용과 박제순에 대한 공격은 기회를 포착하지 못한 채 놓쳐버렸고, 권중현의 경우는 습격하였으나 처단에 성공하지 못하였다. (주석 7)

 
▲  흔히 을사오적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하영과 민영기도 당시 대신으로서 을사오적 못잖게 망국에 기여했다는 의견도 많다. 그래서 "을사5적"이 아니라 "을사7적"이라는 주장이다. 조양회관(광복회 대구지부 사무실이 있는 건물)의 을사오적 사진에 이하영과 민영기를 덧붙인 을사칠적 사진을 만들어보았다.
 ▲ 흔히 을사오적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하영과 민영기도 당시 대신으로서 을사오적 못잖게 망국에 기여했다는 의견도 많다. 그래서 "을사5적"이 아니라 "을사7적"이라는 주장이다. 조양회관(광복회 대구지부 사무실이 있는 건물)의 을사오적 사진에 이하영과 민영기를 덧붙인 을사칠적 사진을 만들어보았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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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 후 각종 의열ㆍ의병투쟁이 전개되고 순국자도 있었지만, 매국노들을 도살하려는 '오적암살단'을 조직하고 실행에 옮긴 것은 나철이 주도하는 자신회가 처음이었다. 자신회는 「참적동맹서」에서 "이번 거사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오. 2천만 민족의 원한을 갚을 것이다."라고 거사의 의도를 분명히 하였다.

나철과 그의 동지들은 당초 거사일을 1907년 1월 1일로 잡았다가 지방 거주 장사들의 상경이 늦어지면서 3월 15일 오전 10시로 연기하였다. 그리고 오적 외에 군부대신 이근택을 추가하여 을사육적을 같은 시각에 처단키로 하고 실행 책임자를 선정하였다. 나철은 총괄 지휘를 맡았다. 

'을사6적'을 처단하는 우국지사 6명이 책임자로 선정되고 각 3명 씩의 결사대원이 배정되어, 총 18명의 결사대가 조직되었다. 6명의 역적과 6명의 인솔 결사대 책임자는 다음과 같다. 

 박제순(참정대신)  오기호(인솔 결사대)
 이지용(내부대신) 김동필 (인솔 결사대)
 권중현(군부대신) 이홍내 (인솔 결사대)
 이완용(학부대신) 박대하 (인솔 결사대)
 이재극(법부대신) 서태운(인솔 결사대)
 이근택(전 군부대신) 이용채 (인솔 결사대)

1907년 3월 15일 아침에 결사대는 각기 담당한 역적의 집 앞에 숨어 하나 하나 차례로 처단하기로 하였다. 이 날은 육적들이 궁궐에 들어가는 참례일이었다. (주석 8)


주석
7> 이기훈, 「오적암살단」, 『한국독립운동사사전(15)』, 604쪽, 독립기념관, 2004.
8> 박성수, 앞의 책, 101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민족의 선각 홍암 나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국난기와 국망기에 온몸을 바쳐 구국과 독립을 위해 나섰는데, 역사가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국민에게 잊혀진다면 어찌 건강한 사회라 할 것이며,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태그:#나철, #홍암, #나철평전, #홍암나철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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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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