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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김용택 전 교사.
 정부 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김용택 전 교사.
ⓒ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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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교원 원상회복 특별법이 31년 세월이 지난 뒤에야 국회에서 발의된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해직교원들이 원상회복되길 바란다."

지난 9월 23일부터 정부 세종청사 교육부 건물 앞에서 '89년 전교조 해직교사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여온 김용택 전 교사(75). 그는 지난 17일 여야 의원 113명이 공동 발의한 '해직교원 및 임용제외 교원의 지위 원상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에 대해 이처럼 평가했다. (관련 기사 : 의원 113명 특별법 "민주화 관련 해직교원 원상회복 필요" http://omn.kr/1ql0m)

"만시지탄이지만... 해직교원 원상회복되길"

아픈 다리와 허리 탓에 지팡이를 든 백발 해직교사의 1인 시위는 그동안 여러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는데, 결국 여야 국회의원들의 마음도 움직이게 했다. 

19일 오전 김 전 교사는 <오마이뉴스>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과거 노태우 정권이 1989년 교원노조 결성과 학교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교사 1800여 명을 해직시킨 것은 교육대학살이었다"라면서 "국가는 이 학살의 여파를 바로잡지 않고, 31년 동안 줄곧 해직교사에게 임금이나 연금에서 불이익을 줘왔다"고 말했다.

이어 김 전 교사는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마치 무슨 특혜를 바라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정말 안타깝고 속상한 이야기"라면서 "이는 당시 교육대학살을 당한 해직교사들이 더 이상 불이익을 받지 말게 해달라는 것이고, 이를 통해 교육역사를 바로 세우기 하자는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교직 생활 38년 6개월만인 지난 2007년 퇴임한 김 전 교사는 전교조 결성 관련으로 1989년 10월 해직된 바 있다. 그러다가 1994년 3월 1일, 5년 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해직기간 봉급은 물론 호봉도 인정받지 못한 채 신규채용 형식으로 복직된 것이다.

다음은 김 전 교사와 나눈 일문일답.

- 여야 국회의원 113명이 특별법을 발의했다. 남다른 소감이 있을 텐데.
"31년이란 세월이 지났는데 만시지탄이다. 그 긴 세월 동안 우린 침묵하며 살았고 그 어떤 보상이나 배상도 받은 일이 없다. 오히려 불이익을 받아왔다. 이제라도 특별법을 여야 의원들이 많이 참여해 발의하게 되어 법 제정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 지난 9월 23일부터 교육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는데, 이유는 무엇인가?
"1인 시위 손팻말에 적힌 것처럼 '전교조 해직교사 원상회복을 시켜 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마침 정부가 올해 전교조 법외노조에 대해서는 재합법화를 하면서 관련 해직교사들에 대해 원상회복을 시켜줬다. 그런데 31년 전 교육대학살을 당한 1800명의 해직교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이익을 주고 있어 이를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31년 전 해직교사들 대부분은 2002년 정부로부터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지 않았나?
"2002년에 '민주화운동 관련자'라고 적힌 종이 한 장을 받았다. 딱 그것뿐이었다. 5년 해직기간으로 인해 생긴 불이익에 대해서는 아무런 원상회복 조치가 없었다."

- 1994년 해직교사에 대한 복직 조치 당시에도 어떠한 원상회복 조치가 없었나?
"1994년 3월 1일 해직교사들이 많이 복직했다. 그런데 그때 정부가 내놓은 복직 조건이 신규채용 형식이었다. 항복 선언을 해야 복직할 수 있었다. 이건 또 다른 폭력이었다. 5년 해직기간에 대한 임금 보상은커녕 호봉도 승급시켜주지 않았다."

- 아까 1989년 해직을 놓고 교육대학살이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교원노조와 교육민주화 활동이 당연한데, 그 당시엔 빨갱이로 몰았다. 11개 정부 부처가 전교조 탈퇴 각서를 받기 위해 합동회의를 벌였다. 당시 안기부가 중심이 되어 교장과 교감을 총동원해서 전교조 교사의 부모 등 가족들을 협박했다. '당신 자식이 빨갱이 물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런 협박 때문에 전교조 교사의 아버지가 농약을 마시고 돌아가신 일도 있었다. 오로지 참교육이라는 교육신념을 지키기 위해 탈퇴 각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1527명이 해직됐다. 이것이야말로 교육대학살이 아니고 무엇인가." 
 
 전교조 경남지부, 89년해직교사원상회복경남추진위원회는 10월 29일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89년 전교조 해직교사 원상회복 특병법 제정"을 촉구했다.
 전교조 경남지부, 89년해직교사원상회복경남추진위원회는 10월 29일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89년 전교조 해직교사 원상회복 특병법 제정"을 촉구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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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해직된 뒤 5년 동안 생활은 어땠나?
"해직교사들 가운데 학원 강사를 한 사람들은 그래도 나았다. 막노동, 보험 외판원 등 별의별 일을 다 했다. 당시 해직됐던 신맹순 선생님은 아직도 폐휴지를 주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가족이 5명이었는데 전교조 상근을 하면서 한 달에 30만 원을 받았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고 아이들 중고교 학비가 없어서 쩔쩔맸다. 결국 가정주부였던 아내가 보험외판원을 했다."

- 원상회복이 되지 않아 실제로 받는 불이익은 무엇인가?
"해직기간 월급과 호봉을 인정받지 못하니 퇴직 때까지 봉급 차이가 컸다. 다행히 나는 연금을 받지만 해직기간 때문에 연봉을 못 받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연금을 받는 분들도 그 액수가 다른 퇴직교사들에 비해서 무척 적다."

"특혜 요구라고? 교육대학살 불이익을 주지 말라는 것뿐"

- 31년 전 일을 갖고 특혜를 요구한다는 주장도 있다.
"특혜를 바란다는 것은 우리들에 대한 모욕적인 이야기다. 정말 안타깝고 속상한 이야기다. 그동안 해직교사들이 받은 것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라는 증명서 한 장밖에 없다. 오히려 우리는 커다란 불이익을 받아왔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정부가 부당하게 교육대학살해서 불이익을 준 상황을 원상회복해달라는 것뿐이다. 이런 원상회복 조치가 없다면 역사를 땅속에 파묻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육대학살의 역사를 여전히 감추어 놓는 일이다. 우리는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것이다."

-특별법 통과가 결코 쉬운 문제만은 아닌 것 같은데.
"전교조 활동을 통해서 교육을 바로 세워보겠다고 그렇게 애썼던 사람들의 희생이 31년이 지난 지금까지 외면당하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국가의 역할은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문재인 정부와 국회가 정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이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는 전통을 만들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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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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