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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처음으로 출판한 책, 박모니카의 에세이 <어부마님 울엄마>가 서점 가판대에 나온 지 3주일이 지났다. 책을 받아왔던 그 날, 긴장 어린 떨림으로 내 손에 놓여 있던 그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뿐이다.

처음 나온 책을 두고, 첫 아이를 얻을 때의 기쁨과 난산의 결정체 같다, 세상의 신기루를 만져본 느낌이다라고 말하던 경험자들의 독특한 표현들은 결코 남의 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지난 3주간을 돌아보니 그 말들이 옳았다.

아직도 듣기 쑥스럽고 불편한 '작가님'이란 호칭, 다음 번 작품이 기대된다는 지인들의 칭찬, 책을 읽으면서 글의 내용에 공감되어 부모님 생각에 한바탕 눈시울을 적셨다는 후배들의 격려 등에 둘러싸여 보냈던 지난 시간들. 초로의 인생 길목에서 너무도 과분한 행복의 씨앗을 받은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내내 있었다.

책의 마지막 장에 쓴 기부금을 핑계로 꼭 선물 해드려야 하는 분들까지도 일일이 책값을 받으면서 내 안에 있는 이기심을 자책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값 이상을 챙겨주었던 많은 분들의 사랑을 마다하지 않았다. 덕분에 올해 꼭 해야 할 소외계층을 위한 기부금이 잘 마련되여 목표한 바를 성공적으로 행사했다.

일일이 말은 못했지만 책을 전하면서 늘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첫 책이니만큼 부족함이 가득 할 거라고, 전업 작가는 더더욱 아니니 그냥 고생했다고 위로해 달라고. 그런데 너무도 뜻밖의 격려와 칭찬의 말과 글들이 후기로 돌아왔다.

"맛난 묵은지에 밥 한그릇, 게눈 감추듯 참 맛나게 읽었습니다. 지에미 닮아서 이쁘게도 생겼다는 어머님의 말씀이 가슴 언저리에 와서 앉았습니다. 지에미는 글을 잘 그려냈고, 딸은 그림을 참 이쁘게 썼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입니다"라고 신부님이 칭찬해 주셨다.

"가족 사랑에 대한 감성표현이 에세이가 아니라 주옥 같은 시 같아서 자꾸 시집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멈춤없이 잘 읽었습니다"라고 한 시인이자 화가도 격려해주었다.

"종종 보던 글 인데도 왜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나는지, 가족에게 가지는 책무감으로 얼마나 많이 힘이 들었을지 눈에 선했네. 내 삶의 역사도 비슷할진데 글로 표현 할 재주가 없어. 글 쓰고 책 만드느라 고생했네"라고 봉사활동을 함께 하는 후배가 다독여주었다.

책을 쓰면서 가장 걱정 되었던 큰 동생의 반응이 궁금했다. 책을 쓴다는 핑계로 개인의 사생활을 밝힐 때 자존심이 상하진 않았을까. 어느 새벽에 온 문자 하나로 동생은 내게 눈물을 쏟게 했다.

"누님, 책 잘 읽었어요. 아주 많이. 누님 덕분에 젊은 날을 소환해서 좋은 일 나쁜일 모두 흘려보냈습니다. 지금부터 더 재밌게 살아야죠. 어서 두 번째 책도 준비하세요."

어떤 이는 서점에서 책을 샀다고 인증샷을 보내고, 어떤 사람은 온라인 구매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었다. 온라인 구매보다는 가을날 산책 삼아 서점에 가시면 더 좋겠다고 전하니 그렇게 하셨다. 우리 지역에서 지역 작가들이 많이 나오고 지역 서점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간이 되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라며 정말 잘했다고 칭찬을 하던 선배도 있었다.

많은 분들의 격려 속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는데, 소위 남편의 병원 지인들이다. 4년 전부터 올 2월까지 남편은 뇌 질환으로 몇 번의 병원 신세를 졌다. 코로나의 성행 덕분에 장기간의 병원 생활을 접고 집으로 돌아왔고, 병원에서 만난 분들과 종종 점심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남편은 뇌질환의 후유증으로 신체의 한쪽이 약간 부자연스럽거나, 사물이 둘로 보이는 복시현상 등이 있다. 본인이 열심히 재활 치료에 정성을 다하고, 평소에도 끊임없이 관련 질환을 공부하면서 건강을 회복시키는 데 게으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 참으로 다행이다 말한다.

지난주 남편은 책 2권만 달라고 했다. 병원 지인들 만나는데, 내 책을 자랑했더니 본인들도 사겠다고 했단다. 그분들은 책값과 함께 기부금에 써 달라고 별도의 봉투를 보내왔다. 다음 날 남편은 병원 지인에게서 받은 문자 하나를 보여주었다.

"자연은 위대한 농부다. 글쟁이는 위대한 언어의 농부다. 그 소재는 삶에서 나온다. 아버지의 바다는 거칠고 힘겨웠지만, 어머니는 그 바다를 요리하셨다. 그들의 삶은 딸에 의해 작품으로 만들어지고 바다처럼 넓은 사위의 지식은 양념이 되어 결국 부모의 역사가 기록으로 남았다. 가족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멋진 과정을 느끼게 해주심에 아낌 없는 찬사를 보내고 곁에 두고두고 놓고 읽으면서 바다 역사를 느끼겠습니다. 모니카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정말 깜짝 놀랐다. 유명한 작가의 책의 평론에 나올 만한 글이기에 이렇게 과분한 찬사를 받아도 될 것인가 싶었다. 집보다 병원 생활이 익숙한 지 오래된 분들이라고 하기에 집밥같은 점심을 드시자고 연락을 드렸다.

처음 만나는 순간, 그분들의 지팡이가 먼저 보였다. 빠른 재활로 지팡이 한번 구경하지 않고 병원을 떠난 남편 덕분에 남편 지인들의 모습을 가늠하지 못했었다. 순간 모든 속도를 줄였다. 말의 속도, 행동의 속도, 마음의 속도. 당연히 배려를 으뜸으로 놓아야 했다. 언제 어디서든 남편의 몸에 배인 친절과 배려에 존경심이 묻어났다.

좋은 글을 보내준 병원 지인은 최근에 읽어서 감동 받은 두 권의 책 중 하나가 바로 내 책이라고 또 칭찬을 했다. 또 하나는 소설가 한강의 <흰>이라고, 읽어보았냐고 묻기에 한강씨 작품은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를 읽었다고 답했다. 지인은 <흰>도 꼭 한번 읽어보라고 말했다.

오늘은 학생들과 한길문고에서 중고책을 팔아 기부금을 마련하는 '북비지중고장터'가 있는 날이었다. 분주한 가운데 둘러보니, 어제 본 남편의 지인이 지팡이와 함께 서점으로 들어섰다. 좋은 책을 써준 나를 위해서 한강 씨의 <흰>을 주문했는데,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다고, 나는 그렇게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작가라는 무명의 흰색 바탕 위에 한 줄의 진한 교훈이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따뜻한 사람들과의 인연을 결코 헛되이 하지 말라.'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읽고 말보다는 듣는 귀를 가지고 글을 써라.'

요즘의 50대를 두고 인생의 두 번째 문을 여는 기회의 때라고 말한다. 오늘도 배우고 내일도 배울 것이다. 나의 두 번째 문의 열쇠는 바로 배운 것을 글로 옮겨 놓는 일이다. 손이 떨려서 그 열쇠를 떨어뜨릴 때까지 게으름을 피우지 않아야겠다고 글로 남겨놓는 가을밤이 좋다.

태그:#박모니카에세이, #어부마님울엄마, #한강의흰, #한길문고북비지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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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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